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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생을 믿는다.

2023년 2월 21일/0 코멘트/카테고리: 최병천의 책이야기 /작성자: pig790

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위르겐 몰트만, 이신건 옮김, 신앙과지성사, 2020년

지난 여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양평에서 은퇴 후 노년의 후반전을 의미 깊게 사는 이신건 박사의 집을 찾았다. 거실 탁자 위에 독일어 원서 한권이 놓여 있었다. 까막눈인 나는 물을 수 밖에. 그랬더니, <살아있는 영혼의 죽음과 깨어남>이란 제목의 몰트만 선생님의 마지막 저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남은 현대신학자의 마지막 책이라?

순간 상당한 의미로 다가 왔다. 이 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곧장 번역해 달라, 올 연말에 예쁜 책으로 출판해 스터디 셀러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원조 옥천냉면 할머니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일행을 대접했다.

원고가 10월에 도착했다. 나는 책 제목을 과감하게 붙였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로! 그러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팁을 신앙과지성사가 톡톡히 주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막상 기독인과 비기독인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그러나 이 책 제목처럼 나는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 참 좋은 답이 될 터이다.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편집 작업에 몰두했다. 삶과 죽음은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사귐이란 뒷 표지 헤드 타이틀을 찾아내곤 새벽녘에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처형 직전 감방동료들에게 남긴 말, 죽음은 마지막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시작이란 감동적인 문구도 추가했다. 내가 하고도 내가 스스로 감회에 젖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문학적 표현까지 더했다. “죽음의 순간에는 아마도 새로운 공간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를 부르는 생명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아 평안히 이별하여라. 그리고 건강하여라” 라는 말까지 찾아냈다.

이 책은  표지 글만 읽어도 죽음에 대한 크리스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책이 나오기가 무섭게 굴지의 언론 세군데서 동시 서평을 해주며 근래 보기 드문 책이 나왔다고 극찬했다. 책은 3주 만에 초판이 다 떨어졌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역자 이신건 박사는 말한다. 오늘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시는 분들과 실제로 죽음의 벼랑에 내몰리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도리어 미안하다고. 그러나 몇 년 전 부인을 먼저 보내고 95세의 노년에 죽음과 생명과 영생에 관해 깊이 묵상하며 쓰신 선생님의 글을 옮기며 마음이 많이 아려왔다고 고백했다.

어제는 참 가기 싫은 곳을 다녀왔다. 평소 이 시대 마지막 등불 같은 출판인이라며 나를 격려해 주던 친구 루터교의 주대범 장로의 빈소였다. 정의감 넘치고 인정 많고 음악가이고 목수였던 다재다능했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져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 소풍 길을 마감했다. 소식을 접한 한 주간 동안 참 우울하고 슬펐다. 한 두어 달 쯤 되었나? 주 장로는 내게 전화해서 아쉬운 부탁을 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교우를 부탁하며 재능 있는 친구인데 생활이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일 좀 시켜 달란다.

주 장로의 하소연을 들으며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주 장로의 넓은 품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빈소를 나와 한 시간 쯤을 터덜터덜 걸었다. 주 장로는 많은 사랑을 남기고 영생의 길을 먼저 갔다. 걷는 내내 그가 예수살기 모임에서 피아노치며 노래 부르던 모습만이 아른거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친구 주 장로를 먼저 보내며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만든 이 책이 더욱 더 깊게 마음속에 다가온다.

최병천 장로 (공덕교회, 출판인)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84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75 340 pig790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pig7902023-02-21 16:14:572023-02-23 11:14:05나는 영생을 믿는다.

휴심정 뉴스(조현 기자)–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생활 15년…푸른 초원위 사랑·배려의 삶 있더라 ​

2022년 5월 8일/11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휴심정 뉴스(조현 기자)–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생활 15년…푸른 초원위 사랑·배려의 삶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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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씨 ‘이상한 나라…’ 펴내
그리스도 공동체 생생한 체험기
“일찍 합류 못한 걸 후회해요”

브루더호프 사람들과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기와밟기 놀이를 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의 박성훈 저자(사진 맨오른쪽).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이 공동체에 합류한 이후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있어요. 우리가 좀 더 일찍 이 삶에 함께하지 못한 걸 후회한답니다.”

2007년 초 한국 강원도 산골 출신의 박성훈씨가 아내 박순옥씨와 두 아들 하빈·유빈이와 함께 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합류하기 직전, 한국을 방문한 이 공동체의 구성원인 제리와 낸시 부부와 나눈 대화다. 순옥씨가 물었던 이 질문을 요즘 박씨 부부도 간혹 받는다. 그럴 때면 제리·낸시 부부 처럼 답을 한다

박성훈씨가 지난 15년간 한 리얼 공동체 체험기인 ‘브루더호프 이야기’를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신앙과지성사 펴냄)라는 책으로 펴냈다. 저자의 가족이 공동체원들과 어울리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모습으로 파티를 하고, 게임을 하고, 캠핑을 하고, 낚시를 하고, 웃고 떠들며 매일 축제 같은 삶을 사는 ‘브루더호프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나 소설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도시를 떠나 전원마을로 소풍을 가서 함께 즐기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브루더호프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고 다큐다.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의 신학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에 의해 설립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3개 공동체에서 2700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브루더호프에 오기 전 자신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은 동토’로 표현했다. 2007년 3월 브루더호프 공동체 산하 우드크레스트 공동체에 도착한 며칠 후 공동 저녁식사 시간에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지금 내 마음이 슬프다”라고 해버린 것이다. 그 순간 아내 순옥씨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열어 내보이다니…’라며 저으기 당황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녁식사가 끝나자 모든 형제자매들이 그의 앞에 서서 한결 같이 그윽한 눈으로 보며 “용기를 내세요,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요”라며 꽉 안아주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부어 주시는 걸까?’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그는 시간이 흐른 뒤 예수께서 상한 마음을 가진 자를 찾듯이 그들도 영혼이 부서진 자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어루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도 아무리 멋진 말을 해도 꿈쩍도 안 하던 형제들이 누군가 자신의 연약함을 내놓고 형제들의 도움을 구하면 어느새 우리의 강퍅한 마음들을 녹이며 형제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수없이 보곤 했다. 그는 이것이 ‘참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이라는 것을 안다.

방문 초기 저자 가족의 호스트였던 제임스, 제인 부부는 밤마다 집에 찾아와 서툰 영어 때문에 모임 때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 집의 중학교 1학년 딸 제시카는 7개월 된 유빈이를 돌봐주었다. 그러자 저자의 아내가 호스트 가족에게 “우린 당신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사람들인데 왜 당신들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나요?”라고 묻자 제임스가 답했다. “그럼 우리가 사랑해야지 미워해야 하나요?”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의 삶은 매일매일 축제 같지만, 축제와 목가적 삶만으로 ‘이상한 나라’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브루더호프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 늘 함께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즐기는 공동체적 삶에 있다.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한 약자를 가장 우선적으로 온 정성을 다해 돌보고, 어린이의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여기며, 재난·분쟁지역에 형제들을 파견해 세상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과 끈을 이어 기도하고 돕는 것에서 그 이상한 나라가 꿈꾸는 삶을 엿보게 된다.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행하기 위해 종교나 정치 노선에 상관없이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심각한 세상의 위기 해결을 목표로 하는 국제적 비영리단체를 지원하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지역 푸드 뱅크 건물을 수리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고, 외로운 노인들을 방문한다. 부르더호프 사람들이 현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를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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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 이야기에 늘 기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희귀한 염색체 이상을 안고, 심장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태어난 루크의 심장 박동과 그 부모의 아픔에 전 공동체원들이 함께하며 깊은 슬픔 속에서 공동체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루크를 아름답고 고요한 천국으로 안내했다.

