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이효삼·송병구 지음, 신앙과지성사, 1991

1.

이런 때도 있었나? 이 책 앞날개에 수록된 이효삼 송병구 두 저자의 모습이 정말 소년 같다. 삼촌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이효삼 목사의 넥타이 맨 모습만 이제 막 순사가 된 경찰 같고, 송 목사는 대학원생 같은 앳된 얼굴인데 이제 다 환갑을 넘겼으니 참 오래된 책이긴 하다. “이효삼은 57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문과와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가평 산유리교회 담임목사이다, 송병구는 61년 영월 출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김포 문수산성교회 담임목사이다,” 이렇게 쓰여진 소개 글을 나는 몇 번이고 읽었다.

30년이 훌쩍 넘은 시절과 시간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 다 첫 교회 임지를 맡자마자 이효삼은 한옥 예배당을, 송병구는 천장화 그림이 인상적인 농촌공동체교회를 건축했다. 그 어린 나이에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 문제아 두 젊은 목사님을 내가 불러냈다. 이 책을 신앙과지성사의 첫 책으로 발행하려는 깊은 뜻을 품고 두 아우님들을 북한산계곡에 백숙을 파는 집으로 안내했다. 나 역시 30대 중반이니 당시 주머니 사정으론 백숙을 배 불리 먹기는 어지간한 깡이 필요할 때였다. 우리 셋은 청순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책에 대한 기획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진지하고도 열정 넘치는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들은 어둠이 짙었을 때 막이 내렸다. 그렇게 북한산계곡 백숙 잔치 덕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신앙과지성사의 제1호 단행본이라는 감개무량한 책이 되었다.

2.
저자와 나 모두 감청 출신이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넘어서며 감청은 살아 움직이는 그루터기였다. 좋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교회다운 교회, 하나 되는 교회, 그리고 민족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꾼이 감청을 통해 생성되었다. 감청, 기청, 장청도 마찬가지로 교회갱신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애썼던 많은 청년들의 산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감청이 문서정리와 출판 사역에 공로를 세웠다. 내가 편집장을 했던 〈감청회보〉는 일간신문 크기의 격월간 발행으로 기독 청년뿐만 아니라 일반 운동권에서도 갖추지 못한 모양새를 신문으로 폼나게 발행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이야기지만) 그랬더니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감리교 인천산선에서 실무자로 일한바 있는 김근태 의원이 나를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갔더니 왈 “병천아, 네가 왜 이렇게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좁은 감리교에서 버덩이냐? 네가 이 솜씨를 더 넓게 한번 발휘해 봐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자랑이 아니라 당시 감청의 출판 사역 감각은 다른 운동권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년과 성서 이해>가 바로 그를 입증한다. 감청이 교단 이름을 빌려 발행했던 <청년과 성서 이해>는 수만 부가 나갔다. 성서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안목을 여는 데 초점을 둔 청년을 위한 청년이 쓴 성서연구인 이 책은 원고료 한 푼 받지 않고서도 며칠 밤을 새워 토론하며 만들었다. 정말 역작이고 멋있다. 돌아가신 김찬국 선생님이 감수하시며 극찬했고 장기천 감독님도 참 기뻐하셨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이유가 있다. 이런 경험을 곧바로 살려서 출판된 것이 이 책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3.
우리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보배로운 성서학자 민영진 박사님이 극찬하며 추천사를 써 주신 이 책은 네 마당, 12과로 구성되었다. 첫째 마당 사람들, 둘째 마당 갈등, 셋째 마당 만남, 넷째 마당 하나됨이다. 돌출된 단어만 보아도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각과 마다 성경공부(이해)와 나눔(사귐)과 다짐을 조화롭게 연계시켰다.

책을 펼치다가 이 책 첫째 마당에 있는 사귐의 노래 ‘직녀에게’를 보고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체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은 분이 부르며 눈물 흘렸을까? 책은 누렇게 발하고 겨우 3천 원이라는 책값이 세월을 말해 주건만, 여기 수록된 내용은 지금도 필요한 분단 현실을 조명함이 가슴 아프다.

이 민족에게 분단은 최대의 불행이다. 작은 출판사를 문 열고 책을 낼 여력도 없었는데 주머니 털어 백숙을 먹었던 그 날의 희망이 오늘 신앙과지성사를 통하여 값진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하심을 감사한다. 이효삼·송병구 첫 책의 저자들과 다시금 북한산계곡에서 백숙을 먹고 싶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효삼 목사는 지금 열심히 멕시코 사막지대에서 빈민선교에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건투를 빈다. 송병구 목사는 한국 최고의 십자가 전문 연구가로 명성을 떨치며 유익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책이 다시금 재판 발행되는 날, 이효삼도 달려와 함께 셋이서 ‘직녀에게’를 또다시 부를 날은 허락될 것인지….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민중시대의 복음

<민중시대의 복음>, 장기천 지음, 신앙과지성사, 1989

1.
벌써 33년이 지난 일이다. 장기천 감독님께서 이제 막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던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른의 눈으로 살펴보면 어려운 행태가 엿보이셨는지, 감독님은 가끔 나를 호출하셔서 당시 나로서는 접할 수 없는 좋은 음식들을 사주셨다. 달려가 뵈니 이제 막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끝마친 후라 홀가분하게 시간 보내시면서 원고를 정리했다며 원고 뭉치를 내게 밀어주셨다. 감독회장으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목회서신 형식으로 쓰신 글과 여러 신문과 잡지사에서 청탁받아 쓰신 글이 대부분이었다. 원고를 건네받고 몇 차례 살펴본 후 나는 책의 제목을 <민중시대의 복음>이라고 정하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흡족해하셨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감독님 돌아가신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67세가 되었다. 출판된 지 33년이 지난 이 책을 부여잡고 홀로 사무실에서 그리운 장 감독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쓰는데, 평소 동생처럼 지내는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가 전화를 했다. “이 책이 5월에 출간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감독님도 5월에 돌아가셨다면서, 5.18. 5.16 등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5월의 시간들을 그렇게 가슴 아파하시더니 진작 본인도 5월에 떠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서 목사에게 전하는 말끝이 흐려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책 소제목 중에 “우리에게 5월은?”이란 글이 있는데, 5월을 염려하며 5월에 떠나가신 감독님을 생각하며 소개해 본다.

