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일제 강점기 젊은이 이끈 신앙정신 배우고 계승하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생전 모습. 하늘중앙교회 제공

1900년 미국연합감리회 파송을 받은 한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는다. 당시 29세였던 사애리시(史愛理施·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였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한 뒤 충남 공주에 선교기지를 세웠다. 부부는 교육 선교와 여성 지도력 양성에 방점을 찍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6년 선교 활동 중 병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역을 계속하다 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은퇴선교사요양원에서 지내다 72년 9월 8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역하며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전신인 명설학교를 비롯해 9개의 여학교와 7개의 유치원을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인 전밀라와 여성 경찰서장 노마리아가 사애리시 선교사의 제자였다.

1919년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준 것도 그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10년 충남 천안 병천면 지령리교회에서 여덟 살이던 유 열사를 만났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신앙심이 깊고 영리했던 유 열사를 눈여겨보다 수양딸로 삼았다. 1916년에는 유 열사를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시켰다. 여성 지도자로 키우려는 취지에서였다. 비슷한 시기 사애리시 선교사는 영명학교 학생이던 조병옥을 연희전문학교로 유학 보내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후원했다.

그는 앨리스 샤프라는 본명보다 한국명 사애리시로 널리 불렸다. 그만큼 허물없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가까이 지냈다. 지역 주민들은 그를 ‘사부인’으로 부르며 의지했다.

지난 8일 천안 하늘중앙교회에서 교회 관계자와 사애리시 선교사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사애리시 선교사 흉상 제막식 모습. 하늘중앙교회 제공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과 활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충남 지역 감리교회들이 나섰다. 이들 교회를 주축으로 ‘앨리스 샤프 선교사 선교 기념사업회’가 다음 달 정식 출범한다.

유영완 천안 하늘중앙교회 목사는 1일 “사애리시 선교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당대 여러 젊은이를 이끈 신앙의 어머니였다”면서 “여성을 일깨우고 한국의 근대화를 꿈꿨던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늘중앙교회는 지난 8일 교회에서 사애리시 선교사 흉상 제막식을 진행했다. 이 교회도 1905년 사애리시 선교사가 설립했다.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를 쓴 임연철 박사도 “사부인은 충남 지역 어르신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했던 분”이라면서 “제 친할머니 강계순 권사를 논산제일감리교회로 전도해 우리 집안에 복음을 선물하셨다”고 했다. 그는 미국 드루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사부인과 관련한 사료를 수집해 집필한 전기를 지난 3월 출간했다. 그는 “신앙의 후배들이 선한 삶을 살았던 선배를 기억해야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0619&code=23111111&cp=nv

입력 : 2019-10-02 00:01

문화가소식 – 이야기 사애리시

 

이번주 문화가 소식은 이슬기 기자가 전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최초 여성교육기관을 세우며 한국에서 39년 동안 선교사로 헌신한 사애리시 선교사의 전기를 담은 책. 이야기 사애리시 입니다.

저자 임연철 박사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서 사애리시 선교사를 통해 받은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사부인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사부인의 39년 동안 한국에서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책에 풀어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사 부인은 당시 배움에 소외됐던 여성들에게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와 유치원을 충남 곳곳에 설립했고 특별히 유관순 열사에게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의 입학을 돕기도 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이야기 사애리시] 충청도 지역에서 여성들의 삶에 희망을 안겨준 충청 선교의 개척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CTS뉴스 이슬깁니다

유관순의 첫 스승, 사애리시를 아시나요

유관순의 첫 스승, 사애리시를 아시나요

‘앨리스 샤프’ 1900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 와 공주·논산·천안 등 충남서 사역
여학교 9곳·유치원 7곳 설립하고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입학 주선
후손들 천안 교회 찾아 유품 기증… 8일 출판기념회·사진전 열려



“앨리스 할머니가 한국에서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줄 몰랐습니다. 지금 충남에 감리교회가 1400개, 성도(聖徒)가 20만명이라는데, 그 시작이 할머니의 선교였다니 놀랍습니다. 저희 가족은 ‘앨리스 할머니가 한국에서 40년 선교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거든요.”