김난예 한국침례신학대 교수는 “이 책은 경쟁과 자본주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존중과 돌봄과 환대의 기쁨과 함께하는 삶을 볼 수 있게 해주며, 자녀 교육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녹아있다”고 추천했다.

정원범 대전신학대 교수도 “이 책은 끝없는 욕망과 경쟁, 소외와 반목, 갈등과 분쟁, 억압과 착취,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와는 전혀 다른,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든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줘 동화나라에 갔다 온 행복감에 빠지게 된다”고 밝혔다.

 

https://www.hani.co.kr/arti/well/news/1041319.html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75 340 pig790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pig7902022-05-08 15:03:562023-02-21 23:01:41휴심정 뉴스(조현 기자)--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생활 15년…푸른 초원위 사랑·배려의 삶 있더라 ​

반하트-스포츠맨십의 전도사

2022년 3월 17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스포츠를 통한 복음 전도사,

반하트

 

이가람 경상국립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

 

 

한국 스포츠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반하트는 익숙한 이름이다. 필자 역시 YMCA와 스포츠의 연계과정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반하트라는 이름을 매우 많이 접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조우하면서 잠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반하트는 한국 근대 스포츠의 아버지로 통한다. 그는 한국 근대 스포츠의 요람인 ​YMCA가 최초로 초빙한 한 체육지도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에 근대 스포츠가 발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주체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전수한 농구와 배구 등의 각종 근대 스포츠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과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YMCA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한국인들이 잠시나마 울분을 표출할 수 있게 해 주는 원천이었다. YMCA에서 근대적인 스포츠 활동을 배운 한국 청년들이 운동장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일본과 대결하고 일시적인 승리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YMCA는 국제적인 기독교 단체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일본의 통제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였고, 그곳에서 반하트는 한국인들에게 근대 스포츠를 직접 가르치고 전수하면서 한국 사회의 근대 스포츠를 통한 문명화에 앞장섰다. 반하트는 근대화된 신체 문화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에 YMCA에 체육지도자로서 한국 청년들에게 신체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스포츠를 통해 젊은이들의 남성다움을 고취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스포츠는 신체적인 언어이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러 온 선교사들은 새로운 문화와 언어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는 서양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을 친화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한국 야구의 시발점이 YMCA 야구단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예증한다. 야구는 한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낯선 교회로 걸어가는 복음 티켓으로 이용되었다.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근대 스포츠들이 현재 한국 사회에 향유되고 있는 주된 스포츠가 되었다. 농구와 배구도 반하트가 주축이 되어 YMCA를 통해 한국에 도입되었고, 현재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 문화로 자리잡았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교회와 스포츠가 결속된 연유는 바로 스포츠가 복음 전파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초의 YMCA 체육지도자였던 반하트의 생애를 정리한 책 『반하트: 스포츠맨십의 전도사』는 한국 교회사와 근대 스포츠의 결속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선교사들에 관한 연구는 많이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은둔의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건너온 수많은 선교사들이 펼친 숨은 사역의 발자취가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한 분야가 바로 YMCA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명화와 복음적 사명을 실천한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스포츠를 통한 문명화와 전도를 이룩한 미국YMCA 선교사들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절실하다. 미국YMCA는 초창기 영국YMCA와는 달리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기독교 확장을 위한 핵심적인 매개체로 활용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YMCA 체육 사업을 주도한 선교사들의 역할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저서는 YMCA 선교사들의 역사적 연구를 위한 새로운 지평과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저술한 임연철 박사는 반하트의 삶을 4부로 구성하고 있다. 1부 "체육선교사 준비기"에서는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 반하트의 성장과 결혼 과정에 대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반하트는 어린 시절부터 야성적인 에너지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체육선교사가 되기 위한 선천적인 자질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대학 시절에 농구팀의 선수와 대학 YMCA의 위원회를 경험하며 YMCA 체육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영적∙신체적∙정신적으로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 농구는 YMCA가 발명한 스포츠 문화이다. 반하트가 학창 시절 YMCA가 창안한 스포츠 문화를 기반으로 스포츠 복음 전도사로서의 사명을 가슴 속에 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2부에서는 YMCA 체육부 지도자로 내한한 반하트의 초창기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1916년은 한국 스포츠사에서 중대한 해이다. YMCA 가 한국 최초로 실내체육관을 개장하며 동시에 본격적으로 스포츠를 보급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시기로, 이를 통해 스포츠의 대중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체육 교육을 전담할 책임자 반하트가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반하트는 한국에 올 때 짐 속에 "농구공 1개, 야구공과 포수용 글러브 각 1개, 배구공 1개, 그리고 치료가 불가능한 스포츠 사랑 정신"을 함께 가지고 왔다.(85쪽) 스포츠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YMCA 지도자로서 내한 이후에 빠르게 한국어를 습득하면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거의 모든 운동 종목을 직접 코치하고 운영함으로써 체육 활동의 발전과 보급에 앞장섰다.

 

반하트를 통해 한국인들은 강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체육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반하트는 스포츠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 스포츠를 사회적 개혁의 매개체로 인식했다. 그는 공정한 규칙 아래 건전하고 질서 있는 행동을 추구하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문명화된 사회를 추구하고자 했다.(121~123쪽) 두 아들을 잃는 역경 속에서도 그는 청소년교육, 실업교육, 농촌교육 등에 헌신하며 한국 사회의 개선과 진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3부 "한국 봉사 후반기(1930~1940)"에서 저자는 서울YMCA 협동총무인 브로크만을 대신해 한국YMCA의 미국 측 책임자 활동을 수행한 반하트에 주목했다. 반하트는 이 기간에 한국 사회가 직면한 편향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우려하며 YMCA가 영적으로 나라를 붙잡고,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출구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199~200쪽) 국가적 위기를 하나님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반하트는 서양 근대 스포츠와 함께 씨름과 같은 전통 스포츠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저자는 이 시기 반하트가 체육활동 이외에도 근대화된 공업과 농업을 기반으로 한국 지역사회의 문명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흔적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반하트가 일제강점기 근대적인 공업 및 농∙ 축업 기술과 경제관념을 직접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생활 개선과 발전을 이룬 숨은 공로자였음을 알 수 있다.

