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人間 황광은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
人間 황광은
김희보(1권), 황광은(2권) 세트, 영암장로교회 엮음, 신앙과지성사, 2023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

(<인간 황광은>, 김희보, 신앙과지성사, 2023)

1.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가 다시 돌아왔다. 2023년 2월 19일, 영암교회는 매우 부산했다. 고 우신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예배가 열렸기 때문이다. 영암교회 신도들은 100년 만에 다시 오시는 담임목사님을 맞이하기에 분주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관계자는 물론,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 서울 YMCA, 삼동소년촌(서울 상암동 소재 황 목사가 개척한 사회복지 시설), 대광중고 동창회 관계 인사들이 점심 식사 이후에 줄을 이었다. 유상진 담임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예배 서두에서 이 교회 연합성가대원(약 100명은 될듯하다)이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르며 100년 만에 다시 오시는 담임목사님을 맞이했다.

제1부 기념식은 100세가 훌쩍 넘은 한국의 지성 김형석 교수께서 후배 황광은의 100년을 축하하고, 온화한 성품과 밝은 미소의 황 목사를 기억했다. 위의 소개한 단체의 관계자들과 친지들 10여 명이 줄을 이어 황광은을 추모했고 3시간 가까운 집회는 줄을 잇는 황광은의 사랑과 섬김의 이야기로 전혀 동요됨이 없이 진행되었다. 간단히 터져 나온 회중들의 박수와 웃음소리는 황광은을 더욱 그립게 했다.

특별히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와 단원들이 경례하면서 고인에게 봉사대장 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차녀인 황은숙은 유족인사를 하는 동안 눈물을 계속 흘렸고, 그의 사위인 김정호 목사는 그 광경들을 카메라로 연신 찍어댔다. 그날 내 자랑스러운 친구인 김정호 목사(뉴욕 후러싱교회 담임)는 세 번의 주일 설교를 아침 7시부터 담당하여 이 행사에서는 순서 없이 사진만 열심히 찍어 마누라에게 노후가 편할 건수(?)를 하나 만들었다.

고맙게도 영암교회는 이 자리에서 이 책들의 출판을 담당한 신앙과지성사의 공로를 치하하는 감사의 꽃다발을 대표인 나에게 전해주었다. 다과회까지 마치니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다. 53년 전에 돌아가신 담임목사를 이렇게 극진히 추모하다니, 이 행사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훈훈한 미담을 제공한 행사였다.

2.
이렇게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는 행사와 출판작업에 기여한 주역은 압구정동에서 오랫동안 ‘사랑의치과’를 운영하는 장지우 장로다. 장 장로님은 1년이 넘도록 원고를 넘긴다고 여러 번 전화했지만 노구를 이끄시고 쉽지 않은 일이려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어휴, 80을 바라보시는 연세에 원고를 마련하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겠나 싶어 2022년 추석을 앞둔 상쾌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덕수궁 옆 ‘달개비’에서 반갑게 장 장로님을 만났다.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원고 작업을 오래도록 하셨으니 그에 대한 치하의 뜻으로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멀리 있는 김정호 목사의 장인의 원고이니 친구를 대신해서라도 대접하고픈 생각이 들었는데 장 장로님은 큰 배낭으로 한 짐 되는 원고를 내미는 게 아닌가! 하여, 아니 요즘 USB나 이메일로 원고를 주지 누가 이렇게 한 짐의 원고를 주느냐면서 살피니, 황광은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다 복사하여 수집한 것이었다. 와-, 이걸 어쩐다, 그러나 스승을 생각하시는 열정이 너무 값져서 즐겁게 식사하고 출판사로 모셔서 세월의 흔적이 고고한 원고 설명을 들었다.

장지우 장로는 대광중학교 1학년때 황 목사님을 만났단다. 곧 영암교회 담임으로 가셨는데 그분을 선생님으로 존경했기에 그 교회로 따라갔단다. 영암교회에서 10년 목회하시고 47세 너무 이른 나이에 황 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53년이 되도록 장지우 장로는 선생님 같은 담임목사님을 그리며 이 교회를 지켰다. 치과의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도 많이 돌보았고, 황 목사님의 호를 딴 우신장학회도 중추적으로 이끌어 왔는데, 이렇게 황광은 목사님께 영향받고 사는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그의 아들도 레바논으로 부인과 함께 떠나서 치과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예수의 사랑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간 황 목사의 정신은 이렇게 대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진정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아니라 예수 사랑의 길이기에 老 장로인 장지우 장로의 열정에 우렁찬 박수를 보낸다.

3.
그렇게 시작된 이 책의 작업은 6개월이 넘어섰다. 잘 파악도 하기 힘든 악성(?) 원고를 입력부터 교정, 교열까지 다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치과의사로 바쁜 장 장로님이 군밤 봉투를 앞세워 출판사를 출입하는 횟수가 잦아들었다. 그때마다 추가되는 원고를 또 어딘가에서 찾아와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마다 페이지는 바뀌고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고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책인데 첫권은 김희보 선생이 쓰신 『인간 황광은』을, 2권은 아동문학가요 수필가이며 능력의 부흥사였던 황광은 목사님의 동요, 동화, 수필, 설교를 모아 구성했다. 이 책이 예쁜 케이스에 나란히 담겨 품격이 있는 크리스천 홈을 빚내줄 것이라 믿는다. 짧고 굵게 산 한 성직자의 헌신적인 삶이 오롯이 담긴 책을 또 한 권 출판하여 기쁘다.

4.
현재 뉴욕 훌러싱교회를 맡아 좋은 목회를 하고 있는 김정호 목사는 나의 오랜 친구다.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와 만날 때마다 우리 시대 어른이 없다, 의논드리고 고뇌를 털어놓고 상의할 어른들이 다 돌아가셨다고, 쓸쓸한 대화를 여러 번 나누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여 나온 책이 <사랑하며 춤추라>이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이 어른들을 만나게 해 드리자!” 하고 예수의 삶을 살아낸 대천덕, 장기려, 원경선, 김용기, 조아라, 나애시덕, 황광은, 이현필, 여덟 분 어른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머리글을 김정호 목사에게 쓰도록 했다. 김 목사는 황광은 목사의 신앙과 삶도 썼지만, 이 책의 서문에서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끼리만 싸우는 사회가 되었다. 곁눈질에 익숙하거나 땅에 떨어진 것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면서 예수와 함께 사랑하며 춤추자”라고 말했다.