“5월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많은 인명을 살상당한 광주시민들을 사회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던 사람들이 지체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아픔을 나누지 못한 자신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 감리교도 여러분! 한국의 감리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겨레를 위한 예언자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이 겨레의 죄와 허물을 속량하는 제사장이 되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임을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나는 오늘에 들어도 유효한 감독님의 글을 마주 대하니 감개무량했다. 감독님이나 목사님이라기보다 선생님으로 여기며 지내온 것이 명예롭다. 그래서인지 장 감독님의 예언자적 소명과 외침이 가득 담긴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가슴 벅차다.

2.
어영부영 지내왔는데 손꼽아보니 장 감독님이 이 원고 뭉치를 내게 내밀었던 때가 57세였다. 56세에 감독회장직을 마치셨으니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년이나 적었다. 그럼에도 장 감독님에겐 늘 목사님으로서의 품격이 몸에 배이셔서 뵐 때마다 긴장하면서 감독님을 만났다. 오래된 책이지만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시대정신과 복음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균형감각 있게 잘 정리해 줄 것이다. 이 책 머리글에 실린 원고의 구성을 설명하면 책의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겠다. 감독님을 함께 추모하는 뜻에서 머리글을 일부 소개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한국교회 일치운동과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에 대한 평소의 소견을 담은 것이기에 ‘복음과 역사의식’이라 정했다. 제2부는 한국 감리교회의 감독으로서 새 교회로의 변화와 진보를 요청하는 목회 서신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복음과 새 교회운동’으로 정했다. 제3부는 동대문교회의 목회자로서 해가 바뀔 때마다, 중요한 교회 계절을 맞을 때마다 신도들과 동시대인으서, 혹은 그들의 이웃으로서, 바르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글들을 모았으므로 ‘진리와 희망을 찾아서로 정했다. … 나는 예수를 믿고 그를 전하는 한, 민중선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직 민중을 위해 사셨던 예수의 말씀, 그의 사랑, 그의 희망에 관해 날마다 명상하며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3.
나는 장 감독님을 1980년 초에 ’감청회보‘ 편집장을 하면서 청년지도위원장으로 특별한 직책(?)을 맡으셨을 때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교회갱신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창하던 ‘감청’은 교단 지도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나이가 드니 그때 그분들도 참 좋은 인성을 가진 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분들이 귀찮게 여겼던 청년지도의 업무를 당시 평동교회 장기천 목사님에게 부탁하였다. 장 목사님은 겉으로는 우리를 많이 나무라셨지만 속으론 너무 과분하게 사랑해 주셨다. 특별히 당시에는 어려운 일간신문 크기로 매월 ‘감청회보’를 발행하자,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본인이 서른 초반에 교단지 ‘기독교세계’의 편집자로 고생하신 경험이 나와 일치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평신도로서의 길을 가면서 기독청년운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 대다수 감청 멤버들은 목회자의 길을 갔다. 그즈음에 ’신앙과지성사‘란 이름을 낙점해 주시면서 장 감독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천아, 문서선교 중요한데 너는 그쪽에 재주가 있으니 그 일을 하면서 평신도 지도자로 가거라!”

말씀뿐만 아니라 장 감독님은 음으로 양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실 밀알기획·신앙과지성사가 오늘까지 내려오는 데는 초창기 장 감독님의 관심과 사랑이 큰 힘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앙과지성사의 이름으로 두 번째로 1989년 5월 15일 출판된 이 책을 소개하는 지금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한 예언자요, 특별히 청년을 사랑했던 사랑의 사도인 장기천 감독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울러 오늘의 현실과 상황은 장 감독님과 같은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계획을 세워 이 책을 재출간하는 작업을 모색해 보아야겠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브루더호프 이야기>, 박성훈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치병은 무엇일까? 그것은 탐욕사회의 근원이 된 교육열병이다. 모두가 내 자식만은 편하고 대우받고 부유하게 살게 하고 싶어서 야단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 스펙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동시대를 위해서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어디에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을 써서라도 두드러지는 인재로 만들려고 난리다. 그러니 참 부끄럽지 않은가?

이 나라 총리를 장관을 하려는 사람들이 다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해괴망측한 일들을 나열하기도 싫고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 볼모가 되어 눈이 시뻘건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요청하고 싶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뭐 그리 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참 치욕적인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큰 자리를 얻어보려는 사람들이 꼭 가보아야 할 현장이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되어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공동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 오늘 아침 불끈 솟았다.

2.
기독교가 오늘처럼 수난을 당한 때도 또 있었을까? 참 교회와 교인들이 매력이 없어 보인다. 웅장한 외형의 교회도 많고, 떵떵거리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왜 작금의 시간 속에서 교회는 이 시대의 주변부에서만 맴돌고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매력이 없기 때문이고, 예수의 향기가 풍기지 않기 때문이리라.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가라는 예수님은 어찌 보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이상한 예수님을 사람들은 그리워하고 따르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모형을 실험하면서 더 이상한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는 현장, 브루더호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똑똑한 질서에 편승하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책이다.