 

4부에서는 반하트의 퇴거와 방콕에서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반하트는 전운이 감도는 식민지 공간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저자는 반하트가 한국에서 퇴거한 후의 삶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국에 도착한 반하트는 잠시 휴식도 없이 하나님의 부름이 있는 태국으로 홀로 향했다. 위험한 발걸음이었다. 태국은 일본 제국의 야욕 속에 점령된 극동의 또 다른 공간이었고, 반하트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 젊음과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총성이 오고 가는 급박하고 위험천만한 공간에서도 반하트는 YMCA 총무로서 피난민 구제사업, 응급사업, 위생사업, 체육 활동 등을 주도하며 인류를 위한 선한 사명을 실천했다. 스포츠를 통해 다져진 남성다운 기독교인의 기질을 끝까지 유지하고 실천한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스포츠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YMCA 선교사들이 전개한 복음 사명의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YMCA는 극동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에 동아시아의 기독교적 사랑과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식민지 한국 사회에서 YMCA 문명과 교육을 위한 유일한 공간으로 가능했고, 그중에서도 체육 사업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가장 유용한 다리였다. 반하트는 스포츠 복음의 설계자이자 실천가였다. 이 책은 저자의 집요한 사료 수집과 철저한 사료 검증을 통해 잊혀질 수도 있었던 반하트와의 역사적 대화를 실증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평소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의 삶을 존경해 선교사 생애에 관한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저자의 끊임없는 발품이 일구어낸 소중한 문헌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반하트라는 열정적인 스포츠 복음 전도사가 없었더라면 스포츠에 기댄 한국교회의 확장도 더딘 행보를 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 근대 스포츠의 발아도 미진했을 것이다. 스포츠의 묘미는 자발적 실천에서 나오는 즐거움에 있다. 필자는 이 책 속의 반하트를 보며 그가 복음 전도 과정에서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이끌려 스스로 온 극동에서 스포츠를 통해 즐거운 복음을 실천했다고 믿는다.

 

 

 

이가람 스포츠 문화사를 전공하였다. "미국 YMCA 역사에 숨겨진 아이러니: 교회의 세속화인가? 스포츠를 통한 복음화인가?", "Philip L. Gillett의 한국근대스포츠 발전에 미친 영향"등의 논문이 있다. 경상국립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Asian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편집위원, 한국체육사학회 국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사상 2022년 3월호(164~16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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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2022년 3월 17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평신도에게 위임하고, 소그룹으로 섬겨라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 유성준 대표

유성준 교수는 협성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2005년 당시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평단)를 출판하여, 1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하던 유 목사에게 큰 영향을 준 세이비어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는 “1947년 고든 코스비 목사가 워싱턴 북쪽의 빈민 지역 아담스 모르간(Adams Morgan)에 설립한 교회로, 영성(Inward Journey)과 사역(Outward Journey)의 균형을 강조하며 철저한 입교과정과 훈련과정을 정하고 지키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이다. ‘세이비어(savior)’는 기독교에서는 ‘구세주’를 일반적으로는 ‘구제하는 사람’을 뜻한다.

유성준 교수는 23년의 미국 이민목회를 마치고 귀국한 후 15년간 협성대학교 교수와 교목실장으로 봉직했다. 2015년부터는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교회에 세이비어교회의 사역과 핵심철학을 전파하데 힘쓰고 있다. 올해 초에는 한국교회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곁들여 『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미국의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 등 소위 한국교회가 모델로 삼았던 많은 교회들이 사라지고 격변을 겪는 교계 현실 속에서, 오늘날 팬데믹으로 신앙의 지형이 완전히 변해버린 한국교회 상황에서 과연 세이비어교회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할까. 연희동에서 유성준 교수를 만나 직접 들어보았다.

 

대표님의 신앙여정이 궁금합니다.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원주 51수송병원에서의 군대생활이다. 1976년 강원도 신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에 군인들을 위한 교육 위생병으로 파견되어 한 달간 농군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 영성이 중요하지만,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처럼 복음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것이 내 평생의 소명이자 신앙관이 되었다. 제대 후 입학한 협성신학교에서 김찬국 교수님을 만나 ‘정통실천신학 Theology of Ortho-praxis’의 중요성을 배웠다. 1981년 가을에는 협성신학교 첫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오클라호마 필립스신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는다. 1985년 여름학기에 마지막으로 공부한 ‘청지기의 삶에 대한 과정Stewardship in Local and Global Context’을 통해 도심지 빈민가와 부유층이 사는 지역들을 두루 방문하면서, 크리스천이 세상을 위해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이애주 사모와 동역하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지 않는 자비량 목회를 하기도 했다. 게렛신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워싱턴제일교회에서 목회했다. 1994년 세이비어교회를 처음 방문하면서, 내가 신학을 공부하며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던 목회를 실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교회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세이비어교회 산하 서번트리더십학교(The Servant Leadership School)에서 10년 간 공부하면서 핵심철학 다섯 가지를 배웠는데, 성경, 소명, 공동체, 영성과 기도, 마지막이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나는 이 핵심철학이 감리교회를 시작한 ‘웨슬리Wesley’의 ‘실천적 경건’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적인 영성과 외적인 사역의 조화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강조한다. 이 두 가지가 세이비어교회에서는 통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책을 낸 계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세이비어교회의 설립자 고든 코스비 목사님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워싱턴 빈민가에서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이민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큰 도전을 받았다. 2004년 모교인 협성대학교에 교수로 부름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되면서 1년 동안 준비해 쓴 책이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양적 팽창, 외형에 치우침, 개교회 중심주의, 내부 지향적 체제 그리고 목회자의 명예욕과 재물욕 등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새롭고 올바른 교회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세이비어교회를 소개한 것이다. 이번에는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요청하여 『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출간하게 되었다.

 

세이비어교회도 75주년을 맞았습니다. 고든 코스비 목사의 은퇴와 소천, 사회상의 변화 등을 겪으면서도 그 탁월함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코스비 목사가 은퇴한 후 세이비어교회는 후임자를 정하지 않고 오히려 본부교회를 해체했다. 그동안 함께 사역하던 10개의 지교회 형태 사역공동체를 독립시켰다. 코스비 목사가 평소에 이야기 해오던 대로 “내적인 영성, 영성의 표출로서의 외적인 사역, 그리고 사랑과 책임 있는 공동체에 중점을 둔 작지만 밀도 있게 헌신하는 훈련된 사람들의 모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이비어교회의 평신도 숫자는 150명을 넘긴 적이 없다. 세이비어교회의 정식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 한 시간 성경 읽고 기도하기, △2,3년이 소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와 서번트리더십학교 훈련과정 참여하기, △온전한 십일조헌금 드리기, △소그룹 미션그룹 모임에 매주 참여하기, △45가지 지역사회 사역 중에 은사별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자신의 삶의 전 지경을 포함하는 영적 자서전 쓰고 공동체에 발표하기 등의 까다로운 과정을 따라야 한다. 이런 입교과정은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갱신해야 한다. 세이비어교회는 지금도 △빈민 청소년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일대일 멘토링과 과외 프로그램, △매년 천여 명 실업자들을 훈련시키고 취업시키는 취업사역, △미국 유일의 노숙자 병원인 그리스도의집,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역,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사마리아인 여인숙 주거 사역 등 지역에 꼭 필요한 45가지 관련 사역들을 펼치고 있다. 고도로 훈련된 평신도들의 소명과 동역 덕분에 또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지금도 그 사역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다.

