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트-스포츠맨십의 전도사

스포츠를 통한 복음 전도사,

반하트

 

이가람 경상국립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

 

 

한국 스포츠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반하트는 익숙한 이름이다. 필자 역시 YMCA와 스포츠의 연계과정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반하트라는 이름을 매우 많이 접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조우하면서 잠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반하트는 한국 근대 스포츠의 아버지로 통한다. 그는 한국 근대 스포츠의 요람인 ​YMCA가 최초로 초빙한 한 체육지도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에 근대 스포츠가 발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주체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전수한 농구와 배구 등의 각종 근대 스포츠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과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YMCA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한국인들이 잠시나마 울분을 표출할 수 있게 해 주는 원천이었다. YMCA에서 근대적인 스포츠 활동을 배운 한국 청년들이 운동장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일본과 대결하고 일시적인 승리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YMCA는 국제적인 기독교 단체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일본의 통제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였고, 그곳에서 반하트는 한국인들에게 근대 스포츠를 직접 가르치고 전수하면서 한국 사회의 근대 스포츠를 통한 문명화에 앞장섰다. 반하트는 근대화된 신체 문화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에 YMCA에 체육지도자로서 한국 청년들에게 신체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스포츠를 통해 젊은이들의 남성다움을 고취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스포츠는 신체적인 언어이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러 온 선교사들은 새로운 문화와 언어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는 서양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을 친화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한국 야구의 시발점이 YMCA 야구단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예증한다. 야구는 한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낯선 교회로 걸어가는 복음 티켓으로 이용되었다.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근대 스포츠들이 현재 한국 사회에 향유되고 있는 주된 스포츠가 되었다. 농구와 배구도 반하트가 주축이 되어 YMCA를 통해 한국에 도입되었고, 현재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 문화로 자리잡았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교회와 스포츠가 결속된 연유는 바로 스포츠가 복음 전파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초의 YMCA 체육지도자였던 반하트의 생애를 정리한 책 『반하트: 스포츠맨십의 전도사』는 한국 교회사와 근대 스포츠의 결속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선교사들에 관한 연구는 많이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은둔의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건너온 수많은 선교사들이 펼친 숨은 사역의 발자취가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한 분야가 바로 YMCA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명화와 복음적 사명을 실천한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스포츠를 통한 문명화와 전도를 이룩한 미국YMCA 선교사들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절실하다. 미국YMCA는 초창기 영국YMCA와는 달리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기독교 확장을 위한 핵심적인 매개체로 활용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YMCA 체육 사업을 주도한 선교사들의 역할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저서는 YMCA 선교사들의 역사적 연구를 위한 새로운 지평과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저술한 임연철 박사는 반하트의 삶을 4부로 구성하고 있다. 1부 "체육선교사 준비기"에서는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 반하트의 성장과 결혼 과정에 대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반하트는 어린 시절부터 야성적인 에너지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체육선교사가 되기 위한 선천적인 자질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대학 시절에 농구팀의 선수와 대학 YMCA의 위원회를 경험하며 YMCA 체육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영적∙신체적∙정신적으로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 농구는 YMCA가 발명한 스포츠 문화이다. 반하트가 학창 시절 YMCA가 창안한 스포츠 문화를 기반으로 스포츠 복음 전도사로서의 사명을 가슴 속에 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2부에서는 YMCA 체육부 지도자로 내한한 반하트의 초창기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1916년은 한국 스포츠사에서 중대한 해이다. YMCA 가 한국 최초로 실내체육관을 개장하며 동시에 본격적으로 스포츠를 보급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시기로, 이를 통해 스포츠의 대중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체육 교육을 전담할 책임자 반하트가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반하트는 한국에 올 때 짐 속에 "농구공 1개, 야구공과 포수용 글러브 각 1개, 배구공 1개, 그리고 치료가 불가능한 스포츠 사랑 정신"을 함께 가지고 왔다.(85쪽) 스포츠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YMCA 지도자로서 내한 이후에 빠르게 한국어를 습득하면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거의 모든 운동 종목을 직접 코치하고 운영함으로써 체육 활동의 발전과 보급에 앞장섰다.