지은이 박성훈 선생은 2007년부터 뉴욕 허드슨 강가 단풍나무 숲이 우거진 멋진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이 책은 그의 공동체 삶의 이야기이다. 세상 판단의 기준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 병들고 약한 사람들이 더 대우를 받고 더 사랑받는 곳이기에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참 이상한 나라고, 그 이상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역설적인 책 제목이 참 좋다.

저자 박성훈은 말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함께 사랑하며 사는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라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화 같은 동네 이야기인 이 책은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잘 인도해 줄 것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컬러 사진들이 대거 수록되어, 잃어버린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기행을 손색없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3.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의 신학자 에버하르트 아놀드에 의해 설립되었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3개 공동체에서 2,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영월 인근에서 다섯 가정이 올해 막 공동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꽤 오래 공동생활에 참여하였던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는 브루더호프의 삶은 매일매일 축제 같지만, 축제의 목가적 삶만으로는 ‘이상한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 늘 함께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즐기는 공동체적 삶에 있다.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한 약자를 가장 우선으로 정성껏 돌보고, 어린이의 마음을 ‘하나님 생각’으로 여기며 재난·분쟁 지역에 형제들을 파견하여 세상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과 끈을 이어 기도하고 돕는 것에서 그 이상한 나라가 꿈꾸는 삶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곳을 다녀온 김난예 교수는 “이 책은 경쟁과 자본주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존중과 돌봄과 환대의 기쁨과 함께 하는 삶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자녀 교육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이 책은 허드슨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예쁜 컬러 사진으로 흠뻑 담겨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져 있는 참 좋은 인생의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기에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신앙공동체라는 곳을 처음 가본지. 당시 감리교연수원장이던 김준영 목사님이 나에게 강권하셨다.

젊은이들은 꼭 가 보아야 한다고, 영국 스코틀랜드 최북단 복음이 처음 상륙한 아이오나 섬의 공동체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계 청년들이 가장 즐겨 찾는 떼제 공동체와 스위스의 에큐메니컬 선교의 심장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갈 것이니 여행 준비를 하랍신다. (경비도 쪼금 깎아 준다고 하시면서.)

얼마전 서랍을 열고 묵은 안경들을 가로저으니 거기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 바로 위 여행길에서 찍었던 사진으로 이미 70% 정도가 고인이 되셨다. 김준영 목사님은 물론 늘 청년을 염려하셨던 황규록 목사님, 가는 곳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좌중을 웃겼던 신동일 목사님 등등, 어느덧 이분들이 다 떠나가셨지만, 유럽의 공동체들은 아직도 그 모습을 면면히 유지하고 있겠지.

영국 아이오나 섬은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이란 유명한 곡이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서 그곳은 꼭 가 봐야 한다기에 심상치 않은 영국 뱃사람들에게 나는 짧은 영어로 파도가 심한데 배가 떠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노 프로블럼”이란다. 16명 일행이 모두 탔다. 5분쯤 지나자 배는 위아래로 솟구치고 한 사람씩 배의 난간을 잡기 시작하더니 웩! 웩!을 공통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한 20분쯤 지나 아이오나 앞바다의 핑갈의 동굴에 왔다고 하는데 코쟁이들만 휘파람 불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뱃머리를 부여잡고 남은 것들을 토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우스꽝스럽게 떠올랐다.

영국 뱃사람들을 신뢰했기에 파도 가운데서도 그 배를 탔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설겆이에 청소에 기타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아이오나 공동체’에서의 일주일은 신뢰를 확인하고 신뢰를 소중히 여기며 지냈다. 크고 작은 고정관념들은 신뢰를 근거로 사라졌다. 공동체 아침 기도회 때 그 먼나라에서 우리의 복음성가인 “하늘 나는 새를 보라”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프로그램 중 시종 근엄했던 리더가 뱃고동 치는 카페에서 다소곳이 호프를 한 잔 하시고 있지 않은가? 30년 전 당시로선 깜짝 놀랄 일이었다. 에그그, 재미있는 일은 더 많은데 이야기가 곁길로 가니, 예서 얼른 『세이비어교회 이야기』로 달아나야겠다.

 

2.

역시 ‘신뢰’였다. 세이비어교회가 미국의 작은 공동체로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세이비어교회를 한국에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그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유성준 교수다. 유 교수는 1994년부터 세이비어교회의 ‘서번트리더십학교’에서 10년간 훈련과정을 이수하고 목회에 적용하였다. 세이비어교회의 핵심목회 철학인 서번트 목회를 2015년에 그가 설립한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미래 목회의 꼼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유성준 교수의 신앙과 목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워싱턴의 세이비어교회는 1947년 고든 코스비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교회는 철저한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한 150여 명의 교인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45가지의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모범적인 제자공동체의 모델이다.

