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도 장손 손명원 장로, 감신대에 『손정도』전기 1600권 기증 감신대, 1찬만원 고료 ‘『손정도』독후감 대회 개최

▲ 감신대가 ‘『손정도』전기를 기증한 손정도 목사의 장손 손명원 장로에게 15일 감사패를 전달했다. 좌로부터 이후정 총장, 손명원 장로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 이현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손정도 목사의 전기를 담은 책 ‘『손정도』 – 자유와 평화의 꿈(이덕주 지음)’ 1600권을 학교에 기증한 손명원 장로(79세)와 책을 펴낸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손명원 장로는 해석 손정도 목사의 장손이자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며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이다.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미포조선 사장, 쌍용자동차 사장, 맥슨전자 사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손컨설팅컴퍼니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경영인의 삶을 살았다.

감신대는 손명원 장로가 기증한 책을 전교생들에게 나눠주고 독후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정 총장은 “감신대 학생들이 이 기회를 통해 손정도 목사님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갔던 손정도 목사님처럼 감신의 모든 학생들이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감신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손정도』전기 독후감 대회는 오는 2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응모 할 수 있다. 우수상(자유와 평화상) 1명에게 3백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등 총 1천만원 상당의 상금과 응모한 모든 학생에게 신앙과지성사가 발간한 3만원 규모의 도서를 지급한다.

손명원 장로도 “이번 독후감 대회를 통해서 학생들이 손정도 목사의 삶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분의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걸레정신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손명원 장로

해석 손정도(1882~1931)

상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는 그 활동 반경이 실로 광대하였다. 국내에서는 출생지 강서에서 출발해서 평양, 서울을 거쳐 ‘가츠라암살음모사건’으로 1년 유배 생활을 했던 전라도 진도까지 2천 리 길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고 부모와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 ‘27년 공생애’의 반 이상(15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중국 남방 상해에서 북경과 산해관을 거쳐 북방 갈림과 하얼빈까지 1만 리 길이었다.

그는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누비면서 목사로만 산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을 비롯해서 전덕기, 양기탁, 이동휘, 이시영, 이동녕, 안태국, 김규식, 여운형, 김구, 노백린, 신규식, 현순, 하란사, 기마리아, 김활란, 유관순 등 그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사와 근대사의 주역들로 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이었다.

손정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투쟁 또한 눈물겨웠다. 삼일운동 때 평양에 있던 부인과 자녀들도 모두 만세시위에 가담했고 어머니(오신도)와 맏딸(손진실)과 함께 평양 애국부인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손정도의 두 아들(손원일과 소원태) 역시 일제말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손정도는 북만주 길림에서 목회할 때 ‘숭실 동문’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김일성)를 친자식처럼 돌봐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김일성은 손정도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해서 손정도는 ‘남과 북에서 공히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손정도는 그 인맥과 활동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백두대간처럼 응대하였다.(이덕주 교수의 『손정도』 머리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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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손정도』 – 자유와 평화의 꿈

감리교신학대학교 독후감 대회

감리교신학대학교 독후감 대회

『손정도-자유와 평화의 꿈』

이덕주 지음. 밀알북스(신앙과지성사)발행

 

대상: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대학원생

기간: 2020년 9월 21일~10월 10일까지

문의: 감신대도서관(01-3619~232,233)

 

 

 

#감리교신학대학교독후감대회 #손정도 #밀알북수(신앙과지성사) #이덕주교수

존 웨슬리 저널-전5권

존 웨슬리 저널 출판 기자 간담회

 

[새로나온책] ‘존 웨슬리 저널’ 세계 최초 완역 출간

[앵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신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존 웨슬리 저널’이 세계 최초로 완역돼 출간됐습니다.

새로 나온 책, 오늘은 ‘존 웨슬리 저널’을 소개합니다. 이빛나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18세기 영국의 신학자이자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존 웨슬리는 생전, 자신이 기록한 일기를 기반으로 복음 사역 여정을 정리한 이른바 ‘저널’을 발표합니다.

이 웨슬리의 저널은 그동안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편집돼 출판돼 왔습니다.