황광은 목사(1923-1970)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기쁘고 산파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에 출판인으로 긍지도 가지게 되어 감사하다. <사랑하며 춤추라>의 전체 발문을 써 준 김기석 목사의 말대로 황광은 목사님은 우리 인생의 표지판이다. 우리 인생을 제대로 견인한 표지판 위에서 신앙의 어른들과 함께, 황광은 목사님과 함께, 사랑의 춤을 추어 보는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랑의 시대 예수와 함께 걸어갈 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큰산 큰 믿음의 사람이 펼치는 봄·여름·가을·겨울

큰산 큰 믿음의 사람이 펼치는 봄·여름·가을·겨울

바위 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주대범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3

 

1.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들을 불효자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친구보다 더 먼저 간 사람을 나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출판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40년이 된다.

많은 책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죽어간 주대범 장로의 유고집 『바위 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은 정말 쓰린 마음 추슬러 가면서 만든 책이다.

주 장로는 성격이 활달하기로 소문났다. 불의를 보면 제일 먼저 분개했고, 친구들의 아픈 현실은 누구보다 슬퍼했다. 나의 경우는 잘한다는 게 겨우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이라면, 주 장로는 재주가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국어 선생님 출신이라 글도 잘 썼는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명성이 높았다. 가끔 전화해서 친구의 기를 살려주던 주 장로가 내게 진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2020년 11월로 기억된다.

“야, 최 장로 이번 몰트만 박사의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

“그래, 기독교인들에게 팁을 준다고 생각하고 붙였지. 당신은 왜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이 책 제목처럼 『나는 영생을 믿는다』라고 얘기하면 되잖아?”

“그래서 초판이 보름 만에 다 나갔다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음악 출판사를 3년 만에 문 닫았는데, 네가 꾸준한 것은 참 신통하다.”

주 장로는 몰트만 박사의 마지막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란 책이 신앙과지성사에서 나온 것이 반가웠고, 또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2021년 1월 29일, 이 통화를 하고 두 달이나 지났을까 주 장로가 세상을 떠났고, 영생 이야기가 마지막 통화가 되었으니 어찌 나쁜 친구가 아니겠나. 온 동네 근심 걱정 혼자 도맡아 했던 주대범 장로는 코로나가 지배했던 세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 침대 신세를 일주일 밖에 지지 않고 세상을 등졌다. 주 장로는 전화 말미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 장로, 내 책 『교회음악 산책』은 꼭 너희 신앙과지성사에서 내 줘야 해!”

 

2.

친구의 마지막 부탁은 그의 죽음 2주기에 실현되었다. 고교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이정배 박사와 그의 처남으로 열심히 낮은 곳에서 목회하는 윤인중 목사와 셋이서 여러차례 만났고, 이 두 사람은 원고정리와 책의 꼴을 만드는데, 열심히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책은 저자 주대범처럼 두툼하고 듬직하게 생겼다. 자그만치 584쪽이다. 자비롭게 웃고 있는 사진을 표지에 썼는데, 친구를 맞이하는 반가운 미소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23년 1월 29일 그가 섬겼던 후암동의 루터중앙교회에서 이 책 출판기념예배가 있었다. 많은 지인이 찾았고, 추모의 순서도 정갈했다. 나에게 발행인의 인사를 하라고 하여 나는 두서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구 주 장로의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 준비를 하면서 나는 상상했습니다. 하루는 광나루 건너 밀밭길을 개나리봇짐 하나 지고 거니는 주대범을, 하루는 이필완과 같이 갔던 지리산 자락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개나리봇짐을 만지작거리는 주 장로를 연상했습니다. 그 개나리봇짐을 풀어보니 오늘 책이 된 원고 뭉치였습니다. 이제 그 짐이 책이 되었으니 빈손으로 아주 편하게 훠이훠이 영생의 길을 가는 주 장로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영생의 길을 먼저 떠난 주대범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목이 메어서 더 말하지 못하고 서둘러 인사말을 마쳤다. 이필완과 주대범과 나 셋이서 담양을 거쳐 지리산 자락에서 1박 한 적이 있다. 그때 여행목적은 우리밀로 빵집을 시작한 감청후배 노재화 목사가 빵집 마무리를 위한 돈이 없어 의자와 탁자를 시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할 겸, 바람 쐘 겸 떠난 것인데, (그때 내가 노 목사에게 후원금을 전달했다) 주 장로는 자기가 후원한 것보다 더 기뻐하면서 기분 좋아라 했는데, 곧 기회를 만들어 울릉도와 독도를 셋이 같이 여행하자고 약속하며 들뜬 마음으로 귀경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말로 인사말을 마치고 싶었다. “이 책 가지고 꼭 울릉도와 독도를 가서 빨간 줄 쳐놓은 주 장로의 멋진 주장을 큰 소리로 읽어 줄게!”

 

3.

이 책 뒤표지만 봐도 주대범 장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알 수 있다. “휘황찬란한 교회당에 맘몬과 배타와 상스러운 것들만 가득한 채 버려져 있을 우리의 교회를 걱정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교회음악 산책길을 떠난다. 20년 이상 한국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신사도운동격인 ‘경배와 찬양’, ‘워십’, 감각적인 미국 성가곡만 부르는 경박함, 현세의 축복과 번영을 빌고 있는 구걸가들은 이제 버려야 할 것들이다. 한국교회 안에 복음적이고 성서 정신에 합당한 노래들이 다시 담겨야 한다. 삶 속에서 늘 도전받으며 어려워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현하려는 찬송이 회복되어야 한다. 품격있고 균형 잡힌 교회음악이 꽃피워져야 한다. 위의 주장을 1부 교회음악 산책으로, 2부를 그의 일기로 구성했다.

그의 일기에는 고뇌하는 한 평신도의 삶의 이야기와 생활신앙의 실천, 그리고 나눔의 기쁨으로 요약된다. 군데군데 좋은 말이 자주 눈에 띈다. 그를 덧없이 떠나보낸 지인들의 추모의 장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지만, 책 편집이 완성될 무렵 날아온 이현주 목사님의 권두시는 죽음을 너머 고통을 넘어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을 더욱 애처롭게 뒤돌아보게 한다.