세이비어교회의 목회 철학은 영적인 삶을 통하여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긴다. 예수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용기와 희생적 삶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이러한 정신이 원동력이 되어 최초의 카페교회인 ‘토기장이집’이 생겼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사역, 취업 사역, 치유 및 재활사역, 가정 사역 등 7개 분야에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 사역을 진행하며 연간 2천만 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는 모든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행함’ 이전에 ‘존재’를 중시하여 무엇보다 관상적인 삶을 강조하는 공동체다. 유명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이 교회에서 사역하며 은혜를 받아 주옥같은 간증으로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었고, 설립자 고든 코스비 목사는 돌아가셨으나 세이비어 사람들에게 영원한 신앙의 멘토로 오늘도 살아 역사하고 있는 신뢰의 산증인이다. 세이비어교회 역시 이처럼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고든 코스비가 보여주었던 신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거라나? 소위 우리나라 대선 후보라던 안모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새벽에 윤모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우리 시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일까? 신뢰가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아니면 말고고, 치밀한 계획 속에 실언해도 그냥저냥 넘어간다. 먹고사는 것은 어지간히 되었다지만 한국 사회 최대의 비극은 신뢰의 상실이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만 잘살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도 어엿한 지도자로 등장하고 대권도 잡는다. 이런 풍조 속에 존속하는 모든 집단도, 교회도, 말해 무상하리요다. 세이비어교회를 남기며 이런 말을 신뢰있게 던졌던 고든 코스비 목사님이 하늘에서 한국 땅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사랑과 책임있는 공동체에 중점을 둔, 작지만 고도로 헌신하고 훈련된 사람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고든 코스비

 

4.

은퇴했으나 유성준 박사는 은퇴 이후가 더 바쁜 사람이다. 지금도 부인(이예주 사모, 이후정 총장 누나)을 공짜로 사용하며 인터뷰도 시키고 손님맞이 답사도 시킨다. 재주가 참 좋다. 내 주변에 가장 샘나는 잉꼬부부가 70의 나이에도 앵무새처럼 활동하고 있다. 내일모레(4월 15일)면 또 미국을 간단다. 다녀온 지 석 달도 안 되었는데 또 간단다. 무엇 때문에? 공동체를 탐방하고 헤비타트 운동의 기수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서번트리더십에 대한 대담도 한단다. 그 열정에 기가 질린다. 처음 10만 부 팔렸다는 세이비어교회 책을 나한테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땐 나랑 친하지 않아서 안 주었단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이 혐오의 물건으로 취급되는 시기에 이제 와서 왜 나를 찾아와 이 책을 내달라고 했을까?

한가하면 살 맛을 잃는 유성준 박사 부부에게 그 정열에 찬사를 보낸다. 미래교회 꼼꼼한 대안이란 부제를 내가 부친 죄(?)로 나는 계속 유박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왜 눈떠야 할까

왜 눈떠야 할까

– 신앙을 축제로 이끄는 열여섯 마당
김신일·민영진·이만열 외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5.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세계의 문제들에 복음과 성서의 정신을 근거로 고민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의 단계를 넘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지금보다도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신앙과지성사의 “왜 눈떠야 할까”라는 기획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시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해야 하는 단계에 이미 도달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교회의 변화와 요구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1부의 각 주제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보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현대 세계의 실제적인 이슈들로 편성했다. 환경(장윤재), 사회(백소영), 교육(김신일), 여성(유성희), 복지(홍주민), 국제관계(박구병), 건축(정시춘), 음악(박종원), 미술(임재훈) 등의 주제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꼭 생각해 봐야 할 주요 내용들이지만 그동안 교회 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한 주제들이다. 2부의 각 주제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꼭 숙고해 봐야 할 주요 내용들로 편성했다. 영성(김기석), 성서(민영진), 역사(이만열), 신학(이신건), 인문학(홍인식), 종교(이정배), 삶과 죽음(김옥라) 등의 주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에 어려움을 느껴온 내용들이다. 이외에도 그리스도인이 생각해 봐야 할 여러 주제들이 있겠지만, 이상의 16개 주제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옥고로 첫 결실을 맺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작업이다.

이 책은 비록 다양한 주제와 문체의 글로 편집되었음에도 하나의 일치된 관점과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진리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적극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리스도교 신앙은 더욱 풍성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인적인 독서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청년부나 평신도 독서모임 등에서 함께 읽고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신앙공동체의 성숙과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 김연호 지음, 밀알라이프(신앙과지성사), 2021)

 


소신껏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특히 산업사회 이후 교회가 제도와 틀을 갖추고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 시작하면서 목회자로서 목사답게 소신껏 살아가는 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 반갑지 않은 역기능이다.

나의 청년 시절만 해도(1970-80년까지) 교회 게시판에는 ‘성미표’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었다. 이름 위에 도장들이 꾹 찍혀 있었다. 연말이 되어 이름 위에 도장이 길게 찍힌 것은 쌀을 사 먹을 형편이 양호한 교우 가정이고, 시작이나 중간쯤에 도장이 끝난 것은 형편이 어려워 쌀 사 먹기가 궁색한 가정들이었다. 형편은 어찌 되었든 교인들은 구입한 쌀에서 제일 먼저 첫 공기를 수북이 떠서 교회에 바쳤고, 바쳐진 그 쌀들이 목회자들의 ‘빵’이 되었다. 고2 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된 나는 여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시간의 신비만큼이나 교회의 성미표를 유심히 살피곤 했던 기억이 있다.