이 중 편집자의 각주와 설명을 제외하고, 웨슬리가 직접 기록한 저널만을 편집해 1872년 발간된 토마스 잭슨의 ‘웨슬리 저널’이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 존 웨슬리 저널 / 웨슬리신학연구소 편역 / 신앙과지성사 펴냄

‘웨슬리 저널’ 전체가 영어 외의 언어로 완역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앙과지성사에서 펴낸 ‘존 웨슬리 저널’은 일산 광림교회가 후원하고, 웨슬리신학연구소가 번역과 감수를 맡았습니다.

책임 번역자인 웨슬리신학연구소 소장 협성대 김영선 명예교수를 필두로, 감리교와 장로교, 성결교 등 다양한 교단에서 모두 23명의 교수들이 번역자로 참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웨슬리신학연구소는 최근 웨슬리 저널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책의 번역자이자 감수 위원인 서울신대 한영태 전 총장과 웨슬리신학연구소 김영선 소장, 일산 광림교회 박동찬 목사 등이 참석해 책의 발간 취지와 의의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웨슬리의 삶의 모습과 설교, 목회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저널을 통해 웨슬리 신학이 그의 일생을 통해 발전되었다는 것과 감리교 부흥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김영선 소장 / 웨슬리신학연구소
“이 저널 안에 감리교의 모든 목회 여정, 교육 여정, 정치 여정, 복음 전도의 여정이 다 담겨 있는데 이러한 것을 모르고 좀 심한 말이지만 웨슬리의 속 내용은 가르치지 아니하고 겉 내용을 가르쳤다는 그런 충격이 있어서 이 웨슬리 저널이 발간됨으로 말미암아 감리교회는 물론 한국교회의 목회와 복음전도에 큰 기여를 할 것 같다 (생각합니다).”

또 웨슬리의 기록을 통해 복음운동이 영국사회에 끼친 영향과 당시 감리교 신도회 사역의 실상, 영국의 사회문화적 상황 등도 배울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존 웨슬리 저널’은 총 다섯 권으로 나뉘어 구성됐으며, 한정판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CBS 뉴스, 이빛나입니다.

[영상취재] 정선택 최현 [영상편집] 두민아

https://www.nocutnews.co.kr/news/5389028

유영모의 귀일신학-이정배

이정배 지음, 『유영모柳永模의 귀일신학歸一神學: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를 읽고

 

 

– 팬데믹 이후 시대 우리는 왜 다석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   임종수(한국예술종합학교)

 

 

  1. 이 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히 저어되는 일입니다. 제가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잘 알지 못하기에 글을 쓸 만한 적임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 시절 김흥호 선생님의 강의 사이로 다석사상의 흔 적을 조금 엿보고, 선생님이 풀이한 󰡔제소리』를 일독한 후 『다석강의』를 읽은 정도에 불과함을 먼저 고백합니다.

 

  1. 그러한 무지의 부끄러움을 안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조금은 그 무지를 면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물론 부끄러움은 여전합니다. 다석사상에 대한 무지의 부끄러움과 책을 읽는 동안 겪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의 『유영모柳永模의 귀일신학歸一神學』을 읽고나서야 다석사상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다석사상을 가까이 하지 못했을까 자문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석의 한국어가 제게는 잘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의 한국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물론 저는 언어란 단순히 사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사상에 가장 어울리는 언어를 찾기 위해 다석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석사상에 대한 오랜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자가 다석의 난해한 한국어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며 다석사상의 알짬을 신학과 종교의 영역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으로 읽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석사상이 학문의 대상을 넘어, 사람의 속알(본성)에 대한 자각과 일상 속의 영성을 일깨우는 사상임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1. 그래서 저는 “『다석강의』를 재독하며 학문연구의 대상으로서만 아니라 다석이 붙들고 씨름해야 할 영성의 사람으로 다가왔던 까닭”이라 집필의 뜻을 밝힌 저자의 말에 깊이 공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자는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를 통해 다석사상을 종교와 신학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왔기에 이 책 역시 앞 두 책의 연속선상에서 읽힙니다. 하나 이 책은 이전의 책들과 성격이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저자가 『다석강의』를 읽는 내내 “직업적 종교인(신학자)이 아닌 신앙인, 구도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기 위한 갈급한 상태에서”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수행한 성찰록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1. 그래선지 저는 저자의 『유영모의 귀일신학』이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라는 부제를 단 것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기 위해 갈급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시대에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시대에 일상인으로서 다석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왜 우리는 다석의 사상을 조명하고 읽어야 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경제시스템 속에서 욕망의 극대화를 경험하는 오늘, 인간의 크기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이 작아져버린 시대, 다석사상이 우리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어떤 사상과 실천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 혁명보다 일상의 혁명이 힘들고, 몸에 밴 관행과 습관으로 사람만큼 바뀌기 힘든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이즈음 더욱 실감하기 때문입니다.(그런 때문일까요. 기질을 변화시켜(變化氣質) 성인聖人되기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아 사람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한 동양의 성현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1. 이처럼 성찰이 갈급한 시대에 『다석강의』를 다시 읽어내고자 한 저자는 다석의 사상을 ‘귀일신학(歸一神學)’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귀일’은 “모든 종교의 외형상, 현상적 차이가 있지만 진리는 하나뿐” 이며 이는 “신중심적 다원주의라는 서구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리고 “신이라는 실체를 말하지 않고 전체와 개체의 관계에 역점을” 둔 것이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랜 다석사상 연구의 결정(結晶)을 ‘귀일신학’이란 이름으로 오롯하게 담아 놓았습니다.