 

그 사람(이현주)

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
풀을 노래하고 있었지
두 번째 보았을 때 그 사람
풀처럼 살고 있었어
마지막 보았을 때 그 사람
한 포기 풀이었네

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
별을 노래하고 있었지
두 번째 보았을 때 그 사람
별처럼 빛나고 있었어
마지막 보았을 때 그 사람
한 떨기 별이었네

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
길을 노래하고 있었지
두 번째 보았을 때 그 사람
길 따라 걷고 있었어
마지막 보았을 때 그 사람
외줄기 길이었네

– 고 주대범 장로 2주기에

한국근대화의 산파, 선교사 3천 명의 기록

한국근대화의 산파, 선교사 3천 명의 기록

『내한선교사사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발행, 신앙과지성사 제작, 2022

 

1.

혈기만 왕성했던 나의 감청 시절, 지금의 광화문빌딩은 감리회관과 국제극장을 합하여 지어졌다. 거의 감리회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청년들은 감리회관 인근이나 그 건물 지하다방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미국인 선교사 마태진 목사님이다. 마 목사님은 청년들에게 우호적이고 도움도 주었으나 그런 마 목사님을 청년들은 ‘미국 스파이’로 “왜 자기 나라에 가서 놀지 여기 와서 탱자 거려”라는 험한 말을 수시로 했다. 군부독재 시절이라 광화문을 활보하고 다니는 마 목사님 무리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교회사를 공부한 청년 중에는 마 목사님을 일제 강점기 조선감리교회를 좌지우지했던 웰치 감독이 떠오른다면서, 웰치 감독은 조선의 독립이나 조선감리교회의 자주성에는 관심이 없고, 일본에 아부하면서 “정치는 귀국이, 우리는 오로지 구령사업에만!”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교단을 치리했던 것을 스터디 중에 말하면서 참여했던 청년들과 분노의 공감대를 나눈 기억도 있다. 물론 지금은 미국 고향에서 생사를 오가는 마 목사님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가면서 나의 출판작업 중에 유독 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책을 많이 내게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을 혹평했던 내가 선교사들의 평전을 계속 내게 되다니! 물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게 된 이후였지만 옛날의 철없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2.

한국교회가 복 받은 교회라는 것을 나이 들며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 중 헌신적이면서도 의식 있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대명사가 된 두 분의 삶과 신앙은 지금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어찌 되었을까, 한국교회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교회에서는 수석장로란다. 자그만 교회를 섬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과 다른 모함을 들을 때면 역정부터 난다. 그런데(일일이 이 두 분 선교사의 업적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그분들처럼 헌신성이 있는가, 믿음과 사랑이 있는가, 반문해 본다.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앞잡이고, 역사의식이 빈곤하여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양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보다 큰 의미를 위한 성찰을 통해 정리되어야 할 단편적인 일이다.

 

3.

유독 연희동 칼국수를 좋아하시는 임연철 박사님과 가깝게 되었다. 나는 ‘사애리시 선교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임 박사님이 이덕주 교수의 소개로 원고를 들고 왔다. 고향이 논산인 그는 사애리시 선교사에게 전도된 할머니가 자신의 서울 자취방 시절에 밥상머리에서 된장찌개와 함께 꼭 등장하는 인물이 사부인(사애리시) 이야기였다고 했다. 사부인이 아니면 구원 못 받았다는 할머니의 그 오래 묵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서 그는 미국 드루대학교 아카이브를 찾았고 고귀한 자료들을 찾아내었다. 그의 신문기자적 발상과 발품으로 사애리시는 다시 부각되었다. 그가 쓴 『이야기 사애리시』는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뽑혔고, 그가 유관순을 거두어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에 보내 공부시키고,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충청권에 여러 학교와 교회를 세워 감리교선교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 책을 발판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훈장도 수여 받았다. 사부인은 결혼 3년 만에 남편(로버트 샤프 선교사)이 순직하고 홀몸으로 평생을 한국교회와 교인들, 한국 민중들을 섬기다 갔다(사애리시 관련 유품과 훈장은 천안 하늘중앙교회에 잘 보존되어 있다.). 사애리시 선교사를 통해서 나는 또 한 번 나의 청년 시절의 고정관념, 선교사는 스파이, 선교사는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생각을 조용히 거둘 수 있었다.

 

4.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시점에서(2022년 5월경) 평소 존경하는 선배인 윤경로 박사, 이덕주 교수가 급히 만남을 청했다. 이유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내한선교사사전』을 준비 중이고, 연구소 창설 40주년 기념으로 사전을 발간하려는데 그 제작을 신앙과지성사에서 맡아 달라는 것이다. 3,500명의 선교사가 소개될 것이고 큰 책으로 1,600쪽이 넘을 것이라고 하였다. 거절할 수가 없는 선배님들의 부탁을 승낙하고 우리 신앙과지성사는 5월부터 비상이 걸렸다. 80여 명의 필자가 자비량으로 쓴 사전원고가 20여 차례에 걸쳐 들어왔다. 이그! 선교사들을 스파이 운운했던 죄(?)를 톡톡히 걸머쥐었다.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3만 매가 넘었고 이것을 두께 6Cm가 넘지 않도록 편집하고 제작해야 했다. 양장제본의 최대 두께가 6Cm이므로, 용지 선택과 인쇄, 제본에 심혈을 기울였다. 드디어 12월 중순, 멋진 책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내한선교사사전』이다. 근래 보기드문 대작이다. 이 사전의 제안자이시고 실질적인 산파 역할을 하신 이만열 박사님(전 국사편찬위원장)은 감격하셔서(12월 22일 선교사들의 묘지 양화진에서 출판기념 예배를 드렸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셨다. 12월 22일, 겨울 날씨였지만 유독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 많은 귀빈과 내방객은 예배를 마치고 이 두툼한 책을 가슴에 안고, 빠른 발걸음으로 헤어졌다. 이 책에 한국에 온 3,500명 가까운 외국인 선교사들의 삶이 담겨 있다. 너무 귀중한 삶의 기록들이 하나로 묶여 졌다. 한국교회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하나님은 이 작은 출판사를 통해서 큰일을 이루게 하셨다. 3천5백 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기도했던 세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발간을 토대로 내한선교사들에 대한 격조 있는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박순경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4년