새삼스럽게 지금 옛 생각을 하다 보니 길었던 짧았던 꾹꾹 눌려진 인주밥의 성미표는 눈물 젖은 교우들의 빵이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첫 공기를 정성껏 봉지에 담으며 “우리 식구들 모두 이걸(빵을)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목사님도 이 빵을 드시면서 우리를 잘 이끌게 해 주세요.”하고 빌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김연호 목사님 이야기를 나누며 산과 강을 바라보며 인생과 믿음을 생각했다. 그분의 아들인 김성호 목사님을 만나러 이광섭 목사와 함께 춘천행 기차에서다. 주님의 은혜로 빵 걱정을 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이광섭 목사가 기차 안에서 들려주었던 고 김연호 목사님의 ‘눈물 젖은 빵’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으로 무척 소신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날의 춘천행 기차는 유난히 더 덜컹거렸다. 이광섭 목사가 전해준 김연호 목사님의 이야기가 춘천행 청춘열차를 그날따라 더 덜컹거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형, 김 목사님이 인천 계산교회 담임할 때 6.25가 터졌고, 인천 어느 부둣가에 큰 배가 제주도로 목회자들을 태우고 가려고 기다리는데, 김 목사님은 교인 200명을 이끌고 그리로 갔데요. 난리가 났다지, 이 배는 목회자 외에는 탈 수가 없다!! 김 목사님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았고, 아니, 목사들만 사람이냐 싸우면서 모두 다 배에 교인들을 올라타게 했데요. 할 수 없이 선장은 제주 애월까지 갔고, 김 목사님은 황무지 제주 땅을 교인들과 협동농장을 하면서 함께 살았데요. 아침 일찍 나오고 밤늦게 들어 갔는데 글쎄 어느 하루는 쥐를 잡기 위해 쥐약탄 밥을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김 목사님 큰아들이 집을 지키다가 글쎄 그 밥을 먹고 … ” 차라리 안 들었던 게 나았던 이야기를 광섭 목사는 먼 여행길에서 왜 내게 그 말을 전했는지, 그러나 듣고 보니 김연호 목사님의 책 이름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라는 다소 신파조의 책 이름이 새롭게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1920년생인 김 목사님은 평양 요한신학교에 다니면서 20대 초반부터 빈민굴에 가서 아이들과 침식을 같이하며 공부를 가르쳤다. 대동강가를 함께 뛰며 게으르고 무기력한 정신을 개혁하려고 매일 밤 12시에 자고 4시에 기침하여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단다. 그 집단이 자연스럽게 신망애교회가 되었고 김 목사님은 거지 대장 전도사로 우뚝 섰단다.

이 책은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 사연들이 가득하여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다.

‘눈물 젖은 빵?’ 의미부여에 도사 격인 이덕주 교수는 추천사에서 풍요와 쾌락의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 세대가 그 의미를 알까? 먹방이 대세인 요즘 ‘눈물 젖은 빵’이라 하면 빵을 맛있게 먹는 새로운 레시피쯤으로 생각할 것 같단다. 이 교수는 ‘눈물 젖은 빵’은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해방의 감격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분단으로 인한 전쟁과 폐허, 빈곤과 독재 시대를 살면서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일궈낸 분들의 삶과 교훈이 농축된 표현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왜 겸허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말해 주는 책을 내 손으로 펴낼 수 있음이 감사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서너 시간이면 한 권을 다 읽는 책을 독자들이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겠다.

 


처음 이 책 이야기를 ‘소신’으로 시작한데는 그 이유가 있다. 저자 김연호 목사님이 소신껏 사신 목회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빈민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으로, 6.25 때는 신도들과 함께 사는 협동농장으로, 춘천을 중심으로 한 성시화 운동으로, 김구 선생님과의 만남과 김대중 선생님 구명운동까지, 남들이 피해 가는 길만을 찾아가며 불의와 맞서 싸운 용기와 신념이 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참으로 궁금한 분이다. 그리고 교단의 평화를 위해 상처가 있는 교회마다 찾아 나선 화해자의 역할도 소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감동적인 여러 일들을 해내셨다. 교회 안에서는 성령의 사람, 교회 밖에서는 화평의 사도, 그런 소신 있는 목회자를 보유한 감리교단인데 어쩌자고….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

 

<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 조건상 저, 신앙과지성사, 2022

1.

한국교회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강단에서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설교라고 하기에도 송구스러운데 대부분 교회들은 ‘말씀 선포’라고 순서에 규정하고 있다. 말씀 선포라니? 차라리 설교라고 놔두는 게 좋을법하다. 대다수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기보다는 듣기 좋은 말로 신도들의 비위(?)나 맞추기 일쑤다. 그래서 J 목사처럼 반은 코미디와 흡사하게 신도들을 웃겨야 사람들이 몰리고 행복해한다. 강도 만난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아프게 소리쳐도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면 곧 이상한 사람이나 좌파로 몰린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은 그들의 눈높이 적절한 선에서 예수를 전하고 빛과 소금의 삶을 중화시켜 전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주변인의 범주에서 머문 지 오래되었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중추 세력으로서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강단에서 정의와 평화의 길을 외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더욱 슬픈 일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란 분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이스라엘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광화문으로 향해가면서 목청을 높인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슬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2.

역사의식의 부재가 한국교회의 강단을 흐물흐물하게 한 지금, 나이 70이 훨씬 넘고, 이미 은퇴하신 목사님의 올곧은 소리가 담긴 책을 출판하게 되어 기쁘다. <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을 평생 부여잡고 살아온 조건상 목사님의 칼럼집이다. 제목이 다소 아이러니해서 나는 저자인 조 목사님께 제목을 보편성 있게 “욕망·예수·분노”로 하자고 말씀드렸으나 그것은 나의 짧은 견해였다.

고대 희랍 플라톤 시대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삶을 충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강한 힘이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힘을 메타포로 말하면, 마치 전사가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며 전차를 끌고 달리는 두 필 말의 힘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필 중 말 하나는 ‘육체적 욕망’이고 다른 말 하나는 ‘숭고한 분노’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 그림을 저자는 마치 영화 <벤허>를 상상케 하는 그림으로 보내왔다.