 

  1. 그렇다면 ‘귀일’이란 무슨 뜻일까요. 짧은 지면에 저자의 ‘귀일신학’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제 힘이 닿지 못하나, 저자가 ‘귀일’의 핵심은 ‘참나’를 찾는 데에 있다고 한 데서 뜻의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생성의 근원인 ‘하나’는 본디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 ‘하나’였기에 그 하나로 돌아가는 바를 일컬어 ‘귀일’이라 합니다. 여기서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로 되기에(人中天地一) 사람(人)이 중요”한 것은 “본래적 하나가 인간 속에” 있기 때문이며 다석은 이를 인간의 ‘밑둥’, ‘바탈’이라 하고, ‘하느님 아들’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그러고보면 저자가 말한 ‘신학’이 처음부터 이미 서구의 유신론적 신학 개념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귀일신학’으로 다석사상을 독해하며 ‘귀일신학’의 뜻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일까요?

 

  1. 이런 물음 속에 저는 ‘생각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다석의 ‘염재신재’(念在神在), 즉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는 깨침을 전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저자는 유학의 신독(愼獨)을 예로 들어 “어떤 시공간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있다는 확신 하에 자기 삶을 성찰하는 이들을 양육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뜻에 기대어 관견을 적으면,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현존을 참으로 믿게 된다면 우리는 사람과 모든 존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이 땅에 뿌리박되 매이지 않고 하늘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는 믿음은 ‘본래적 하나’ 즉 우리 안의 속알(영, 빛)을 깨닫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팬데믹 이후 시대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과 세계관의 변화는 인간이란 ‘본래적 하나’, 속알․영․빛을 품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1. 그러기에 저자는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역할, 제도로서의 종교를 비판하며 ‘영성으로서의 종교’가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있음과 인간의 영(속알, 빛)은 시공간에 매이지 않고 제도에 갇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오늘을 ‘일상의 종교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역설합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인식이 담긴 본서는 다석사상을 귀일신학으로 해석하는 저자가 종교적, 영적 혼돈의 시대, 영적 삶의 실천이 절실한 코로나 19시대 이후를 사는 기독교인들과 종교인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이제 책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다석강의』의 차례를 따라 모두 43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석강의』 전체 43강중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가 “모두 사생관,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고,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다”, “알몸이 아니라 얼맘으로 살라”로 되어 있음에 주목합니다. “종교란 결국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니라 얼로 사는 삶, “죽음을 삶 속에서 초월(극복)하고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석의 부활사상임을 강조합니다. 어쩌면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삶 속에서 초월하고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 데에 다석사상의 전체가 담겨 있지 않은가 합니다.