1.
벌써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삶이 힘겹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희망을 떠올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흐름을 통틀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시간은 참 묘하고, 빠르고, 느리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속절없이 또 한 해를 보내는 지금 12월에, 아쉽게도 귀한 삶을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한 분, 박순경 선생님이 줄기차게 생각난다. 어른다운 어른이 사뭇 그리운 까닭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꼭 동화 같은 시간의 연속임에도 이젠 좀 제대로 살라고 호통쳐 주실 어른이 꼭 필요한 ‘시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백 세를 살아보니 뭐 이러고저러고 간지러운 얘기하는 어른이 아니라, 백 세가 되었어도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게 사셨던 어른이 정말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기독청년운동을 통해 이나마 세상 결, 역사 결을 짐작하게 된 ‘시간’을 소유한 나에게 박순경 선생님은 멀리서 뵈어도 다가갈 수 없었던 어려운 선생님이셨다. 감청 대회를 통해 몇 번 강연을 들었고 가끔 마주할 때마다 차렷 자세로 인사만 드리기도 어려운 선생님이신데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2014년 초로 기억난다. 역시 차렷 자세로 “선생님이 웬일로 저에게 …” 뭐 그렇게 어려운 대화의 물꼬를 텄던 기억이 난다. “최 장로, 내가 마지막으로 세 권의 책을 내려고 해, 그 첫 권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인데 원고지로 3천 매가 넘는 것인데, 이걸 최 장로가 책으로 내줘야겠어!”

2.
거절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고민도 깊어졌다. 그 어려운 책을 소화시키기도 어렵고, 한 열 달이 지나도록 긴장하고, 또 살펴야 하는 어려운 책이다. 그 제작과정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항상 지시하시는 것에 따라 교정지를 싸 들고 사당동 근처의 피자집으로 갔을 때다. 만원 지하철 퇴근길에 시달리며 땀 흘리며 늦지 않으려고 뛰어갔던 2014년 여름날로 기억된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큼직한 피자를 몇 쪽 먹으려고 군침을 흘리는데, 선생님께서 만류하시는 것이 아닌가! “최 장로, 피자는 건강에 그리 좋지 않아요. 그러니 한쪽만 먹으라우! 그리고 콜라는 나빠 냉수에다 천천히 씹어 먹으라우!” 아쉬워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피자 한 쪽 먹고 선생님의 김 애기를 들었다. 그 이후에는 몇 차례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교정지를 드리곤 했는데 책이 거의 완성되는 꼴이 갖춰지는 때라서 기분이 좋으신지 통 큰 명령을 내리셨다. “최 장로 맥주 한 잔 주라우! 중국요리를 느끼하게 어떻게 그냥 먹겠니?”
이 책이 나오고 산타에게 선물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던 박 선생님은 목표하신 2권, 3권을 더 내시지 못했다. 겨울 눈길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가시다가 그만 낙상하셔서 큰 고생을 하셨다. 이토록 어렵게 보이는 책이 2014년 11월에 간행되고 아마 그달에 가르치셨던 이화여대에서 성대하게 출판기념회를 치른 후였다. 보조기를 끌고 다니시며 댁내에서만 움직이시는 선생님을 송병구 목사와 함께 두어 차례 뵈었다. 그때마다 “최 장로, 나 2권 거의 집필 완료 단계이고, 3권은 내가 김애영이랑 같이 쓸 거야. 그 책까지 최 장로가 다 내줘야 해!” 그렇게 호기 있게 말씀하셨는데 세상에 나온 책은 결국 이 책 하나다. 2권은 선생님 댁 서랍에 고이 놓여 있고, 3권은 딸같은 김애영 교수 의중에 달렸다.

3.
이 책이 나오고 감회 어린 식탁에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살아오신 이야기를 몇 차례 때론 차분하게, 때론 분노 속에서 토로하셨지만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다. 6.25 전쟁이 막 터지기 전에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다니실 때 선생님을 흠모(?)했던 학생이 있었단다. 급히 동숭동 교정에서 만났단다. “나, 학도병으로 가게 됐어. 우리 꼭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자!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그 후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짧은 이야기를 길게 하시며 우울해하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 혹시 6.25가 안 일어났으면 그분과 나중에 결혼하실 …” 조용히  웃으시고 말으셨지만 선생님에게는 참 비정한 역사의 시간이었겠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통일신학에 매진하셨나?
이 책은 박순경 선생님과 나의 사귐의 ‘시간’을 제공해 준 책이다. 책이 나오고 간간이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9년 겨울, 마지막 긴 통화가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제2권의 출간을 꼭 해야 하는데 기력이 없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70이 넘은 나이에 구속되었던 동경에서의 강연을 언급하시면서 긴 시간을 서운해하시기도 하고 분노하시기도 하면서 말씀하신 것이 가끔 생각나면서 나부터 죄송하기 그지없다. “야, 최 장로! 그래, 이 연약한 여자 하나 잡혀가게 하고 된거 뭐 있나! 종로 5가? 에큐메니컬 운동? 야, 다 집어치우라고 하라우! 남정네들이 되어가지고 에라이….”
우리 민족의 만악의 뿌리는 ‘분단’이다. 그런데 이 분단의 문제를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아 ‘통일신학’을 표방하고 연구하신 박 선생님의 공적은 큰 산과 같다. 나는 작은 일이지만 이리저리 애를 써서 감신대 도서관 입구에 박 선생님의 사진을 동판에 담아 액자처럼 걸어두게 하였다.(박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땐 가끔 가서 보시라!) 그리고 감신대의 평화통일연구소(소장 최태관 박사)에서 첫 작업으로 박순경 교수님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을 때 이 책을 100권 기증하여 나누었다.
끝으로 참 어렵고도 무거운 이 책의 이해를 위해 박 선생님의 글을 요약정리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치려 한다. 2022년이 저무는 시간 12월의 새벽에 박순경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쓴다. 제2권, 제3권 계속 출간되어 북녘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와 동포들에게 꼭 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는 지금, 박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4.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지만 미래시간 자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에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없다.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라는 우리의 어려운 주제 설명이 필요하다. 제Ⅰ권 은 구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자·구원자, 하나님 아버지에 해당하며, 제Ⅱ권은 신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와 구원의 중보·화해자 예수 그리스도, 아들 하나님과 시간·역사를 논할 것이다. 제Ⅲ권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통일성을 이루는, 창조와 역사의 구원자 성령 어머니 하나님과 교회·민족·세계의 구원 문제를 논할 것인데, 제Ⅲ권은 나의 제자 한신대 김애영 교수의 몫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제Ⅱ권까지 완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90세를 넘긴 내 나이에 너무도 벅차다. 그러나 감행할 생각이다.
삼위일체론 자체는 제Ⅱ권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공 간과 직결되어 있으나, 편의상 시간·역사 개념으로서 공간을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도 역사는 보다 더 시간 질서가 우선하므로 시간 개념이 더 부각된 것이다. 요점은 도대체 시·공간이 무엇인가? 우리는 시·공을 창조자·구원자 하나님과 피조물 세계와 역사와의 관계질서들(Relationsordnungen) 혹은 신학 전통에서 논의되는 창조질서(Schopfungsordnung)에 해당하는, 그의 의로운 법질서의 근원적 차원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시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제 내적 영원한 관계질서의 차원이며, 그에게서부터 피조물 우주와 역사에 주어지고, 시·공 안에서 피조물과 역사가 생동하고 변화하고 변혁하면서 그의 미래시간에로 진보하게 하는 은혜로운 차원이다. 하나님의 자체 내적 시·공의 관계질서는 영원하나, 피조물과 역사에 주어지는 시공은 한정적이고 유한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있는 계기는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역사적 삶과 존재란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어둠에서 빛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필리핀 감리교회의 시작과 전개>, 디오니시오 D.알레한드로 지음, 이원식 이상훈 옮김, 신앙과지성사