4일 오전 충남 천안시 하늘중앙교회 내 ‘앨리스 샤프 기념홀’ 카페에서 만난 데이비드(64)·스티븐(62) 솔로즈 형제는 놀라워했다. 이들은 ‘충남 믿음의 어머니’로 불리는 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의 후손. 샤프 선교사 언니의 증손자인 이들은 하늘중앙교회(유영완 담임목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캐나다 북동부 노바스코샤 출신인 샤프 선교사는 1900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1903년 서울에서 동료 선교사 로버트 샤프와 결혼한 그는 1904년부터 공주를 근거지로 충남 지역 선교를 맡았다. 당시 충남 지역은 감리교가 선교를 담당했다. 1906년 남편이 논산 선교 중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후에도 샤프 선교사는 한국에 남아 1939년까지 대전·논산·강경·부여·보령·천안·안면도 등 충남 전역을 순회하며 선교 활동을 펼쳤다. 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 9곳, 유치원 7곳을 설립했고, 유관순 열사에게 영명학교와 이화학당 입학을 주선했다. 가마, 말과 자동차를 타고 충남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국명 사애리시(史愛理施) 혹은 ‘사(史) 부인’이란 별칭으로 불린 그는 존재 자체로 화제였다. 외국인을 처음 보고 도망가는 이도 있었지만 풍금 연주엔 구름 관객이 몰리고, 서툰 한국말로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가 늘어갔다. 여성들에겐 글을 가르쳐가며 전도했다. 어떤 지역에선 한 마을 38가구가 모두 신자가 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사 부인은 훗날 한국 선교를 회상하며 “내가 세운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육받고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훈련받아 전도사, 교사, 전도 부인, 의사, 간호사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했다.
 
1세기 전 충남 지역에 복음을 전한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유품이
천안 하늘중앙교회에 기증된다. 데이비드(왼쪽)·스티븐 솔로즈씨 형제가
유영완(가운데) 목사와 함께 샤프 선교사의 유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하늘중앙교회가 사애리시 선교사 현양에 나선 것은 이 교회 역시 사 부인과의 인연으로 시작됐기 때문. 1905년 사 부인이 전도한 당시 65세 유씨 할머니 댁에서 예배를 드린 가정 교회가 이 교회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1922년 천안 최초로 이 교회에 유치원을 세운 것도 사 부인이었다. 유영완 목사는 “사 부인은 1939년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간 후로 연락이 끊겨 자료가 태부족한 상태여서 기념 사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언론인 출신 임연철 박사가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열정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베일에 싸였던 사 부인의 생애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 부인의 고향에서 후손들을 만난 것도 임 박사였다. 소식을 들은 하늘중앙교회는 올 초 완공된 교육관에 앨리스 샤프 기념홀을 개관하고, 오는 8일 임 박사의 저서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와 사진 전시회를 개막한다. 이 자리에선 후손들이 보관해온 사 부인의 유품 기증식도 열린다.
 

후손들이 보관해온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유품.
만년필과 복주머니, 인형, 골무 등 80년 전 소박한 생활을 보여준다. /이태경 기자

 
후손들이 가져온 유품들은 80년 전 소박한 신앙생활을 보여준다. 한복을 입은 작은 인형, 색색 골무, 만년필 한 자루, ‘만세(萬歲)’ 글자가 수놓인 복주머니 등이다. 데이비드 솔로즈씨는 셔츠 앞섶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사 부인이 마지막까지 걸고 있었다는 목걸이는 작은 십자가와 ‘수(壽)’자로 이뤄졌다. 십자가엔 ‘보령교회 리신덕’ ‘사랑’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선교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는 사 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었다.

유 목사는 “사 부인은 100여년 전 한국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소외된 이들을 섬긴 분”이라며 “그 뜻을 이어서 교회는 다문화 가정과 중도 입국 자녀들을 돕는 사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미 작년부터 중도 입국 자녀 20명을 1대1로 교육해 그중 7명을 일반 학교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유 목사는 “앞으로 관련 자료를 더 모아 작은 기념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6/2019090600166.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조선일보
입력 2019.09.06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