 

  1. 그러나 저자는 좀 더 긴절하게 다석사상의 종교(신학)적 가치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저자는 다석의 ‘없이 계신 이’를 신에 대한 동양적 이해의 표현으로 봅니다. ‘있음’으로서의 유신론적 표상이 아닌 ‘없이 있는’ 대극의 일치를 다석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없이 계신 이’는 ‘있음’과 ‘없음’ 어느 쪽에도 붙들리지 않는 신(神)을 표현한 말입니다.(저는 여기서 ‘신’을 ‘이름’과 ‘있음’에 가둔 종교인들의 폭력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둘째, 다석이 인간의 ‘밑둥(바탈)’으로서의 신이라는 맥락에서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찾은 것입니다. 다석은 ‘얼’의 차원에서 붓다와 예수 모두 본질상 같다는 주장을 합니다. “자신의 내면의 빛으로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석의 지론인데, 저자에 따르면 이를 통해 다석은 대상적 믿음, 곧 대속론(代贖論)에 의존한 정통기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저자가 언급한, 대속이 아닌 자속自贖의 맥락에서 ‘동양적 기독교’의 뜻을 사유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셋째, 현실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그런 중에도 저자에 따르면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존재들’인 이 땅의 성인들이 있습니다. ‘몸 줄여 마음 늘리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저자가 말한바, ‘길을 가다 길이 된’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다석이 바로 “그 길을 예수의 방식대로 가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수가 ‘제 뜻을 버려 하늘 뜻’을 구했기에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길임을 저자는 일깨우고 있습니다.

 

  1. 이처럼 우리에게 삶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석사상은 오늘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물론 다석사상이 가진 의미를 이 시대에 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석 사상이 오늘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를 네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 다석사상에 담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입니다. 다석사상의 핵심은 “인간을 성인, 군자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선한 존재로” 보는 데에 있습니다. 본래 모두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바탈)을 지닌’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석사상에는 인간존재의 생태학적 각성을 통한 생태적 자아의 각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다석이 얼만을 중시하지 않고 몸도 중시하며 일식(一食)과 단색(斷色)을 통해 탐진치(貪瞋癡)를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석사상에는 ‘행한 것만큼만 아는(믿은) 것이다-지행합일의 삶’, ‘밖의 불을 끄고 자신의 빛을 따라 살라’는 실천수행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저자의 비판대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사는 종교인일수록” 제소리 없이 남의 말만 하며 살기에 몸과 마음이 따로 놉니다. 자신이 읽는 종교의 경전들이 제소리가 되는 과정을 겪지 않은 결과입니다. 넷째, 다석사상에는 문명비판적(생태적) 시각이 숨 쉬고 있습니다. 다석에 따르면 우리 몸은 탐진치의 훈습으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이에 맞서 다석은 일식을 행하며 ‘제 좀 줄여 마음 키우는’ 삶으로 ‘세상을 구하는 십자가’의 뜻을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다석의 이러한 실천수행을 거듭 보여준 저자는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단순한 삶의 양식’에서 비롯될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다석의 삶과 사상에 대한 재해석이 문명사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재의미화되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1. 앞에서도 비쳤듯 저자는 ‘귀일신학’으로 인식한 다석사상을 학문의 언어로 가두지 않고 누구나 음미할 수 있도록 다석사상의 핵심을 자상하게 풀어놓았습니다. 특히 본서에는 다석사상의 고갱이를 모은 󰡔다석강의󰡕를 두고 저자가 오래도록 묵히고 삭인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거짓 글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지만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거짓임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러나 참 글은 시간을 견디며 더욱 우리의 삶과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마음이 담긴 구도와 사색의 깊이를 경험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서가 다석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영적 자양이 되어 우리 안의 ‘속알’(빛)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라며 이 땅에서 ‘영원’을 경험하고 지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1. 마지막으로, 책속에는 곱씹어 음미할 구절이 너무도 많은데, 그중 오늘의 한국 현실을 생각하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 대목이 떠오릅니다. 사람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 사라지고 존엄성이 훼손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한테서 하느님의 형상과 서로의 속알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 도구처럼 함부로 대하는 오늘, 다석의 ‘존신우애윤리유’(尊信友愛倫理由)를 풀어놓은 저자의 다음 말은 깊이 새겨 삶속에 육화해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우애, 형제 사랑이다. 우애는 하느님을 만난 경지이다. 살(色)끼리 만나지 않고 정신과 말씀이 하나 상태로 만난 까닭이다. 사람은 육체로 보아 짐승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 씨(속알)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몸도 중요한 것이다. 다석이 몸성히를 강조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인간 속의 높은 곳, 그곳을 다석은 ‘존’(尊)이라 불렀다. 그렇기에 인간은 인격을 지녀야 옳다. 상대적인 나는 ‘격’(格)을 지닐 수 없다. 인간이 우애하는 한 비로소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인간(人)의 말(言) 바로 그것이 믿을 신(信)이다. 이것은 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자신을 높이는 길이다. 자신을 높은 곳에 둘 때 타자와의 관계도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인간 속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말하며 인간 몸을 하느님 성전이라 했다. 다석은 이 말을 하느님의 씨앗이라고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 씨앗의 생명력은 무궁무진하다. 결코 죽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하느님 씨가 자신 속에서 싹트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종교가 비롯할 수 있다.” (「제38강 사랑-자신의 덕(곧이)으로 이웃을 이롭게 하라」, 415~416쪽)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일제 강점기 젊은이 이끈 신앙정신 배우고 계승하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생전 모습. 하늘중앙교회 제공