1.
한국에서 보다도 필리핀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사나이 이원식 선교사다. 신학교를 마치고 잠시 다녀오려던 필리핀 여행길이었는데 내 생각엔 아주 필리핀에서 삶을 끝장낼 것 같은바, 이젠 완전히 필리피노가 되었다. 이원식이 나를 친형처럼 대해 주니 그가 하는 선교의 족적을 존중하며 하라면 하라는 대로 쫓아다닌 것이 한 20여 차례 이상을 방문한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할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서울남연회 총무를 지낸 이상훈 목사다. 이상훈은 이원식의 그림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20여 차례 이상 필리핀 여행을 함께 하면서 마닐라의 한국식당을 하루 전세 내서 마닐라 시내에서 방황하는 한국인 노숙자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고 생필품을 한 자루씩 선물하는 일을 몇 차례 했었다. 그 모임에 초대된 마닐라의 노숙자들은 형편상 귀국을 할 수 없어서 주로 카지노가 있는 호텔 주변을 맴돌면서 얻어먹기도 하고 쪽잠도 자는 사람들인데, 아무런 조건 달지 않고 와서 밥이나 실컷 먹고 가라고 하니 약 200명 정도의 손님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그 행사 중에 이원식 선교사가 말했다. 필리핀 감리교 본부에 갔다가 땡처리하는 책 중에 <From Darkness to Light>란 책이 한 2~30부 있길래 사 왔는데 필리핀 감리교회의 역사를 쉽게 잘 정리했다는 것이다. 책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해지는 두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그럼 두 분이 영어 실력과 따갈로그 실력이 어지간하고, 이상훈 목사도 필리핀에서 10년 이상 살았던 경험이 있으니 정성들여 번역을 하시라고!

2.
그 후 한 1년쯤 지냈을까 두 사람이 연희동 신앙과지성사로 찾아왔다. 매운탕을 훌훌 들이켜 먹으며 하는 말씀이 내가 번역을 하라고 해서 번역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다. 바쁜데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화답하면서도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친한 사이에 빠꾸 놀 수도 없고, 또 요즘같이 책도 지겹게도 팔리지 않는 데 이를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밀려왔다. 결과적으로는 필리핀에서 오래 따갈로그를 하며 국어 실력이 약화 된 이원식 선교사의 원고는 신앙과지성사가 꼼꼼히 다듬고, 판매 부분은 이상훈 총무가 남연회 8년 임기 마친 기념으로 제작비를 후원하기로 하여 잠시 걱정거리는 은혜스럽게 해소되었다.

3.
두 이 씨가 뚝딱뚝딱 해 놓은 책에 광을 내기 위하여 만만한 이덕주 박사님께 추천사를 부탁하였다. 그러고 보니 추천사 포함 세 이씨의 작품으로 이 책이 탄생하였다. 우리의 관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계신 이덕주 교수님은 이 책의 성격과 두 필자가 왜 이 책을 번역하려했는지 예리하게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한국감리교회가 필리핀에 파송한 1세대 선교사 이원식 목사가 자신의 ‘필리핀 선교 35년’을 정리하면서 선교현장에서 함께 했던 친구 이상훈 목사와 함께 알레한드로 감독의 교회사 책을 번역하였다. 보통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정리할 때 자신의 사역이나 업적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성격의 책을 내는 데 이원식 목사는 필리핀 기독교회사의 고전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중략)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교회 1세대 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두운’ 면도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독단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식민주의 선교’의 어두운 방식을 버리고 현지 교회와 손잡고 협력하는 ‘동반자 선교’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4.
이원식·이상훈 역자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 책은 1898년부터 1970년까지 필리핀 연합감리교회의 각종 사건과 회의 보고, 감독 소견 등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책의 구성이 단순한 것은 가급적 많은 사실을 세세하게 기록하려 했던 저자의 의도이다. 1905년 카츠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통치하에 놓였던 역사적 운명 때문에 한국과 필리핀 개신교 역사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운명의 선교 역사였지만, 서로 다른 종교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성장해 왔다. 한국의 해외 선교의 역사에서 필리핀 선교는 못자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한국과 필리핀의 선교 역사 그리고 전망 등을 연구하는데 작은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5.
힘든 교열 작업을 하면서 아무리 믿는 구석이 있어도 그렇지 내가 맏형이니까 형네 출판사로 넘어갔으니 원고는 알아서 하시라는 두 역자의 배짱 때문에 땀을 좀 흘리며 마감하고 제작에 착수하려는데, 마침 내방 탁자에 놓인 이 책의 마지막 교정지를 들춰보며 임연철 박사께서 뭐냐고 물으셨다. 사정을 다 듣고 난 임 박사는 그렇다면 자신이 미국 드루대학교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필리핀 관련 사진들이 많으니 그것들을 이 책 사이사이에 넣으라는 것이 아닌가! 임연철 박사는 동아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국립극장장을 지낸 언론계의 베테랑 기자 출신인데 고향인 충청도 논산에서 사애리시 선교사에게 전도 당한 할머니의 생전의 말씀을 따라 사애리시를 연구하다가 전기 작자로 거듭난 분이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우리 감리교 선교사들의 전기를 계속 출간하고 있는데 우연히도 가세하셔서 이 책이 사진과 함께 빛나는 책이 되게 기여해 주었다. 저 세상에 이미 가 계신 저자 알레한드로가 자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필리핀 감리교회로 뛰쳐나올 일이 벌어졌다. 책이 가치 있게 편집되었고, 아무튼 이 책은 필리핀 감리교회에 대한 귀한 선물이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의 산물로 태어난 결과물이란 점에서 발행인으로 특별한 애정이 가는 책이 되었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한국 교회 이야기