 

반하트를 통해 한국인들은 강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체육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반하트는 스포츠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 스포츠를 사회적 개혁의 매개체로 인식했다. 그는 공정한 규칙 아래 건전하고 질서 있는 행동을 추구하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문명화된 사회를 추구하고자 했다.(121~123쪽) 두 아들을 잃는 역경 속에서도 그는 청소년교육, 실업교육, 농촌교육 등에 헌신하며 한국 사회의 개선과 진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3부 "한국 봉사 후반기(1930~1940)"에서 저자는 서울YMCA 협동총무인 브로크만을 대신해 한국YMCA의 미국 측 책임자 활동을 수행한 반하트에 주목했다. 반하트는 이 기간에 한국 사회가 직면한 편향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우려하며 YMCA가 영적으로 나라를 붙잡고,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출구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199~200쪽) 국가적 위기를 하나님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반하트는 서양 근대 스포츠와 함께 씨름과 같은 전통 스포츠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저자는 이 시기 반하트가 체육활동 이외에도 근대화된 공업과 농업을 기반으로 한국 지역사회의 문명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흔적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반하트가 일제강점기 근대적인 공업 및 농∙ 축업 기술과 경제관념을 직접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생활 개선과 발전을 이룬 숨은 공로자였음을 알 수 있다.

 

4부에서는 반하트의 퇴거와 방콕에서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반하트는 전운이 감도는 식민지 공간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저자는 반하트가 한국에서 퇴거한 후의 삶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국에 도착한 반하트는 잠시 휴식도 없이 하나님의 부름이 있는 태국으로 홀로 향했다. 위험한 발걸음이었다. 태국은 일본 제국의 야욕 속에 점령된 극동의 또 다른 공간이었고, 반하트는 일본의 탄압 속에서 젊음과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총성이 오고 가는 급박하고 위험천만한 공간에서도 반하트는 YMCA 총무로서 피난민 구제사업, 응급사업, 위생사업, 체육 활동 등을 주도하며 인류를 위한 선한 사명을 실천했다. 스포츠를 통해 다져진 남성다운 기독교인의 기질을 끝까지 유지하고 실천한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스포츠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YMCA 선교사들이 전개한 복음 사명의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YMCA는 극동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에 동아시아의 기독교적 사랑과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식민지 한국 사회에서 YMCA 문명과 교육을 위한 유일한 공간으로 가능했고, 그중에서도 체육 사업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가장 유용한 다리였다. 반하트는 스포츠 복음의 설계자이자 실천가였다. 이 책은 저자의 집요한 사료 수집과 철저한 사료 검증을 통해 잊혀질 수도 있었던 반하트와의 역사적 대화를 실증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평소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의 삶을 존경해 선교사 생애에 관한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저자의 끊임없는 발품이 일구어낸 소중한 문헌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반하트라는 열정적인 스포츠 복음 전도사가 없었더라면 스포츠에 기댄 한국교회의 확장도 더딘 행보를 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 근대 스포츠의 발아도 미진했을 것이다. 스포츠의 묘미는 자발적 실천에서 나오는 즐거움에 있다. 필자는 이 책 속의 반하트를 보며 그가 복음 전도 과정에서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이끌려 스스로 온 극동에서 스포츠를 통해 즐거운 복음을 실천했다고 믿는다.

 

 

 

이가람 스포츠 문화사를 전공하였다. "미국 YMCA 역사에 숨겨진 아이러니: 교회의 세속화인가? 스포츠를 통한 복음화인가?", "Philip L. Gillett의 한국근대스포츠 발전에 미친 영향"등의 논문이 있다. 경상국립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Asian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편집위원, 한국체육사학회 국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사상 2022년 3월호(164~16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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