1900년 미국연합감리회 파송을 받은 한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는다. 당시 29세였던 사애리시(史愛理施·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였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한 뒤 충남 공주에 선교기지를 세웠다. 부부는 교육 선교와 여성 지도력 양성에 방점을 찍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6년 선교 활동 중 병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역을 계속하다 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은퇴선교사요양원에서 지내다 72년 9월 8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역하며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전신인 명설학교를 비롯해 9개의 여학교와 7개의 유치원을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인 전밀라와 여성 경찰서장 노마리아가 사애리시 선교사의 제자였다.

1919년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준 것도 그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10년 충남 천안 병천면 지령리교회에서 여덟 살이던 유 열사를 만났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신앙심이 깊고 영리했던 유 열사를 눈여겨보다 수양딸로 삼았다. 1916년에는 유 열사를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시켰다. 여성 지도자로 키우려는 취지에서였다. 비슷한 시기 사애리시 선교사는 영명학교 학생이던 조병옥을 연희전문학교로 유학 보내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후원했다.

그는 앨리스 샤프라는 본명보다 한국명 사애리시로 널리 불렸다. 그만큼 허물없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가까이 지냈다. 지역 주민들은 그를 ‘사부인’으로 부르며 의지했다.

지난 8일 천안 하늘중앙교회에서 교회 관계자와 사애리시 선교사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사애리시 선교사 흉상 제막식 모습. 하늘중앙교회 제공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과 활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충남 지역 감리교회들이 나섰다. 이들 교회를 주축으로 ‘앨리스 샤프 선교사 선교 기념사업회’가 다음 달 정식 출범한다.

유영완 천안 하늘중앙교회 목사는 1일 “사애리시 선교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당대 여러 젊은이를 이끈 신앙의 어머니였다”면서 “여성을 일깨우고 한국의 근대화를 꿈꿨던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늘중앙교회는 지난 8일 교회에서 사애리시 선교사 흉상 제막식을 진행했다. 이 교회도 1905년 사애리시 선교사가 설립했다.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를 쓴 임연철 박사도 “사부인은 충남 지역 어르신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했던 분”이라면서 “제 친할머니 강계순 권사를 논산제일감리교회로 전도해 우리 집안에 복음을 선물하셨다”고 했다. 그는 미국 드루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사부인과 관련한 사료를 수집해 집필한 전기를 지난 3월 출간했다. 그는 “신앙의 후배들이 선한 삶을 살았던 선배를 기억해야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0619&code=23111111&cp=nv

입력 : 2019-10-02 00:01

문화가소식 – 이야기 사애리시

 

이번주 문화가 소식은 이슬기 기자가 전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최초 여성교육기관을 세우며 한국에서 39년 동안 선교사로 헌신한 사애리시 선교사의 전기를 담은 책. 이야기 사애리시 입니다.