한국 교회 이야기

이덕주 지음, 신앙과지성사, 2009

1.
내겐 참 고마운 책이고 신앙과지성사에게는 불쏘시개 같은 책이다. 초판의 판권이 2009년으로 발행연도가 표기되었으니 그때쯤 나는 매우 지치고 피곤해 있었다. 외주 출판물에 의존해서 간신히 버텨오던 출판 사역을 더 이상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지루했다. 1987년에 주변 문서선교운동에 초석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출발하여 당시로서도 20년이 훌쩍 넘었으나 그 시점에서 출판 사역을 접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몇 개월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감신으로 이덕주 교수님을 찾아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이 교수님은 전성기였다. 숱한 책을 출판하고 여기저기 강연에 분주하여 이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던 감신 뒤편의 오래된 빨간 벽돌의 옛 건물 ‘관회수교’ 3층 구석방은 늦은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힘이 없니?”
“형, 할 말이 있어왔어. 아무래도 출판을 그만두어야 할까 봐!”
불쑥 던진 내 말에 이 교수님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구석 어딘가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복사 용지들을 한데 모아 제본한 허술한 책 뭉치였다. 손때가 듬뿍 묻은 듯한 책 뭉치 앞에는 흐린 큰 글씨로 “한국 감리교회 역사”라고 쓰여 있었다. “병천아, 이 원고를 잘 궁리해서 좋은 책을 한번 해봐, 내가 강의 자료로 삼은 것인데 꽤 소중한 자료니까 잘 될 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여기서 그친다면 말이 되니?”

2.
이덕주 교수님의 격려의 선물로 받은 원고를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고 토론했다, 당시 연세대 언더우드기념관에서 조교를 했던 홍승표 박사는 이 원고에 어울리는 귀한 사진들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딱딱한 교회사가 아닌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책 제목을 요구했다. 그리고 원고와 사진이 함께 잘 조화를 이루도록 편집과 제작에 신경을 썼다. 하여 본사의 기둥인 ‘쉽게 쓴’ 시리즈의 첫권이 된 셈이다.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 된 참 고마운 책이다. 감리교회에 관련된 원고가 많았지만, 제목을 한국교회 이야기로 보편화했다. 범위를 한국교회 전체로 넓히면서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에피소드 60개로 참신하게 엮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사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교회사 책이 탄생된 저녁, 큰일이 벌어졌다. 이 책 2,000부 초판을 받아놓고 책더미 위에 베니어합판을 올려놓고 퇴근했으니 망정이지, 사무실 위층에 수도가 터져서 아침에 출근해보니 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어떻게 만든 책인데 자칫하면 다 젖어 없어질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 초장부터 큰 액땜을 하더니 이 책은 지금까지 만부가 넘게 나갔고 이제 아홉 번째 판을 다시 찍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필두로 ‘신앙과지성사’가 출판의 맥을 잡은 것이고 쉽게 쓴 시리즈로 여러 좋은 책이 뒤를 이었고 출판의 격을 높여 주었다. 어려운 형편에 용기를 준 효자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3.
표지 앞면에 이런 글귀가 있는데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교회사를 민족사와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주시고, 그것을 풀어가면서 신앙의 상징과 성숙을 이루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교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때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다. 그런 지혜가 있어야 민족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가 ‘민족구원’이라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복음과 교회 그리고 민족의 역사’라는 다소 거창한 머리글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교회사 책 중에서 가장 출중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추용남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이정배 교수가 전화를 했다. 암 투병 중인 후배인데 힘겨운 처지에서 비탄조의 글이 아니라 패기 있고 성찰적인 글들로 원고가 좋으니 출판하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의 안목에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문제는 빠른 제작에 착수할 수 없는 여건이다. 개 교회사와 몇 개의 단행본, 그리고 장장 1500쪽이 넘는 내한선교사 사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지성사 내부 사정이 밀려있는 원고들 때문에 새 원고를 빨리 책으로 만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추용남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바쁜 일정을 설명하고 책 출판을 좀 미루자고 했더니 “장로님 말씀은 잘 듣고 이해합니다만, 제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급행으로 책을 내는 수밖에. 이렇게 3주 만에 나오게 된 이 책은 책 제목부터 참 비장하다. 우리들에게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책의 제목은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3주의 시간 동안 나의 뇌리를 오래도록 지배했다. 출판계획도 없었는데 불쑥 튀어나온 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삶과 죽음은 이코르라고 하는 정답을 심오하게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2.
이 책에는 한평생을 목회자로 온전하게 헌신하며 살았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암과 투병하면서도 진솔한 신앙의 시간을 엮어가는 추용남 목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별히 목회자란 누구이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지은이는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도 목회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목회자의 소신과 진실한 신앙 양심으로 목회했고 어느 곳에도 어긋나면 타협하지 않고 돌아서 꿋꿋한 길을 양보 없이 걸어왔다. 위암 4기의 고통 속에서도 죽음과 생명이 하나 되는 영생을 몸으로 보여주는 한 목회자의 투병 과정을 기록으로 남김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을 밝혀줄 작은 촛불을 켜들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게 하는 책을 펴냈다. 그의 암 투병기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설교와 좋은 글들을 함께 수록함으로 삶과 사랑과 죽음을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살아 숨 쉬는 신앙 이야기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3.
2022년 7월 25일이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내가 속한 공덕교회에서 열렸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추용남 목사의 삶에 뜨거운 격려를 하는 시간이었다. 소신 목회를 하시다 은퇴하신 김고광 목사님, 허원배 목사님, 이정배 박사님, 이은선 교수님 등등 좋은 말씀들이 건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추용남 목사를 격려했다. 나도 책 소개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추 목사님 힘내세요!, 위암 4기 그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런 책을 당당하게 쓴 목사님 같은 분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책을 내신 목사님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부터 새 삶을 산다고 생각하시고 뚜벅뚜벅 나가세요!”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비가 세차게 내린다. 세차게 비는 내리는데, 속초 앞바다를 외롭고 쓸쓸하게 걷고 있을 추 목사님이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 추용남의 건투를 빌면서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서 정겹게 파도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부부) 사진으로 꾸며진 이 책의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숱한 고생을 하면서 목회한 몸인데 오래도록 죽음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이효삼·송병구 지음, 신앙과지성사, 1991

1.