 

유성준교수TV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9C%A0%EC%84%B1%EC%A4%80%EA%B5%90%EC%88%98tv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까지 철저한 영성과 지역사회 사역의 균형을 소그룹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는 세이비어교회의 서번트 목회를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신학을 가르칠 때도 그 지역과 현실에 맞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워싱턴 빈민가에 최적화된 세이비어교회의 사역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맞게 재해석해서 제공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국교회 상황 가운데 적용 가능한 보다 실제적인 사역 매뉴얼에 집중했다. 이제는 이론으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변화해야 한다.

 

한국에도 세이비어교회처럼 서번트리더십을 실천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사회복지와 기독교 복지는 다르다. 기독교 복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아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안에 영성이 가득 차고 흘러넘쳐야 사역으로 드러날 수 있다. 고든 코스비 목사가 주장한 ‘내적인 영성과 외적인 사역의 조화’도 같은 말이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해도 아무도 교회를 찾지 않는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 개척’이 아니라 ‘사역의 개척’이다. 일부 목사님들이 말하는 ‘마을목회’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지역의 필요를 중심으로 사역을 넓혀 나가는 세이비어교회의 사역과 다르지 않다. 이번 책에도 내가 임원으로 동역하고 있는 탈북민 자활을 위한 사회적 기업 ‘위로재단’ 이 펼치는 다양한 사역 등 실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아가 책의 성격상 소개하지 못했지만, 세이비어교회를 모델로 한국의 상황에 맞게 목회하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천의 김 목사 부부의 경우, 미국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하고 서번트리더십학교를 이수한 뒤 2003년 선한공동체를 시작했다. 청소년을 위한 주거공동체 및 밥차 사역 등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서번트 목회를 하는 교회와 목회자, 평신도를 소개하는 책도 준비하고자 한다.

◇ 40여 년 동역해온 유성준 목사와 이애주 사모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는 목사 중심이다. 세이비어교회의 사역은 평신도가 주축이 된다. 서번트 리더십이 교회의 목표 철학이 되어야 하는데, 그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위임’이다. 목사의 권한을 훈련시킨 교인들에게 위임해야 하는 것이다. 목사나 교회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가 소명에 따라 헌신할 수 있도록, 자발적인 소그룹을 만들어 사역할 수 있도록 세워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영성을 가다듬어야 하고 외적 사역을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에서 교육을 받는 분들은 목회자가 많은데, 앞으로는 평신도도 훈련원을 많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가 위탁을 의뢰해도 좋을 것이다. 당장 훈련원을 이용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과 함께 <유성준교수TV>(유튜브)를 시청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이연경 기자(주간기독교)

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1436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75 340 pig790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pig7902022-03-17 16:10:512022-03-17 16:20:28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한국교회 대부흥과 발전에 기여한 선교사 로버트 하디

2022년 3월 17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한국교회 대부흥과 발전에 기여한

선교사 로버트 하디

 

김칠성 목원대학교 교수

 

한국 개신교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성장과 발전의 밑바탕에는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한국 개신교인들의 헌신과 봉사가 있었다. 이렇게 한국 개신교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수많은 선교사들 중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 1865-1949, 河鯉泳, 하리영) 선교사이다.

 

하디 선교사는 1903년 원산에서 시작하여 1907년 평양에서 절정을 이룬 한국 대부흥의 주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디 선교사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1886년에 시작된 학생해외선교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의 영향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과대학 YMCA의 파송을 받아 1890년 조선에 입국하여 8년간 독립선교사(교단 파송을 받지 않은 선교사를 지칭)로 활동했다. 그 후 1898년에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한국 대부흥, 신학교육, 농촌계몽, 문서선교 등 다방면에서 한국 개신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은퇴한 이덕주 교수는 최근 하디 선교사의 전기를 서술한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를 펴냈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의 1장에는 하디의 출생과 선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1865-90), 2장에는 독립선교사로 활동했던 8년의 시간(1890-98), 3장에는 한국 부흥을 위해 기여한 내용(1898-1907)이 담겨 있다. 이어서 4장에서는 현재의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전신인 협성신학교에서 교수와 교장으로 활동했던 내용(1907-23), 5장에서는 문서선교, 농촌계몽운동, 남북감리교회 연합운동 및 그의 은퇴와 별세를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하디의 저술(논문과 단행본)과 그의 신학사상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선교사 하디가 다방면에서 한국 개신교 발전을 위해 기여한 내용을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다음의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하디가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한국교회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저자의 풍부한 한국사 지식은 하디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청일전쟁과 일제강점기에 하디가 내린 결정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그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연구는 매우 유용하다.

둘째, 이 책은 다양한 자료의 활용이 돋보인다.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 출신 독립선교사로 시작하여 이후 미국 남감리교 소속으로 한국에서 무려 45년간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가 직접 쓴 글이나 그에 관한 내용이 캐나다, 미국, 한국 등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저자는 해외에 있는 자료뿐만 아니라 오래된 국내 자료도 발굴하여 하디의 생애와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특히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국내외 자료들을 발굴하여 소개하였기에, 후대 연구자들이 앞으로 하디를 연구할 때 큰 도움이 되리라 예상된다.

셋째, 이 책에서 사용한 도표들은 독자들이 하디의 활동을 더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이 책은 하디 선교사의 생애와 다양한 활동을 세세히 다루었기에, 그 서술 분량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저자는 곳곳에서 도표를 통해 앞서 소개한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부록에 실린 ‘하디 연표’는 하디와 그의 가족이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연대기적 상황을 병기함으로써 하디의 생애와 활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몇 가지 표현상의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1) 저자는 “독실한 장로교 집안에서 출생한 펜윅”(77쪽)이라고 그를 소개하며, 그 이후 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40쪽에서 펜윅을 하디, 에비슨과 같은 “감리교 신도들”로 표기한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하디, 펜윅, 에비슨은 모두 캐나다 출신이고, 하디와 에비슨은 감리교 출신이지만(에비슨은 후에 장로교로 소속을 변경하여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됨), 펜윅이 감리교인인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2) 58-59쪽에서는 학생해외선교자원운동(SVM)의 영향의 일환으로 하디에게 선교적 자극을 준 인물인 존 포어맨(John N. Foreman)을 “목사”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하디의 1914년 혹은 1934년의 글을 기반으로 작성된 내용이다. 하지만 존 포어맨은 당시 목사가 아니었고,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뉴욕 유니온신학교에 갓 입학한 하디 또래의 젊은 신학생이었다. 아울러 67쪽에서 “목사”로 소개한 로버트 와일더(Robert Wilder, 1863-1938) 또한 당시에는 하디보다 두 살 많은 20대의 젊은 대학생이었다. 다시 말해 포어맨과 와일더 둘 다 후에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하디가 자신의 삶을 회고할 때 이 두 사람을 목사로 지칭했지만, 하디가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던 1886년에 캐나다에 와서 해외선교자원운동을 펼쳤던 이 두 사람은 당시에 목사가 아닌 20대 청년이었다.

