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신앙공동체라는 곳을 처음 가본지. 당시 감리교연수원장이던 김준영 목사님이 나에게 강권하셨다.

젊은이들은 꼭 가 보아야 한다고, 영국 스코틀랜드 최북단 복음이 처음 상륙한 아이오나 섬의 공동체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계 청년들이 가장 즐겨 찾는 떼제 공동체와 스위스의 에큐메니컬 선교의 심장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갈 것이니 여행 준비를 하랍신다. (경비도 쪼금 깎아 준다고 하시면서.)

얼마전 서랍을 열고 묵은 안경들을 가로저으니 거기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 바로 위 여행길에서 찍었던 사진으로 이미 70% 정도가 고인이 되셨다. 김준영 목사님은 물론 늘 청년을 염려하셨던 황규록 목사님, 가는 곳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좌중을 웃겼던 신동일 목사님 등등, 어느덧 이분들이 다 떠나가셨지만, 유럽의 공동체들은 아직도 그 모습을 면면히 유지하고 있겠지.

영국 아이오나 섬은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이란 유명한 곡이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서 그곳은 꼭 가 봐야 한다기에 심상치 않은 영국 뱃사람들에게 나는 짧은 영어로 파도가 심한데 배가 떠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노 프로블럼”이란다. 16명 일행이 모두 탔다. 5분쯤 지나자 배는 위아래로 솟구치고 한 사람씩 배의 난간을 잡기 시작하더니 웩! 웩!을 공통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한 20분쯤 지나 아이오나 앞바다의 핑갈의 동굴에 왔다고 하는데 코쟁이들만 휘파람 불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뱃머리를 부여잡고 남은 것들을 토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우스꽝스럽게 떠올랐다.

영국 뱃사람들을 신뢰했기에 파도 가운데서도 그 배를 탔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설겆이에 청소에 기타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아이오나 공동체’에서의 일주일은 신뢰를 확인하고 신뢰를 소중히 여기며 지냈다. 크고 작은 고정관념들은 신뢰를 근거로 사라졌다. 공동체 아침 기도회 때 그 먼나라에서 우리의 복음성가인 “하늘 나는 새를 보라”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프로그램 중 시종 근엄했던 리더가 뱃고동 치는 카페에서 다소곳이 호프를 한 잔 하시고 있지 않은가? 30년 전 당시로선 깜짝 놀랄 일이었다. 에그그, 재미있는 일은 더 많은데 이야기가 곁길로 가니, 예서 얼른 『세이비어교회 이야기』로 달아나야겠다.

 

2.

역시 ‘신뢰’였다. 세이비어교회가 미국의 작은 공동체로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세이비어교회를 한국에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그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유성준 교수다. 유 교수는 1994년부터 세이비어교회의 ‘서번트리더십학교’에서 10년간 훈련과정을 이수하고 목회에 적용하였다. 세이비어교회의 핵심목회 철학인 서번트 목회를 2015년에 그가 설립한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미래 목회의 꼼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유성준 교수의 신앙과 목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워싱턴의 세이비어교회는 1947년 고든 코스비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교회는 철저한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한 150여 명의 교인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45가지의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모범적인 제자공동체의 모델이다.

세이비어교회의 목회 철학은 영적인 삶을 통하여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긴다. 예수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용기와 희생적 삶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이러한 정신이 원동력이 되어 최초의 카페교회인 ‘토기장이집’이 생겼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사역, 취업 사역, 치유 및 재활사역, 가정 사역 등 7개 분야에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 사역을 진행하며 연간 2천만 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는 모든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행함’ 이전에 ‘존재’를 중시하여 무엇보다 관상적인 삶을 강조하는 공동체다. 유명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이 교회에서 사역하며 은혜를 받아 주옥같은 간증으로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었고, 설립자 고든 코스비 목사는 돌아가셨으나 세이비어 사람들에게 영원한 신앙의 멘토로 오늘도 살아 역사하고 있는 신뢰의 산증인이다. 세이비어교회 역시 이처럼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고든 코스비가 보여주었던 신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거라나? 소위 우리나라 대선 후보라던 안모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새벽에 윤모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우리 시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일까? 신뢰가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아니면 말고고, 치밀한 계획 속에 실언해도 그냥저냥 넘어간다. 먹고사는 것은 어지간히 되었다지만 한국 사회 최대의 비극은 신뢰의 상실이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만 잘살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도 어엿한 지도자로 등장하고 대권도 잡는다. 이런 풍조 속에 존속하는 모든 집단도, 교회도, 말해 무상하리요다. 세이비어교회를 남기며 이런 말을 신뢰있게 던졌던 고든 코스비 목사님이 하늘에서 한국 땅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사랑과 책임있는 공동체에 중점을 둔, 작지만 고도로 헌신하고 훈련된 사람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고든 코스비

 

4.

은퇴했으나 유성준 박사는 은퇴 이후가 더 바쁜 사람이다. 지금도 부인(이예주 사모, 이후정 총장 누나)을 공짜로 사용하며 인터뷰도 시키고 손님맞이 답사도 시킨다. 재주가 참 좋다. 내 주변에 가장 샘나는 잉꼬부부가 70의 나이에도 앵무새처럼 활동하고 있다. 내일모레(4월 15일)면 또 미국을 간단다. 다녀온 지 석 달도 안 되었는데 또 간단다. 무엇 때문에? 공동체를 탐방하고 헤비타트 운동의 기수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서번트리더십에 대한 대담도 한단다. 그 열정에 기가 질린다. 처음 10만 부 팔렸다는 세이비어교회 책을 나한테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땐 나랑 친하지 않아서 안 주었단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이 혐오의 물건으로 취급되는 시기에 이제 와서 왜 나를 찾아와 이 책을 내달라고 했을까?

한가하면 살 맛을 잃는 유성준 박사 부부에게 그 정열에 찬사를 보낸다. 미래교회 꼼꼼한 대안이란 부제를 내가 부친 죄(?)로 나는 계속 유박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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