저자 임연철 박사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서 사애리시 선교사를 통해 받은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사부인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사부인의 39년 동안 한국에서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책에 풀어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사 부인은 당시 배움에 소외됐던 여성들에게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와 유치원을 충남 곳곳에 설립했고 특별히 유관순 열사에게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의 입학을 돕기도 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이야기 사애리시] 충청도 지역에서 여성들의 삶에 희망을 안겨준 충청 선교의 개척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CTS뉴스 이슬깁니다

유관순의 첫 스승, 사애리시를 아시나요

유관순의 첫 스승, 사애리시를 아시나요

‘앨리스 샤프’ 1900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 와 공주·논산·천안 등 충남서 사역
여학교 9곳·유치원 7곳 설립하고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입학 주선
후손들 천안 교회 찾아 유품 기증… 8일 출판기념회·사진전 열려



“앨리스 할머니가 한국에서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줄 몰랐습니다. 지금 충남에 감리교회가 1400개, 성도(聖徒)가 20만명이라는데, 그 시작이 할머니의 선교였다니 놀랍습니다. 저희 가족은 ‘앨리스 할머니가 한국에서 40년 선교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거든요.”

4일 오전 충남 천안시 하늘중앙교회 내 ‘앨리스 샤프 기념홀’ 카페에서 만난 데이비드(64)·스티븐(62) 솔로즈 형제는 놀라워했다. 이들은 ‘충남 믿음의 어머니’로 불리는 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의 후손. 샤프 선교사 언니의 증손자인 이들은 하늘중앙교회(유영완 담임목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캐나다 북동부 노바스코샤 출신인 샤프 선교사는 1900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1903년 서울에서 동료 선교사 로버트 샤프와 결혼한 그는 1904년부터 공주를 근거지로 충남 지역 선교를 맡았다. 당시 충남 지역은 감리교가 선교를 담당했다. 1906년 남편이 논산 선교 중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후에도 샤프 선교사는 한국에 남아 1939년까지 대전·논산·강경·부여·보령·천안·안면도 등 충남 전역을 순회하며 선교 활동을 펼쳤다. 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 9곳, 유치원 7곳을 설립했고, 유관순 열사에게 영명학교와 이화학당 입학을 주선했다. 가마, 말과 자동차를 타고 충남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국명 사애리시(史愛理施) 혹은 ‘사(史) 부인’이란 별칭으로 불린 그는 존재 자체로 화제였다. 외국인을 처음 보고 도망가는 이도 있었지만 풍금 연주엔 구름 관객이 몰리고, 서툰 한국말로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가 늘어갔다. 여성들에겐 글을 가르쳐가며 전도했다. 어떤 지역에선 한 마을 38가구가 모두 신자가 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사 부인은 훗날 한국 선교를 회상하며 “내가 세운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육받고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훈련받아 전도사, 교사, 전도 부인, 의사, 간호사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했다.
 
1세기 전 충남 지역에 복음을 전한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유품이
천안 하늘중앙교회에 기증된다. 데이비드(왼쪽)·스티븐 솔로즈씨 형제가
유영완(가운데) 목사와 함께 샤프 선교사의 유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하늘중앙교회가 사애리시 선교사 현양에 나선 것은 이 교회 역시 사 부인과의 인연으로 시작됐기 때문. 1905년 사 부인이 전도한 당시 65세 유씨 할머니 댁에서 예배를 드린 가정 교회가 이 교회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1922년 천안 최초로 이 교회에 유치원을 세운 것도 사 부인이었다. 유영완 목사는 “사 부인은 1939년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간 후로 연락이 끊겨 자료가 태부족한 상태여서 기념 사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언론인 출신 임연철 박사가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열정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베일에 싸였던 사 부인의 생애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 부인의 고향에서 후손들을 만난 것도 임 박사였다. 소식을 들은 하늘중앙교회는 올 초 완공된 교육관에 앨리스 샤프 기념홀을 개관하고, 오는 8일 임 박사의 저서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와 사진 전시회를 개막한다. 이 자리에선 후손들이 보관해온 사 부인의 유품 기증식도 열린다.
 

후손들이 보관해온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유품.
만년필과 복주머니, 인형, 골무 등 80년 전 소박한 생활을 보여준다. /이태경 기자

 
후손들이 가져온 유품들은 80년 전 소박한 신앙생활을 보여준다. 한복을 입은 작은 인형, 색색 골무, 만년필 한 자루, ‘만세(萬歲)’ 글자가 수놓인 복주머니 등이다. 데이비드 솔로즈씨는 셔츠 앞섶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사 부인이 마지막까지 걸고 있었다는 목걸이는 작은 십자가와 ‘수(壽)’자로 이뤄졌다. 십자가엔 ‘보령교회 리신덕’ ‘사랑’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선교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는 사 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었다.