(3) 78-79쪽에서 저자는 펜윅에게 선교적 영향을 미친 “와일더 형제”를 로버트 와일더의 아버지인 로열 와일더(Royal Wilder) 목사(인도 선교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와일더 형제”는 로버트 와일더가 맞다. 왜냐하면, 당시 로열 와일더는 자신의 아들이 대학교를 순회하면서 선교자원운동을 펼치기보다는 자신의 선교잡지 출판사역을 맡아주기를 바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버트 와일더 역시 인도 선교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인도에서의 경험을 이미 무디의 수련회에서 강연함으로써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4) 88쪽과 188쪽에서 저자는 제중원(초기에는 광혜원)을 “국립병원”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서울대학교(국립병원)와 연세대학교(선교병원)가 여전히 논쟁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필자가 보기에는 ‘왕립병원’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둘째, “부흥”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개념상의 혼란이 보인다.

하디가 한국 개신교에 미친 영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흥이다. 그런데 저자는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여러 가지 개념을 포괄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특히 “부흥운동”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부흥”을 교회의 성장과 번영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76쪽에서는 부흥을 성장과 동의어로, 277쪽에서는 “부흥과 성장,” 그리고 310쪽에서는 “부흥이나 성장”이라고 표현하고, 438-439쪽에서도 “부흥, 성장”, “부흥과 성장”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347쪽에서는 “교인 숫자가 늘어나고 교회 규모가 커지는 것이 부흥이 아니라 신도와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부흥이었다.”라고 표현하면서, 원산 부흥을 “거룩한 회심운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373쪽에서 하디가 윤성근에 관해 기술한 영어 원문을 번역하면서 저자는 ‘prosper’(번영)를 “부흥”으로 번역하였다. “그는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오직 교회가 부흥되기만 바랐습니다.”(He loved the Church, and his whole desire was to see it prosper.)

 

그러나 필자의 이전 연구[“하디의 회개, 부흥의 원인인가, 결과인가?”, 「선교신학」 제32집(2013): 175-199]에서 이미 밝혔고, 1923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2월 부흥회 주제가 “성령세례”였듯이, 부흥은 회심(conversion)이나 교회성장(church growth)이 아니라 바로 “성령세례”(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의미한다. 특히 ‘부흥운동’(revival movement, Revivalism)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이전의 다른 연구[“원산부흥, 일반부흥인가, 대부흥인가” 「한국교회사학회지」 제34집(2013): 253-283]에서 밝혔듯이, ‘부흥’과는 전혀 다른 “전문적인 대중전도”(professional mass evangelism)(에드윈 오르, Edwin Orr) 또는 “부흥 혹은 회심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안 머레이, Iain H. Murray)으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디가 말하는 부흥은 교회성장이나 회심을 위한 전도운동을 의미하지 않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을 경험한 기존 신자들에게 “성령의 부으심” 또는 “성령세례”가 임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성화된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 있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부흥에 관한 용어를 사용할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반부흥과 대부흥의 차이, 그리고 원산 부흥과 평양 부흥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 관한 필자의 연구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셋째, 네비어스 선교방법에 관한 하디의 입장을 서술한 부분은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358-359쪽에서 1903년 원산에서 일어난 부흥 이후에 토착인에 의한 전도활동(self propagation)과 자립운영(self support)을 언급하면서 “네비어스 선교방법”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네비어스 선교방법론은 감리교에서 채택한 선교방법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디와 연관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하디가 행한 일에 네비어스적 방법론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디가 네비어스의 방법론을 따랐다고 말하기는 어렵기에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관해서는 최근에 발표한 필자의 연구[“한국선교 초기 감리교와 장로교의 교회성장 비교연구”, 「선교신학」 제64집(2021): 166-192]를 참고하기 바란다.

 

은퇴 이후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저술로 한국교회사 분야의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 이덕주 교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많은 후속 연구가 이어져 선교사의 역할모델로서의 하디 선교사, 그리고 한국 대부흥의 도구로 쓰임받은 하디 선교사에 관한 재조명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김칠성|드류대학교에서 신학석사(M.T.S)를, 애즈베리신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교회 130년 역사에 묻고 미래에 답하다』, 『대한민국을 세운 위대한 감리교인』(이상 공저) 등이 있다. 목원대학교에서 선교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사상 2022년 2월호 (172~17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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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준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를 읽고-이후정 총장(감신대)

2022년 1월 21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미래교회의 포괄적 대안 :

 

유성준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를 읽고

 

이후정목사 (감신대 총장)

 

그동안 세이비어교회 사역의 소개를 통해 한국 기독교에 많은 독자층을 가져온 유성준교수는 이번에 전적으로 새로운 포맷 속에 귀중한 노고와 함께 쌓아온 연륜과 경험을 담아 우리에게 선사하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온 것을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추천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평을 하려고 한다.

 

기독교가 처음 이 땅에 들어오던 때,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종교에 대해 조선의 백성들은 가히 폭발적으로 반응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위험하다고 여긴 조정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통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확산되던 조선 말기, 조정이 사상적·철학적·종교적 통제력을 상실한 때에 기독교는 대중적 포교를 앞당기게 되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급속히 놀랍게도 전파된 것은 기독교에 대한 백성들의 열렬한 기대어린 반응과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기독교는 단순한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시대를 선도하고 개혁하는 삶의 이정표였고 방향타였다. 특히 교회가 가진 평등성의 가치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변혁과 희망으로 가는 도약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교회는 “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교리 아래 많은 학교를 세워 차별 없이 배우도록 하고, 병원을 지어 아픈 이들을 치료했다. 이와 같은 만인의 평등성과 교육 및 의료선교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후 100년 넘게 지나온 한국기독교의 역사에 있어 크나큰 성장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평등성의 가치가 무색하게 교회에서는 섬김의 직분이라는 본질보다는 위계적 구조가 앞섰고, 교회의 진정성이 교인 수와 물질의 증대인 것처럼 외적 성장에 몰두했으며, 미신·광신·이단 등 잘못된 형태들로 성찰적인 신앙의 성숙을 외면했다.

 

그 결과 작금의 기독교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존귀함과 주체적 가치의 함양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사회적 공신력은 바닥에 떨어지는 실망을 가져왔다. 교회가 고유한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면서 이 시대와 사회에 소망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아픔도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몇몇 개신교가 보여 준 비이성적이며, 반사회적인 모습은 ‘개체교회 중심주의와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불러왔고, 불일 듯 타오르는 교회의 위기상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믿는 자여 어이 할꼬”라는 찬양의 가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탄식처럼 터져 나오는 시대적 상황 가운데, 예언자적 내용을 담은 “유성준 교수의 새로 쓴 ”세이비어 교회 이야기”가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와 사람들이 열광하던 시대에 창출되었던 ‘진정한 교회(Authentic Church)’로서 갖추어야 할 원리와 요소들, 나아가 삶의 방법론과 실천 매뉴얼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 핵심내용을 정리해 본다면,

 

첫째, 균형성이다. 즉 영성과 사역의 균형이다. 이를 내적 여정(Inward Journey)과 외적 여정(Outward Journey)이라고 칭한다. 존 웨슬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예수그리스도의 대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Loving God and Neighbor)에 두고, 이를 위해 경건의 훈련(Works of piety)과 자비의 훈련(Works of mercy)을 실천했다. 이것이 세이비어교회의 핵심 목회철학인데, 참되고 진정한 내적 여정은 이웃과 사회를 향한 외적 여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음을 피력하면서 다양한 실천방법들을 제공한다.