저자 조건상 목사님은 이 책의 제목을 앞세워 책에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한다. “믿음이란 신을 신뢰하는 마음의 정적인 상태이기보다, 삶의 거룩한 목표를 향한 선한 싸움의 용기와 정신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싸움은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싸우는 싸움이 아닌, 죄와 악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욕망과의 전쟁이다. 결국 믿음은 천국을 선취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미국에서 여러 교회를 목회했다. 코리안-아메리칸, 이민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주제로 다루는 칼럼을 쓰다 보니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 이 책에서 흐르는 정신은 믿음, 즉 숭고한 분노이다. 처음부터 이런 논리를 전개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의 정황에서 그때그때 마다 쓴 글인데 결코 교회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껏 목회한 목회자의 역사적 안목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신앙과지성사의 책마다 단골로 추천사를 쓰시는 정희수 감독님은 이 책을 “나그네가 펼친 평화의 해석학”이라고 규정했다. 정 감독님은 추천사의 서두를 이렇게 썼다. 평생 말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변방의 목회자인 저자 조건상 목사님과 이 책의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목양의 길목에서 심장을 갖고 산다는 것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 보인다. 현대를 살면서 자꾸 주변으로 밀리는 목양 지평이 우선적 이유이고, 복합적인 세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올곧은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자유를 누리고 살고자 하는 것을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꾸 뒤틀어 놓고 허물기 때문이다.”

3.

나는 조건상 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의 출판 사역을 늘 격려해 주시는 미국의 윤길상 목사님의 주선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내고 보니 연로하신 목사님이신데 아직도 정의와 분노의 시각이 살아 계신 것에 놀랍고도 기뻤다. 이 책 원고의 대부분이 인문학적인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고 풍부한 독서량에서 기인 된 것이라 볼 때 출판인으로서 마냥 게으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멀리 미국에 살면서 저자는 몇 년 전 펼쳐진 ‘촛불정신’을 미안한 마음으로 칭송하면서 촛불의 힘과 민중들의 힘, 그리고 정의를 향한 불타는 숭고한 분노를 발견하고 이 책에 수록된 중심 원고들을 칼럼으로 썼다. 정의를 물타기 하며 설교하는 시대, 숭고한 예수님의 분노를 현실과 접목시키지 못하는 슬픈 교회 공동체를 목격하는 지금, 감리교회의 노 목사로서 우리를 향해 촛불정신을 외치는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아직도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임연철 지음, 신앙과지성사 펴냄, 2021)

시방 한국에서 기독교(교회)가 처참하게 지탄받는 이유는 초창기에 너무 잘했기 때문이 아닐까?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니 등등 평가절하하는 소리들도 많았지만, 외국인의 신분으로 미천한 이 땅에 와서 그들만큼 살고 일했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게 중에는 눈살을 찌푸릴 일을 하고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있지만 이름만 쭉 적어도 한 열 페이지는 될성싶은 분들이 정말 헌신적인 삶을 사시다 순교하거나 불행한 시간과 싸우며 살아갔다.

제 나라에 있었으면 폼나게 사실 분들이 많았다. 희생적 삶을 사시면서 전했던 그들의 복음이 탄력을 받아 이 땅 위에서 많은 사건과 결과물들을 세워나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교와 병원과 교회이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대충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반하트는 좀 색다르다. 100년 전 스포츠맨십의 전도사로 성경보다 더 귀중히 축구공, 배구공, 야구공, 농구공을 큰 가방에 넣어 와서 이 스포츠 놀이를 처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체육선생이기 때문이다.

이 책 <YMCA 통해 100년전 농구 축구 배구를 전한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는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 축구 야구 배구 농구를 처음 소개한 YMCA 체육교사 ‘반하트’의 100년 체육사의 발자취이자 희망과 절망의 역동적 삶의 기록이다.

‘반하트’는 한국 체육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한국 이름 ‘반하두’나 본명인 ‘반하트’가 낯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매번 수십 개의 메달을 따고 프로 구단이 있을 만큼 활성화된 축구 야구 농구 배구는 물론, 육상과 학교 체육 등 21세기 한국 체육이 오늘의 위상을 갖게 된 데는, 100년 전 전문 체육지도자로 등장한 반하트의 역할이 매우 컸다.

1916년 3월 내한해 1940년 11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YMCA를 통해 한국을 위해 봉사한 B. P. 반하트의 삶은 일제강점기 고통 속에 신음하던 한민족과 궤를 같이하는 굴곡 많은 삶이었다.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식민지 백성에게 체육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넣어 주려했고 교육과 농민운동을 통해 청소년과 농촌에도 삶의 활기를 넣어주려고 진력을 다한 봉사의 삶이었다.

53년의 생애 중 20대 후반부터 30대와 40대 삶의 전성기 24년을 한국에서 일한 반하트는 1940년 미국 일본 관계가 악화되며 철수령에 따라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한 그는 언제든 여건만 되면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미국인 동료들에게 말할 만큼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한국의 산과 바다, 그가 교육했던 젊은이를 비롯해 동료와 기독교인 등 한국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던 반하트는 당시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그의 삶 끝까지 한국과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남긴 흔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YMCA와 체육계를 비롯한 현대 한국 사회 곳곳에 그 결과로 남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를 거두어 주고 살며 공부시킨 ‘사애리시 선교사’의 전기를 내고 그것을 토대로 국민훈장까지 추서 받게 했던 임연철 박사(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국립극장장)가 사애리시의 이야기를 정리하다 발견한 것이 유관순 시신을 지키고 장례를 치러준 지네트 월터(이화교장) 선교사 이야기다, 또 지네트 월터를 집필하다 발견한 것이 ‘반하트’체육선교사 이야기다. 재미있다. 꼭 일독을 부탁한다.