유 목사는 “사 부인은 100여년 전 한국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소외된 이들을 섬긴 분”이라며 “그 뜻을 이어서 교회는 다문화 가정과 중도 입국 자녀들을 돕는 사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미 작년부터 중도 입국 자녀 20명을 1대1로 교육해 그중 7명을 일반 학교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유 목사는 “앞으로 관련 자료를 더 모아 작은 기념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6/2019090600166.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조선일보
입력 2019.09.06 03:01




[국민일보]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 지음/홍인식 옮김/신앙과지성사

마르틴 루터가 살던 시대의 하나님은 공포 그 자체였다. 교회 강단에서는 구원에 대한 강론보다 정죄가 난무했고, 신자들의 기도는 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요구하는 간청들이 대부분이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루터는 하나님을 심판자요 파멸자로만 알았고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성경을 깊이 읽어가면서 그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었고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의롭다 칭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루터의 하나님 인식 전환은 종교개혁의 불꽃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스페인 학자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의 역작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참 하나님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안에 형성돼 있는 잘못된 하나님 인식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제대로 알자고 역설한다.

거짓 하나님 개념 중 가장 폭넓게 퍼져있는 인식은 공포의 하나님이다. 이는 소위 ‘공포의 목회’를 통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들은 죄를 예방하기 위해 공포를 이용했지만 사람들은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는 공포의 목회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단 하나의 죄도 놓치지 않고 징벌하는 엄격한 심판관으로서 하나님의 모습이라 지적한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는 괴물이 아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며 빛이라고 정의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이름이며, 그의 존재와 행위 그 자체다.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고 구약성경 호세아서(11:4, 8∼9)에서 하나님은 자식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분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선지자도 어머니의 따뜻함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시인들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큰 바위, 성과 요새로 비유했다.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기에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시 27). 예수님의 모든 비유엔 사랑의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은 공포를 이긴다. 사랑의 하나님인가. 공포의 하나님인가. 저자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며 하나를 택하라고 도전한다.

하나님은 또한 연대(連帶)의 하나님이다.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개인적 경험 없이는 참된 믿음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만의 하나님으로 과도하게 집중하는 태도는 비판 받아야 한다. 개인의 신앙과 삶에 집중하며 이를 기독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신앙은 구조적 악과 세계의 악에 대해 무지하도록 만든다. 노동자들의 불법 해고와 환경 파괴, 식량과 영양 부족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참혹한 결과와 난민 발생 등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개인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부르주아적 기독교’로 부르면서 ‘나 중심주의(I-centrism)’의 침투로 인한 결과로 분석한다. 개인주의적 기독교는 너무 쉽게 뉴에이지운동이나 네오(Neo) 불교와 유사한 영성주의자들과 연대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만 여기는 극단적 형태인 것이다.

저자는 성경적 하나님이 사회적 관심에 대해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죄와 구원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민족 공동체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구약 예언서 전반에 나타나는 외국인과 고아, 과부에 대한 돌봄 메시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해방과 치유, 회복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연대는 예수의 하나님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이름 중 하나로, 하나님은 인간과 연대하는 신”이라고 밝힌다.

책에서는 간섭의 하나님에서 의지의 하나님, 희생의 하나님에서 생명의 하나님, 강제의 하나님에서 자유의 하나님, 멀리 있는 하나님에서 가까이 있는 하나님, 폭력의 하나님에서 평화의 하나님, 홀로 있는 하나님에서 함께 있는 하나님 등의 주제를 다룬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0182

[알림] ‘독립운동가 신석구 글쓰기 대회’ 기감·국민일보 공동 주최합니다.

2019 한국교회 3·1운동 100주년

변재운 국민일보 사장(왼쪽)과 기독교대한감리회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위원장 이병우 감독이 25일 국민일보빌딩 대회의실에서 업무협약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직무대행 이철 목사)와 국민일보(사장 변재운)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인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공동 사업을 진행한다.