 

둘째, 다양성이다. 매우 다채로운 사역의 실천이다.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은총만이 복음의 진리이나, 그것을 잘못 전개한 결과 이분법적 절연에 치우쳐, 사회구원을 살피지 못하고 개인구원에 치중한 모습이 이 시대 한국교회의 주된 약점이 되었다. 세이비어교회는 내적 여정(Inward Journey)과 외적 여정(Outward Journey), 그리고 함께하는 여정(Journey Together)을 걷는다.

 

사역(Ministry)의 어원은 빼는 것(minus)을 함의하는데, 내가 없어지고, 비워지는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의 대표적인 사역들은 토기장이 집 카페, 서번트 리더십 학교, 데이스프링 침묵기도 수양관, 노숙자병원 그리스도의 집과 카이로스의 집, 빈민주거사역-새 공동체 교회 등이 있다. 사역을 행하는 공동체는 10개로 흩어져 믿음과 섬김으로 함께하는 여정(Journey Together)을 걷는다. 생명의 빵 교회, 데이스프링 교회, 제8일 신앙공동체, 축제교회, 예수님의 친구들 교회, 희년교회, 새 공동체 교회, 구도자교회, 그리스도의 집, 그리스도의 교회, 지금 즉시 등이다.

 

셋째, 구체성이다. 수많은 사역들이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믿음과 열정으로 섬기는 사역에 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계화된 사역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그리스도의 집-노숙자 병원, 카이로스의 집-노숙자병원과 연관된 재활 프로그램, 데이스프링 침묵기도 수양관, 믿음과 재정 네트워크, 어린이 사랑모임-양부모 사역, 희년 주거사역, 희년 직업소개 사역, 토기장이의 집 카페, 사마리아 주거 사역-중독사역, 시타 예능센터-빈민청소년 예능사역, 회복 카페 등 매우 고귀한 세이비어교회의 구체적인 사역 매뉴얼을 담고 있다.

 

넷째, 적용성이다. 이 책은 독특한 교회 한 곳을 단순히 알리는 정보에 그치지 않고, 다각적인 아이디어(Idea)와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공한다. 특히 ‘섬김’과 ‘종, 노예’를 의미하는 ‘서번트(Servant)’는 이제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함양하고 체계화해야 할 고유성과 필연성의 가치이다. 서번트를 각자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 맞게 적용과 실천을 모색한다면, 우리의 신앙과 목회, 사역의 자리를 넉넉히 갱신하고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방향성이다. 사변적인 이론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실제적인 이정표를 발견하게 한다. 단어, 문장, 문단 하나하나 정독하고 곱씹으며, 성찰하고 계획한다면, 이 책은 감추어진 보물과 값진 진주가 될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면서 교회가 처한 엄청난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 나라와 진정한 교회를 회복하고 맛보며 누리기 위해 이 책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을 확신한다. 시기적절하게 아주 좋은 책을 저술하여 한국 개신교에 또 한번의 경종을 울려준 유성준 교수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앞으로 이 책이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 신학도들, 나아가서 일반 평신도 등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을 믿고 소망하며 서평을 대한다.

 

http://m.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847

이후정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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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 목사-조현이만난사람

2021년 10월 27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하나님 ‘떠나라’ 목소리 들릴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죠”

 

 

[짬] 자전 에세이 펴낸 홍인식 목사

지난해 순천중앙교회 담임을 사퇴하고 목회 현장을 은퇴한 홍인식 목사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자전적 신앙고백서 <엘 까미난떼>를 쓴 이유를 말하고 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홍인식(65) 목사는 밝고 명랑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이사장으로서 차별금지법 폐지를 주장해도, 보수 목사들조차 명랑한 그의 얼굴을 보면 험한 말을 접기 일쑤다. 인생 대부분의 시기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칠레, 멕시코, 한국 등을 떠돌며 산 방랑자의 낭만과 자유와 여유를 대하면 상대방도 완고한 무장이 해제되기 마련이다. 최근 스페인어로 ‘걷는 자’란 뜻의 책 <엘 까미난떼>(신앙과지성사 펴냄)에서 명랑한 겉모습과 달리 아픈 어린 시절까지 고백한 그를 지난 6일 서울 공덕동의 한 교회 카페에서 만났다.

스페인어 걷는 자 ‘엘 까미난떼’ 출간

부모 이혼·더부살이·남미 이민 등

성공·부자 갈망했던 성장기 아픔 첫 고백

한국인 최초 ‘해방신학’ 박사학위 받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칠레 등등

10차례 ‘꽃방석’ 자리 버리고 자유롭게

 

신앙과지성사 제공

 