세 번째로 이어지는 임 박사의 한국기독교 역사 속의 인물 열전인데, 70이 훨씬 넘은 연세에 반하트를 끝내고 나서 또 시작한단다. 공주에서 헌신했던 ‘마랜보딩’간호선교사 이야기를 또 쓴단다. 하여 내년 초 마랜보딩의 고향 덴마크 생가를 가신단다. 열정이 대단한 필자이신 것까지는 좋은데 걱정이다. 아직 소개할 몇 명 더 남았단다. 신문기자 출신의 역사학도라 그런가? 그의 행보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 조지 오글 추모 1주년, 신앙과지성사, 2021

한국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서일까? 오명걸 목사님이 소천하시자 여러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쓴 이 책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란 책을 구했으면 한다고. 목사님의 건강이 쇠약해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한 권밖에 없는 이 책을 여러 번 만지작거렸는데 추모 1주기를 맞고서야 이 책을 다시 펴낸다. 도로시 사모님의 편지에서 보듯이 오글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하시며 그때마다 매우 흡족해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쓴 책 중에 가장 사랑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말씀하셨다니 더욱 발행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2003년 5월이니 벌써 참 오래전 일이다. 당시 애틀랜타 한인교회를 맡아 젊은 목회를 시작한 ‘믿음의 벗’ 김정호 목사님이 전화를 했다. 6월 말경 미국에서 통일 집회를 하는데, 그때 오글 목사님의 은퇴 기념으로 출판 축하예배를 가질 것이니 급히 책을 만들어 들고 오라는 것이다. 아뿔싸, 시간도 없는 데다 거기에다 오글 목사님의 수제자(?) 조화순 목사님을 모시고 오라고 부연했다. 큰 고민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 많은 책 1,000부를 어떻게 가지고 갈까? 궁리 끝에 기독학생회 총무를 지내신 정상복 목사님과 조 목사님과 나, 세 사람이 애틀랜타 코이노니아 팜으로 떠났다. 그렇게 급하게 탄생한 책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오글 목사님은 이 책을 굉장히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 모임 첫날 밤, 참가자 모두에게 이 책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의 희망찬 밤이 되도록 만들었다.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오글 목사님은 소천하시면서 이 책을 한국 땅에 통일의 씨앗으로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지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책의 틀을 고민하고 몰두하는 시간에 만나게 된 이철 감독회장님께 추모를 겸한 재출간을 말씀드렸더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늘 카톡으로 나의 출판 사역을 염려해준 연합감리교회 정희수 감독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추모사를 쓰시고 여러 일들을 해주셨다. 발 빠른 송병구 목사님에게 오글 목사님이 걸어온 길을 화보 형식으로 엮어 달라고 했더니 너무 정성껏 작성해 왔다. 그리고 인천산선의 총무 김도진 목사님이 추천한 최영희 의원님과도 많은 묵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옥고가 탄생했다. 최 의원님은 오글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던 인천산선의 실무자 출신이라서 그 원고가 더욱 뜻깊다. 자연스럽게 오글 목사님과 관련이 있는 네 단체가 공동기획으로 참여한 모양이 갖춰져서 제1부 추모의 장을 뜻깊게 장식한다.

특별히 목사님의 빈자리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편지를 써 주신 도로시 사모님께 머리를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여러 번 오간 편지에서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해준 케티 오글에게도 감사드린다. 건강이 매우 안 좋으신데도 간행사를 협력해 주신 조화순 목사님도 잊을 수 없다. 오글 목사님을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분이라고 믿고 사셨는데. 허전한 마음 잘 가누시며 건강하게 지내시길 빌 뿐이다.

한국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다룬 오글 목사님의 글을 제2부로 오롯이 실으면서 다소 아쉬운 표현과 사건 기술 등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었으나 그냥 두었다. 오글 목사님의 체취를 올곧게 담기 위한 것이고, 또 미국인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쓸 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다만 부제를 달아서 무슨 사건을 쓰려고 했는지 좀 더 명확한 소통이 되도록 연결 작업을 하였다.

한국 사람들도 쓰기 어려운 글을 역사적 안목과 여러 사건의 특성과 시대 정신을 종합하여 소설 형식으로 생동감 있게 글을 쓰신 목사님의 노력이 정말로 감탄스럽다. 특히 선교사들이 취했던 애매한 정치적 입장과 현실 도피적인 태도 때문에 선교사를 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지만, 목사님이 보여주신 예언자적인 용기는 한국 사회를 깨우쳤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음은 부정할 길이 없다.

역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길로만 순항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선각자가 되신 오글 목사님을 추모하는 책을 펴낼 수 있음이 영광이다. 오글 목사님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 민중들의 싸움이 한국을 넘어 세계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고귀한 역사를 어느 특정 개개인이 존중받고 기억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깊은 신앙으로 분연히 일어섰던 민중들과 공동체가 영원히 존중받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우리에게 미래를 향한 어떤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느라 오글 목사님이 진지하게 던지신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런 채로 목사님을 멀리 떠나시게 한 것이 너무나 아쉽고 죄스럽다.