이런 때도 있었나? 이 책 앞날개에 수록된 이효삼 송병구 두 저자의 모습이 정말 소년 같다. 삼촌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이효삼 목사의 넥타이 맨 모습만 이제 막 순사가 된 경찰 같고, 송 목사는 대학원생 같은 앳된 얼굴인데 이제 다 환갑을 넘겼으니 참 오래된 책이긴 하다. “이효삼은 57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문과와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가평 산유리교회 담임목사이다, 송병구는 61년 영월 출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김포 문수산성교회 담임목사이다,” 이렇게 쓰여진 소개 글을 나는 몇 번이고 읽었다.

30년이 훌쩍 넘은 시절과 시간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 다 첫 교회 임지를 맡자마자 이효삼은 한옥 예배당을, 송병구는 천장화 그림이 인상적인 농촌공동체교회를 건축했다. 그 어린 나이에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 문제아 두 젊은 목사님을 내가 불러냈다. 이 책을 신앙과지성사의 첫 책으로 발행하려는 깊은 뜻을 품고 두 아우님들을 북한산계곡에 백숙을 파는 집으로 안내했다. 나 역시 30대 중반이니 당시 주머니 사정으론 백숙을 배 불리 먹기는 어지간한 깡이 필요할 때였다. 우리 셋은 청순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책에 대한 기획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진지하고도 열정 넘치는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들은 어둠이 짙었을 때 막이 내렸다. 그렇게 북한산계곡 백숙 잔치 덕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신앙과지성사의 제1호 단행본이라는 감개무량한 책이 되었다.

2.
저자와 나 모두 감청 출신이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넘어서며 감청은 살아 움직이는 그루터기였다. 좋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교회다운 교회, 하나 되는 교회, 그리고 민족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꾼이 감청을 통해 생성되었다. 감청, 기청, 장청도 마찬가지로 교회갱신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애썼던 많은 청년들의 산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감청이 문서정리와 출판 사역에 공로를 세웠다. 내가 편집장을 했던 〈감청회보〉는 일간신문 크기의 격월간 발행으로 기독 청년뿐만 아니라 일반 운동권에서도 갖추지 못한 모양새를 신문으로 폼나게 발행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이야기지만) 그랬더니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감리교 인천산선에서 실무자로 일한바 있는 김근태 의원이 나를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갔더니 왈 “병천아, 네가 왜 이렇게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좁은 감리교에서 버덩이냐? 네가 이 솜씨를 더 넓게 한번 발휘해 봐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자랑이 아니라 당시 감청의 출판 사역 감각은 다른 운동권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년과 성서 이해>가 바로 그를 입증한다. 감청이 교단 이름을 빌려 발행했던 <청년과 성서 이해>는 수만 부가 나갔다. 성서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안목을 여는 데 초점을 둔 청년을 위한 청년이 쓴 성서연구인 이 책은 원고료 한 푼 받지 않고서도 며칠 밤을 새워 토론하며 만들었다. 정말 역작이고 멋있다. 돌아가신 김찬국 선생님이 감수하시며 극찬했고 장기천 감독님도 참 기뻐하셨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이유가 있다. 이런 경험을 곧바로 살려서 출판된 것이 이 책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3.
우리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보배로운 성서학자 민영진 박사님이 극찬하며 추천사를 써 주신 이 책은 네 마당, 12과로 구성되었다. 첫째 마당 사람들, 둘째 마당 갈등, 셋째 마당 만남, 넷째 마당 하나됨이다. 돌출된 단어만 보아도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각과 마다 성경공부(이해)와 나눔(사귐)과 다짐을 조화롭게 연계시켰다.

책을 펼치다가 이 책 첫째 마당에 있는 사귐의 노래 ‘직녀에게’를 보고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체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은 분이 부르며 눈물 흘렸을까? 책은 누렇게 발하고 겨우 3천 원이라는 책값이 세월을 말해 주건만, 여기 수록된 내용은 지금도 필요한 분단 현실을 조명함이 가슴 아프다.

이 민족에게 분단은 최대의 불행이다. 작은 출판사를 문 열고 책을 낼 여력도 없었는데 주머니 털어 백숙을 먹었던 그 날의 희망이 오늘 신앙과지성사를 통하여 값진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하심을 감사한다. 이효삼·송병구 첫 책의 저자들과 다시금 북한산계곡에서 백숙을 먹고 싶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효삼 목사는 지금 열심히 멕시코 사막지대에서 빈민선교에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건투를 빈다. 송병구 목사는 한국 최고의 십자가 전문 연구가로 명성을 떨치며 유익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책이 다시금 재판 발행되는 날, 이효삼도 달려와 함께 셋이서 ‘직녀에게’를 또다시 부를 날은 허락될 것인지….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민중시대의 복음

<민중시대의 복음>, 장기천 지음, 신앙과지성사, 1989

1.
벌써 33년이 지난 일이다. 장기천 감독님께서 이제 막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던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른의 눈으로 살펴보면 어려운 행태가 엿보이셨는지, 감독님은 가끔 나를 호출하셔서 당시 나로서는 접할 수 없는 좋은 음식들을 사주셨다. 달려가 뵈니 이제 막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끝마친 후라 홀가분하게 시간 보내시면서 원고를 정리했다며 원고 뭉치를 내게 밀어주셨다. 감독회장으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목회서신 형식으로 쓰신 글과 여러 신문과 잡지사에서 청탁받아 쓰신 글이 대부분이었다. 원고를 건네받고 몇 차례 살펴본 후 나는 책의 제목을 <민중시대의 복음>이라고 정하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흡족해하셨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감독님 돌아가신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67세가 되었다. 출판된 지 33년이 지난 이 책을 부여잡고 홀로 사무실에서 그리운 장 감독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쓰는데, 평소 동생처럼 지내는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가 전화를 했다. “이 책이 5월에 출간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감독님도 5월에 돌아가셨다면서, 5.18. 5.16 등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5월의 시간들을 그렇게 가슴 아파하시더니 진작 본인도 5월에 떠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서 목사에게 전하는 말끝이 흐려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책 소제목 중에 “우리에게 5월은?”이란 글이 있는데, 5월을 염려하며 5월에 떠나가신 감독님을 생각하며 소개해 본다.