홍 목사는 20대 때 신학대학원생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했던 영락교회에 전도사로 들어갔다. 이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주목받던 한인교회에서, 50대엔 서광선 이화여대 교수·한완상 서울대 교수·이삼열 숭실대 교수 등이 활동했던 서울 압구정동 현대교회에서, 올 초까지는 전남 순천의 장자교회인 순천중앙교회에서 각각 목회 활동을 했다. 그는 그런 ‘꽃방석’을 언제나 임기나 정년도 채우지 않고 박차고 나갔다. 지위에도 돈에도 매이지 않고 언제나 떠났다. 그쯤은 놓고 떠나도 뭔가 유복한 뒷배경이 있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가 생애 처음으로 <엘 까미난떼>에서 고백한 삶은 ‘유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만 7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짐을 싸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아빠 집으로 옮겼다. 엄마 집을 떠나는 차에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떠올리며 조약돌로 표시도 해놓지 않았는데 어떻게 엄마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길을 잃지 않으려 뇌리에 박았던 창 밖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아빠가 새엄마와도 이혼해 다시 짐을 쌌다. 옮긴 곳은 아빠를 ‘오빠’라 불렀으나 혈육은 아닌 ‘고모’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더부살이 5년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학비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20일간 등교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전교 1·2등을 했지만 학교에서 쫓겨나던 날의 설움과 모욕감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어머니·누나·여동생과 함께 파라과이로 농업 이민을 떠났다. 가난을 벗어나려 고국을 떠나는 날, 너무도 울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도 기어코 성공해서 가난에 보복하겠다는 마음만은 굳건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파라과이에서 고교를 다니며 옷행상과 옷가게를 했고, 아순시온국립대학 경영학과에서 성공과 부자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한국인 최초의 ‘해방신학’ 목사가 됐다. 해방신학은 혼자 잘 사는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1960년대 이래 남미에서 독재자들과 다국적기업의 부도덕에 맞서 로메로 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를 낸 게 해방신학이었다. 그래서 해방공간 북에서 공산당에 의해 박해받고 남하해 친미·친독재의 길을 걷던 월남자들이 세운 영락교회를 비롯한 주류 교회의 보수적 크리스천들에 의해 민중신학, 해방신학을 비롯한 진보는 ‘빨갱이’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북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땅과 재산을 빼앗기고 남하한 아버지를 둔 그가 영락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해방신학자가 되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홍 목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방신학과 달리 마치 성령론자처럼 고백했다. 파라과이 한인교회의 환송을 받으며 “목사가 되어 다시 남미로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는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교회인 영락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교인들을 심방할 때마다 신자들이 여비 봉투를 줘서 주머니는 늘 두둑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짝사랑했던 여성과 결혼해 ‘토끼 같은’ 아이들까지 생겼다. 가난한 파라과이로 돌아간다는 약속 같은 건 곧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미아리 산동네에서 할머니 권사가 봉투도 없이 꼬깃꼬깃한 5천원 지폐를 주었다. 마지못해 받긴 했지만 ‘내가 거지인가. 이따위 적은 돈을 주다니’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 순간 머릿속에 뚜렷한 음성이 들렸다. ‘이가봇, 내가 너를 떠났다’는 성경 구절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소리에, 하나님이 아닌 봉투를 믿는 나를 발견하고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뒤 그는 짐을 싸 파라과이로 떠났다. 그곳에서 목회를 하다 몇년 뒤 아르헨티나로 옮겨 목회를 했다. 거기서 체 게바라의 친구인 세계적인 개신교 해방신학자 호세 미게스 보니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해방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교수 겸 목사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잘 나가는 신성교회 담임을 할 때였다.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한인장로교총회에 참석했을 때 한 지인이 그를 처음 만나는 목사에게 “아르헨티나에서 온 홍인식 목사님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내가 그냥 목사인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 목사고, 박사에 교수까지 하고 있는 성공한 목사라고 소개해야지, 그따위로 소개하다니’란 생각에 불쾌해하며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다시 ‘떠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신성교회를 떠나 남미에서도 가장 열악한 공산국가 쿠바로 가 5년간 신학대학 교수를 했다. 이후 칠레에서도, 서울 현대교회에서도, 멕시코 신학대에서도, 전남 순천중앙교회에서도 기득권을 버리고 떠났다. 무려 10차례 뒤돌아보지 않고 ‘엘 까미난떼’가 됐던 그는 말했다.

‘신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신을 믿느냐’가 문제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돈, 지위, 이데올로기, 명예를 믿은 건 아닌지…. 남미에서 평생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와 함께하며 군부 독재자에게 죽임까지 당하는 해방신학자에 비하면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14602.html#csidx2743552ce481a129656a07e3e891a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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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하디 –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자, 원산의 기적이 시작됐다

2021년 9월 2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자, 원산의 기적이 시작됐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입력 2021.09.01 03:00)

로버트 하디 선교사

 

“하디 선교사가 수없이 ‘회개하라’고 할 땐 아무 반응이 없던 교인들이 ‘저부터 회개합니다’ 하자 기적처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무려 1200쪽에 육박하는 ‘영(靈)의 사람, 로버트 하디’(신앙과지성사)를 최근 펴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 출신 감리교 의사 선교사로 1890년 조선에 온 하디(1865~1949)는 선교사, 신학 교육자, 신학 교재 60여 권을 쓴 저술가로 평생 한국 복음화에 헌신했다. 특히 1903년 ‘원산 부흥 운동’을 이끈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원산 부흥 운동은 4년 후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한 ‘평양 대부흥’의 도화선이 된 사건. 그러나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도 하디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03년 하디 선교사의 회개운동 이후 원산교회는 부흥했다. 새 건물을 짓고 기념촬영한 모습. /신앙과지성사

 

이 교수에 따르면 하디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회개’가 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원산 부흥 운동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하디는 1902년 무렵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한국 선교 13년째, 원산 부임 10년째인 이때까지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인 집을 불시에 방문해 보니 술상을 놓고 교인 모임을 하고 있었고, 교인을 빙자한 횡령·사기 사건도 빈발했다. 하디는 ‘세례 교인’을 ‘학습 교인’으로 강등시키고 ‘제명’ ‘무기한 (예배) 출석 금지’ 조치도 내렸다. 선교 보고서에 “원산 교인들의 영적(靈的) 상태는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적을 정도였다.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 내 로버트 하디 가족묘 앞에서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전기 쓴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은 이듬해인 1903년 여름. 휴가철을 맞아 외국인 선교사들이 휴양지 원산에 모여 기도회와 성경 공부 모임(사경회)을 열었다. 최고참 선교사 하디가 설교를 맡게 됐다. 그는 문득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진정한 믿음이 없었고, 조선 교인들을 오만과 교만으로 대했음을 통회(痛悔)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 그동안 ‘조선 교인 탓’을 하던 하디가 ‘내 탓’이라고 고백하자 다른 외국인 선교사에 이어 조선 교인들로 회개의 불길이 번졌다. 모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갚지 않은 돈을 갚는 운동 아닌 운동이 벌어졌고, 20년 전 본의 아니게 더 받은 봉급을 반환하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그 이전까지 ‘회개’는 무슨 뜻인지 감(感)도 못 잡던 조선 교인들이 비로소 회개의 참뜻을 알게 된 것이다. 부흥의 불길은 이내 원산에서 서울, 개성 그리고 평양으로 확산했다. 그 결과 불과 10여 년 후인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의 절반 이상을 개신교인이 차지할 정도로 개신교가 이 땅에 탄탄히 자리 잡게 됐다.

 

하디 선교사 부부(오른쪽)와 애비슨 선교사 부부. 하디 선교사는 좀처럼 웃지 않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신앙과지성사

 

이 교수는 하디의 삶을 통해 개신교가 조선에 전해져 뿌리 내리는 과정을 꼼꼼히 재구성했다. 그는 “원산 부흥 운동의 본질은 ‘물질적 성장’이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거듭나려는 본질적 변화였기에 가능했다”며 “코로나 시대를 맞은 한국 교회도 하디의 삶을 통해 무엇이 우선이고 본질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949년 사망한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묘비. /신앙과지성사

 

2023년 원산 부흥 운동 120주년을 앞두고 하디 선교사의 전도로 세운 간성·강릉중앙·광희문·석교·수표교·양양·종교교회가 ‘하디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본부와 감리교신학대가 평전 발간에 뜻을 모았다.

http://bit.ly/3gQCDr1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75 340 pig790 http://www.miral.co.kr/wp-content/uploads/2015/02/logo_onepage_portfolio_text2.png pig7902021-09-02 18:46:072021-09-02 18:47:58로버트 하디 -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자, 원산의 기적이 시작됐다

로버트 하디 -출판기념회

2021년 8월 28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힘과 능이 아니라 성령으로 회개한 하디 본받아야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 출판감사예배

◇ 이철 감독회장
◇ 이철 감독회장

 

하디기념사업회(회장 최이우 목사)가 하디 선교사의 원산대부흥운동 120주년(2023년)을 앞두고, 그의 삶과 신앙이 담긴 전기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신앙과지성사)를 출판하고, 지난 8월 24일 대한기독교감리회 선교국, 역사보존위원회와 공동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종교교회 나원용홀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행사는 오일영(기감 선교국) 총무의 사회로 차재일(광희문교회) 목사의 기도, 조선석(양양교회) 목사의 성경봉독, 이철 감독회장의 설교와 서승환(종교교회 찬양대지휘자) 교수의 축가로 진행됐다. 이어 최이우(하디기념사업회 회장) 목사의 경과보고와 윤경로(전 한성대 총장) 박사의 서평, 이후정(감신대 총장) 목사의 축사, 이덕주(전 감신대) 교수의 저자인사 시간을 가진 뒤, 안정균(감리교역사보존위원회 위원장) 감독의 축도로 마무리했다.