책의 마무리 편집 점검을 하면서 우연히 기독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안재웅 이사장님과 카톡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 목사님께 “오늘 목사님 책을 마치는 중인데 왜 이리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오글 목사님뿐만 아니라 원고를 주신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 책이 많은 분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보듬어 주기도 하면서 오래도록 목사님을 기억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위해 애써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책을 위해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신 정진우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돌아가시기 직전,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때 한국 민주주의 발전공로로 국민훈장을 수여 받으신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정희수 감독님을 통해 2021년 7월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콜로라도에서 오글 목사님의 묘비를 세우고 묘소를 정비했다는 소식과 사진을 책에 담을 수 있어 더욱 고맙다. 돌이켜보니 오글 목사님을 한국에서 강제 추방시킨 것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엘 까미난떼>, 홍인식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1

I.

사람마다 사연이 많은 법이다. 더구나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네들에게는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겨운 사연들을 지니고 산다. 내가 홍인식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인 것 같다. 예장의 이근복 목사를 통해서 가까운 후배인데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하고 미구에즈 보니노란 유명한 분에게서 학위를 받고 목회했는데 원고를 썼으니 검토해 보란 전화였다. 호기심이 댕겼다. 당장 검토할 필요 없으니 만나서 식사나 합시다 하고 원고도 보지 않은 채 출판을 승인해 버렸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다. 모두가 한물간 해방신학 책을 왜 또 내느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런 저평가를 받았던 그 책이 2017년 문체부가 선정하는 우수교양도서로 뽑히고, 경부선 KTX 승객용으로도 진열되는 효자 노릇을 했으니! 홍인식 박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는 곳마다 책 권하는 ‘권서인’이 되어 3쇄 4천부를 팔며 가난한 출판사를 도와주고서 호남의 장로교 1번지인 순천중앙교회 담임으로 갔다.

II.
순천을 몇 차례 드나들며 제안을 했다. “홍 박사님, 여러 차례 들은 개인사가 정말 구성진데 우리 신앙과지성사의 나와 예수 시리즈에다 살아온 이야기를 좀 써 주세요.” “아니, 장로님은 왜 자꾸만 내 삶을 벌거벗기려고만 하세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홍 목사님의 신앙고백적 삶은 정말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이에요. 그러니 쓰세요.” 그런 강력한 요청을 홍 박사는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A4 400장의 보따리를 내게 내밀었다. 말년에 안정된 중견교회의 담임자가 되어 4~5년 목회하면서 홍 박사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 것인데,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나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서 짐을 풀자마자 그 원고 보따리를 내게 가져온 것이다. “최 장로님, 여기 있어요! 최 장로님이 그토록 쓰라고 졸라댔던 내 삶의 이야기, 장로님이 죽이 되던지, 밥이 되든지 알아서 하세요. 저는 며칠간 발길 가는 대로 떠돌면서 그분께 또 다른 바람을 불게 해달라고 걷는 기도를 하렵니다!”

III.
홍 목사님께 미안했다. 원고를 읽어 가면서 점점 더 미안했다. 곱상하게 양반집 아들처럼 생긴 분이 부모에게 버려져 떠돌이가 되었는데, 그분께서는 결국 목회자로 만드시고 상처받고 찢기게 하셔서 위로의 선한 종이 되게 하셨다. 원고를 거의 반으로 줄이고 편집을 끝냈다. 마지막 실리지 못하는 원고를 아쉬워하는 홍 박사에게 나는 더 무식한 부탁을 했다. “홍 박사님, 이왕 책을 내시는 것인데 좀 더 까발려 주세요. 서문이 너무 점잖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홍 박사님은 “장로님, 저 스타벅스에 갔다 올게요.” 하더니 저자 서문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시발택시에 실려 엄마와 멀어져 가면서 ‘헨젤과 그레텔’을 생각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의해 숲속에 버림받은 줄 알게 된 아이들이 숲으로 가면서 조약돌을 떨어뜨려 돌아올 길을 만들어 놓았던, 달빛에 반짝이는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무엇을 떨어뜨려야 엄마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홍 박사의 영원한 자유인의 삶이 시작된다. 4~5년 간격으로 남미를 순례하는 방황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 영화 같은 삶이다. 읽어보기 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팔 걷어붙이고 써주신 한완상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떠돌이 길에서 예수를 만났기에 오늘의 홍인식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예수님다운 대안적 목회를 꿈꾸며 실천하려고 했던 것은 생명과 진리에 이르는 길 자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IV.
며칠 전 (2021. 10. 6) 공덕감리교회에서 한겨레신문과 조현 TV가 장장 5시간에 걸쳐 이 책을 중심으로 홍 박사의 삶과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 인터뷰했다. 5시간이면 비행기로 라오스쯤 갈 텐데, 조현과 홍인식 이 두 사람은 우리 시대의 이빨이 튼튼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장장 5시간 (내가 그나마 여러 차례 눈치를 주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있었으면 족히 10시간은 떠들었을 것이다) 이야기 마라톤을 끝내고 조현 기자는 말했다. “와, 오늘을 사는 한국 기독교인의 삶의 지침서와 신앙인의 길이 여기 다 나왔네”라고. 우리는 밤 9시 가까이 소머리 곰탕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조현 기자 부부와 홍 박사와 나, 넷이서. 그 자리에서 조 기자는 나보다 한 술 더 떴다. 홍 박사의 슬픈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빼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아버지는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냐고 물었다. 홍 박사는 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내 나이쯤 되셨을 거예요. 65세.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 죄를 대속해 주려고 네가 목사가 되었구나!” 내가 만든 책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슬프고 리얼한 책이 바로 이 책, 홍인식의 <엘 까미난떼>다. 스페인어로 걷는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의 떠돌이 삶은 과연 하늘의 뜻이었나?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