“5월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많은 인명을 살상당한 광주시민들을 사회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던 사람들이 지체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아픔을 나누지 못한 자신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 감리교도 여러분! 한국의 감리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겨레를 위한 예언자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이 겨레의 죄와 허물을 속량하는 제사장이 되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임을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나는 오늘에 들어도 유효한 감독님의 글을 마주 대하니 감개무량했다. 감독님이나 목사님이라기보다 선생님으로 여기며 지내온 것이 명예롭다. 그래서인지 장 감독님의 예언자적 소명과 외침이 가득 담긴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가슴 벅차다.

2.
어영부영 지내왔는데 손꼽아보니 장 감독님이 이 원고 뭉치를 내게 내밀었던 때가 57세였다. 56세에 감독회장직을 마치셨으니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년이나 적었다. 그럼에도 장 감독님에겐 늘 목사님으로서의 품격이 몸에 배이셔서 뵐 때마다 긴장하면서 감독님을 만났다. 오래된 책이지만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시대정신과 복음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균형감각 있게 잘 정리해 줄 것이다. 이 책 머리글에 실린 원고의 구성을 설명하면 책의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겠다. 감독님을 함께 추모하는 뜻에서 머리글을 일부 소개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한국교회 일치운동과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에 대한 평소의 소견을 담은 것이기에 ‘복음과 역사의식’이라 정했다. 제2부는 한국 감리교회의 감독으로서 새 교회로의 변화와 진보를 요청하는 목회 서신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복음과 새 교회운동’으로 정했다. 제3부는 동대문교회의 목회자로서 해가 바뀔 때마다, 중요한 교회 계절을 맞을 때마다 신도들과 동시대인으서, 혹은 그들의 이웃으로서, 바르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글들을 모았으므로 ‘진리와 희망을 찾아서로 정했다. … 나는 예수를 믿고 그를 전하는 한, 민중선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직 민중을 위해 사셨던 예수의 말씀, 그의 사랑, 그의 희망에 관해 날마다 명상하며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3.
나는 장 감독님을 1980년 초에 ’감청회보‘ 편집장을 하면서 청년지도위원장으로 특별한 직책(?)을 맡으셨을 때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교회갱신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창하던 ‘감청’은 교단 지도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나이가 드니 그때 그분들도 참 좋은 인성을 가진 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분들이 귀찮게 여겼던 청년지도의 업무를 당시 평동교회 장기천 목사님에게 부탁하였다. 장 목사님은 겉으로는 우리를 많이 나무라셨지만 속으론 너무 과분하게 사랑해 주셨다. 특별히 당시에는 어려운 일간신문 크기로 매월 ‘감청회보’를 발행하자,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본인이 서른 초반에 교단지 ‘기독교세계’의 편집자로 고생하신 경험이 나와 일치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평신도로서의 길을 가면서 기독청년운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 대다수 감청 멤버들은 목회자의 길을 갔다. 그즈음에 ’신앙과지성사‘란 이름을 낙점해 주시면서 장 감독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천아, 문서선교 중요한데 너는 그쪽에 재주가 있으니 그 일을 하면서 평신도 지도자로 가거라!”

말씀뿐만 아니라 장 감독님은 음으로 양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실 밀알기획·신앙과지성사가 오늘까지 내려오는 데는 초창기 장 감독님의 관심과 사랑이 큰 힘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앙과지성사의 이름으로 두 번째로 1989년 5월 15일 출판된 이 책을 소개하는 지금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한 예언자요, 특별히 청년을 사랑했던 사랑의 사도인 장기천 감독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울러 오늘의 현실과 상황은 장 감독님과 같은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계획을 세워 이 책을 재출간하는 작업을 모색해 보아야겠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브루더호프 이야기>, 박성훈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치병은 무엇일까? 그것은 탐욕사회의 근원이 된 교육열병이다. 모두가 내 자식만은 편하고 대우받고 부유하게 살게 하고 싶어서 야단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 스펙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동시대를 위해서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어디에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을 써서라도 두드러지는 인재로 만들려고 난리다. 그러니 참 부끄럽지 않은가?

이 나라 총리를 장관을 하려는 사람들이 다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해괴망측한 일들을 나열하기도 싫고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 볼모가 되어 눈이 시뻘건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요청하고 싶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뭐 그리 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참 치욕적인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큰 자리를 얻어보려는 사람들이 꼭 가보아야 할 현장이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되어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공동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 오늘 아침 불끈 솟았다.

2.
기독교가 오늘처럼 수난을 당한 때도 또 있었을까? 참 교회와 교인들이 매력이 없어 보인다. 웅장한 외형의 교회도 많고, 떵떵거리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왜 작금의 시간 속에서 교회는 이 시대의 주변부에서만 맴돌고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매력이 없기 때문이고, 예수의 향기가 풍기지 않기 때문이리라.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가라는 예수님은 어찌 보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이상한 예수님을 사람들은 그리워하고 따르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모형을 실험하면서 더 이상한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는 현장, 브루더호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똑똑한 질서에 편승하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책이다.

지은이 박성훈 선생은 2007년부터 뉴욕 허드슨 강가 단풍나무 숲이 우거진 멋진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이 책은 그의 공동체 삶의 이야기이다. 세상 판단의 기준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 병들고 약한 사람들이 더 대우를 받고 더 사랑받는 곳이기에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참 이상한 나라고, 그 이상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역설적인 책 제목이 참 좋다.

저자 박성훈은 말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함께 사랑하며 사는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라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화 같은 동네 이야기인 이 책은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잘 인도해 줄 것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컬러 사진들이 대거 수록되어, 잃어버린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기행을 손색없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3.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의 신학자 에버하르트 아놀드에 의해 설립되었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3개 공동체에서 2,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영월 인근에서 다섯 가정이 올해 막 공동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꽤 오래 공동생활에 참여하였던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는 브루더호프의 삶은 매일매일 축제 같지만, 축제의 목가적 삶만으로는 ‘이상한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 늘 함께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즐기는 공동체적 삶에 있다.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한 약자를 가장 우선으로 정성껏 돌보고, 어린이의 마음을 ‘하나님 생각’으로 여기며 재난·분쟁 지역에 형제들을 파견하여 세상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과 끈을 이어 기도하고 돕는 것에서 그 이상한 나라가 꿈꾸는 삶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곳을 다녀온 김난예 교수는 “이 책은 경쟁과 자본주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존중과 돌봄과 환대의 기쁨과 함께 하는 삶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자녀 교육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이 책은 허드슨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예쁜 컬러 사진으로 흠뻑 담겨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져 있는 참 좋은 인생의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기에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