이철 감독회장은 “내 안에 거하라!”(요 15:7)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디는 선교하면서 바른 목적을 가지고 열정을 다했지만, 왜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을 한국 사람이나 환경 등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다. 이 사건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영적 부흥을 이 땅에 가져온 것이다.”라고 말하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겪는 어려움의 해결 방법도 하디의 깨달음과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이우 회장
◇ 최이우 회장

 

하디기념사업회 회장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1907년 평양 산정현교회 사경회도 하디의 1903년 부흥운동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하디를 통해 한국 땅에서 일어난 놀라운 역사를 우리 세대뿐 아니라 후손들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유산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기를 펴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10년 전 하디에 대한 책을 내고, 턱없이 적은 분량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이덕주 교수는 “대한항공 토론토지부장을 역임한 연동교회 강사겸 집사가 캐나다 선교사 게일과 하디의 고향을 방문하는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며 동행을 요청해 다녀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 뒤 “하디 전기 쓰셔야 됩니다”라는 박동찬(일산광림교회) 목사와 장이려(속회연구원) 목사의 강권 속에 밀린 숙제로만 안고 있다가, 하디기념사업회의 청탁을 받아 전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

이 교수는 ‘영의 사람’이라는 책의 제목은 “하디 선교사님이 원산부흥운동 이후에 은퇴할 때까지 항상 암송했던 성경구절 스가랴서 4장 6절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에서 따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디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그분이시다. 그리고 하디가 이 땅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분이 나 같은 머슴을 쓰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하디를 오늘날 한국에서 부활시킨 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했다.

◇ 이덕주 교수
◇ 이덕주 교수

 

책을 펴낸 신앙과지성사 대표 최병천 장로는 “단일 전기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1,200여 쪽)의 책으로, 사진자료는 물론 하디 가족의 무덤이 표기된 지도도 함께 실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캐나다 Michcal Danagher 대사의 축하 편지도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한편, 하디기념사업회는 2019년 12월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간성교회, 강릉중앙교회, 광희문교회, 석교교회, 수표교교회, 양양교회, 종교교회)와 감리교신학대학교(이후정 총장)를 중심으로 첫 모임을 가졌다. 초대회장으로 황광민 목사를, 첫 사업으로 하디 전기 발간을 결정했다. 2020년 1월, 2차 모임에서 공식명칭을 하디기념사업회로 정하고, 2021년(5월) 2대 회장으로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를 선임했다.

이연경 기자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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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이덕주 지음

2021년 8월 28일/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힘과 능이 아니라 성령으로 회개한 하디 본받아야

    • 기자명 이연경 기자
    • 승인 2021.08.25 15:43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 출판감사예배

◇ 이철 감독회장
◇ 이철 감독회장

 

하디기념사업회(회장 최이우 목사)가 하디 선교사의 원산대부흥운동 120주년(2023년)을 앞두고, 그의 삶과 신앙이 담긴 전기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신앙과지성사)를 출판하고, 지난 8월 24일 대한기독교감리회 선교국, 역사보존위원회와 공동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종교교회 나원용홀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행사는 오일영(기감 선교국) 총무의 사회로 차재일(광희문교회) 목사의 기도, 조선석(양양교회) 목사의 성경봉독, 이철 감독회장의 설교와 서승환(종교교회 찬양대지휘자) 교수의 축가로 진행됐다. 이어 최이우(하디기념사업회 회장) 목사의 경과보고와 윤경로(전 한성대 총장) 박사의 서평, 이후정(감신대 총장) 목사의 축사, 이덕주(전 감신대) 교수의 저자인사 시간을 가진 뒤, 안정균(감리교역사보존위원회 위원장) 감독의 축도로 마무리했다.

이철 감독회장은 “내 안에 거하라!”(요 15:7)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디는 선교하면서 바른 목적을 가지고 열정을 다했지만, 왜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을 한국 사람이나 환경 등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다. 이 사건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영적 부흥을 이 땅에 가져온 것이다.”라고 말하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겪는 어려움의 해결 방법도 하디의 깨달음과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이우 회장
◇ 최이우 회장

 

하디기념사업회 회장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1907년 평양 산정현교회 사경회도 하디의 1903년 부흥운동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하디를 통해 한국 땅에서 일어난 놀라운 역사를 우리 세대뿐 아니라 후손들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유산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기를 펴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10년 전 하디에 대한 책을 내고, 턱없이 적은 분량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이덕주 교수는 “대한항공 토론토지부장을 역임한 연동교회 강사겸 집사가 캐나다 선교사 게일과 하디의 고향을 방문하는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며 동행을 요청해 다녀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 뒤 “하디 전기 쓰셔야 됩니다”라는 박동찬(일산광림교회) 목사와 장이려(속회연구원) 목사의 강권 속에 밀린 숙제로만 안고 있다가, 하디기념사업회의 청탁을 받아 전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

이 교수는 ‘영의 사람’이라는 책의 제목은 “하디 선교사님이 원산부흥운동 이후에 은퇴할 때까지 항상 암송했던 성경구절 스가랴서 4장 6절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에서 따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디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그분이시다. 그리고 하디가 이 땅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분이 나 같은 머슴을 쓰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하디를 오늘날 한국에서 부활시킨 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했다.

◇ 이덕주 교수
◇ 이덕주 교수

 

책을 펴낸 신앙과지성사 대표 최병천 장로는 “단일 전기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1,200여 쪽)의 책으로, 사진자료는 물론 하디 가족의 무덤이 표기된 지도도 함께 실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캐나다 Michcal Danagher 대사의 축하 편지도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한편, 하디기념사업회는 2019년 12월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간성교회, 강릉중앙교회, 광희문교회, 석교교회, 수표교교회, 양양교회, 종교교회)와 감리교신학대학교(이후정 총장)를 중심으로 첫 모임을 가졌다. 초대회장으로 황광민 목사를, 첫 사업으로 하디 전기 발간을 결정했다. 2020년 1월, 2차 모임에서 공식명칭을 하디기념사업회로 정하고, 2021년(5월) 2대 회장으로 최이우(종교교회) 목사를 선임했다.

이연경 기자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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