기감과 국민일보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대회의실에서 협약식을 갖고 첫 번째 사업으로 ‘독립운동가 신석구 목사 자서전 글쓰기 대회’를 공동 주최키로 했다. 기감 총회는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던 만세운동의 100주년이 되는 내년을 기념하기 위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위원장 이병우 감독)를 조직하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글쓰기 대회는 기감 소속 목회자였던 신 목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대회에는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집필한 신 목사의 전기 ‘출이독립(出以獨立)’(신앙과지성사)을 읽은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 총상금은 3000만원으로 대상과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에 모두 366명을 시상한다.

협약식에서 이병우 감독은 “신 목사가 남긴 독립에 대한 열정과 올곧은 성품이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지길 소망한다”면서 “이 일의 성공을 위해 기감과 국민일보가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변재운 사장은 “신 목사는 독립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컸던 인물로 ‘출소한 뒤에도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재판장에게 외쳤던 걸로 유명한 분”이라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젊은 세대에 제대로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일생을 독립에 헌신했던 신 목사는 수차례 투옥과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독립에 대한 열망을 굽히지 않았다. 폭압통치가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말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다. 광복 후 많은 목회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할 때 성도들과 함께하기 위해 북에 남았으나 1950년 평양에서 순교했다. 하지만 그가 순교한 사실은 신앙의 후배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었다.

양측은 신 목사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앙 선배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02-399-2041).

◇응모자격 :‘출이독립’을 읽은 모든 분

◇제출양식 : 독후감 형식 A4용지 2∼5장 (응모자의 전화번호와 감리교인의 경우 소속교회를 명기할 것)

◇제출기간 : 2018년 8월 1일∼9월 30일

◇제출 방법: 온라인 또는 우편접수

-온라인 접수 : kmchistory@hanmail.net(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우편 접수 :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49 감리회관 16층 선교국. 담당 고영도 목사

◇발표 및 시상

-부문 : 아동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일반부

-발표 : 10월 12일 국민일보 지상 및 감리교 홈페이지

-시상 : 10월 23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신석구 세미나장

◇상금 내역

-대상 1명 : 300만원

-최우수상 5명 : 각 100만원

-우수상 60명 : 각 10만원

-장려상 300명 : 각 5만원

◇주최 : 기독교대한감리회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국민일보

◇주관 : 기독교대한감리회 12개 연회 및 교회학교전국연합회

◇후원 : CBS, CTS, 기독교타임즈, 신앙과지성사

[노컷뉴스] 신석구 목사 전기 천권 충북교육청 기증

청주출신 독립운동가 신석구 목사 전기’출이독립'(出以獨立) 천권 기증식

감리교 충북연회 신석구 목사 전기 충북교육청 기증식 (사진=청주CBS 맹석주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충북연회는 청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석구 목사의 전기 ‘출이독립'(出以獨立) 천권을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충북도교육청에 기증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충북연회 이병우 감독 등 충북연회 목사 6명은 24일 충북도교육청 김병우 교육감 집무실에서 ‘출이독립’ 기증식을 가졌다.

이병우 감독은 “청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고 3.1 만세운동 33인 중 한명인 신석구 목사는 신채호나 이상설 선생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민족의 사표가 될 만한 분이라”고 밝혔다.

또 “전기 제목 ‘출이독립’도 감옥에 있을때 검사가 ‘나가서도 독립운동을 할 것이냐’고 묻자 ‘나가서 계속 할것이라’는 뜻을 담아 ‘출이독립’이라고 말한데서 따왔다”며 “신 목사는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신사참배와 일제에 반대하다 해방을 맞는 등 충절의 고장에 걸맞는 애국지사라”고 밝혔다.

이병우 감독은 “충북출신인 이덕주 교수가 청소년들 위해 전기를 쉽게 썼다”며 “많은 청소년들이 신 목사의 전기를 읽고 애국,애민사상을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대해 김병우 교육감은 “우리 지역에 애국열사와 의사 등 소중한 민족적 자산이 많지만 선양을 못해 아쉬움이 많았는데 감리교에서 선양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도내 학교에서 잘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신석구 목사 전기와 신석구 글쓰기대회 포스터
기독교대한감리회 충북연회는 “출이독립 독후감 형식의 신석구 글쓰기 대회를 8.1~9.20일 접수를 받아 10월에 시상식을 갖고 361명에게 3천만원의 시상금을 줄 예정이라”며 많은 아동,청소년,일반인의 참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