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박순경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4년

1.
벌써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삶이 힘겹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희망을 떠올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흐름을 통틀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시간은 참 묘하고, 빠르고, 느리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속절없이 또 한 해를 보내는 지금 12월에, 아쉽게도 귀한 삶을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한 분, 박순경 선생님이 줄기차게 생각난다. 어른다운 어른이 사뭇 그리운 까닭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꼭 동화 같은 시간의 연속임에도 이젠 좀 제대로 살라고 호통쳐 주실 어른이 꼭 필요한 ‘시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백 세를 살아보니 뭐 이러고저러고 간지러운 얘기하는 어른이 아니라, 백 세가 되었어도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게 사셨던 어른이 정말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기독청년운동을 통해 이나마 세상 결, 역사 결을 짐작하게 된 ‘시간’을 소유한 나에게 박순경 선생님은 멀리서 뵈어도 다가갈 수 없었던 어려운 선생님이셨다. 감청 대회를 통해 몇 번 강연을 들었고 가끔 마주할 때마다 차렷 자세로 인사만 드리기도 어려운 선생님이신데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2014년 초로 기억난다. 역시 차렷 자세로 “선생님이 웬일로 저에게 …” 뭐 그렇게 어려운 대화의 물꼬를 텄던 기억이 난다. “최 장로, 내가 마지막으로 세 권의 책을 내려고 해, 그 첫 권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인데 원고지로 3천 매가 넘는 것인데, 이걸 최 장로가 책으로 내줘야겠어!”

2.
거절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고민도 깊어졌다. 그 어려운 책을 소화시키기도 어렵고, 한 열 달이 지나도록 긴장하고, 또 살펴야 하는 어려운 책이다. 그 제작과정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항상 지시하시는 것에 따라 교정지를 싸 들고 사당동 근처의 피자집으로 갔을 때다. 만원 지하철 퇴근길에 시달리며 땀 흘리며 늦지 않으려고 뛰어갔던 2014년 여름날로 기억된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큼직한 피자를 몇 쪽 먹으려고 군침을 흘리는데, 선생님께서 만류하시는 것이 아닌가! “최 장로, 피자는 건강에 그리 좋지 않아요. 그러니 한쪽만 먹으라우! 그리고 콜라는 나빠 냉수에다 천천히 씹어 먹으라우!” 아쉬워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피자 한 쪽 먹고 선생님의 김 애기를 들었다. 그 이후에는 몇 차례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교정지를 드리곤 했는데 책이 거의 완성되는 꼴이 갖춰지는 때라서 기분이 좋으신지 통 큰 명령을 내리셨다. “최 장로 맥주 한 잔 주라우! 중국요리를 느끼하게 어떻게 그냥 먹겠니?”
이 책이 나오고 산타에게 선물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던 박 선생님은 목표하신 2권, 3권을 더 내시지 못했다. 겨울 눈길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가시다가 그만 낙상하셔서 큰 고생을 하셨다. 이토록 어렵게 보이는 책이 2014년 11월에 간행되고 아마 그달에 가르치셨던 이화여대에서 성대하게 출판기념회를 치른 후였다. 보조기를 끌고 다니시며 댁내에서만 움직이시는 선생님을 송병구 목사와 함께 두어 차례 뵈었다. 그때마다 “최 장로, 나 2권 거의 집필 완료 단계이고, 3권은 내가 김애영이랑 같이 쓸 거야. 그 책까지 최 장로가 다 내줘야 해!” 그렇게 호기 있게 말씀하셨는데 세상에 나온 책은 결국 이 책 하나다. 2권은 선생님 댁 서랍에 고이 놓여 있고, 3권은 딸같은 김애영 교수 의중에 달렸다.

3.
이 책이 나오고 감회 어린 식탁에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살아오신 이야기를 몇 차례 때론 차분하게, 때론 분노 속에서 토로하셨지만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다. 6.25 전쟁이 막 터지기 전에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다니실 때 선생님을 흠모(?)했던 학생이 있었단다. 급히 동숭동 교정에서 만났단다. “나, 학도병으로 가게 됐어. 우리 꼭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자!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그 후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짧은 이야기를 길게 하시며 우울해하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 혹시 6.25가 안 일어났으면 그분과 나중에 결혼하실 …” 조용히  웃으시고 말으셨지만 선생님에게는 참 비정한 역사의 시간이었겠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통일신학에 매진하셨나?
이 책은 박순경 선생님과 나의 사귐의 ‘시간’을 제공해 준 책이다. 책이 나오고 간간이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9년 겨울, 마지막 긴 통화가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제2권의 출간을 꼭 해야 하는데 기력이 없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70이 넘은 나이에 구속되었던 동경에서의 강연을 언급하시면서 긴 시간을 서운해하시기도 하고 분노하시기도 하면서 말씀하신 것이 가끔 생각나면서 나부터 죄송하기 그지없다. “야, 최 장로! 그래, 이 연약한 여자 하나 잡혀가게 하고 된거 뭐 있나! 종로 5가? 에큐메니컬 운동? 야, 다 집어치우라고 하라우! 남정네들이 되어가지고 에라이….”
우리 민족의 만악의 뿌리는 ‘분단’이다. 그런데 이 분단의 문제를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아 ‘통일신학’을 표방하고 연구하신 박 선생님의 공적은 큰 산과 같다. 나는 작은 일이지만 이리저리 애를 써서 감신대 도서관 입구에 박 선생님의 사진을 동판에 담아 액자처럼 걸어두게 하였다.(박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땐 가끔 가서 보시라!) 그리고 감신대의 평화통일연구소(소장 최태관 박사)에서 첫 작업으로 박순경 교수님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을 때 이 책을 100권 기증하여 나누었다.
끝으로 참 어렵고도 무거운 이 책의 이해를 위해 박 선생님의 글을 요약정리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치려 한다. 2022년이 저무는 시간 12월의 새벽에 박순경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쓴다. 제2권, 제3권 계속 출간되어 북녘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와 동포들에게 꼭 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는 지금, 박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4.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지만 미래시간 자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에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없다.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라는 우리의 어려운 주제 설명이 필요하다. 제Ⅰ권 은 구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자·구원자, 하나님 아버지에 해당하며, 제Ⅱ권은 신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와 구원의 중보·화해자 예수 그리스도, 아들 하나님과 시간·역사를 논할 것이다. 제Ⅲ권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통일성을 이루는, 창조와 역사의 구원자 성령 어머니 하나님과 교회·민족·세계의 구원 문제를 논할 것인데, 제Ⅲ권은 나의 제자 한신대 김애영 교수의 몫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제Ⅱ권까지 완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90세를 넘긴 내 나이에 너무도 벅차다. 그러나 감행할 생각이다.
삼위일체론 자체는 제Ⅱ권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공 간과 직결되어 있으나, 편의상 시간·역사 개념으로서 공간을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도 역사는 보다 더 시간 질서가 우선하므로 시간 개념이 더 부각된 것이다. 요점은 도대체 시·공간이 무엇인가? 우리는 시·공을 창조자·구원자 하나님과 피조물 세계와 역사와의 관계질서들(Relationsordnungen) 혹은 신학 전통에서 논의되는 창조질서(Schopfungsordnung)에 해당하는, 그의 의로운 법질서의 근원적 차원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시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제 내적 영원한 관계질서의 차원이며, 그에게서부터 피조물 우주와 역사에 주어지고, 시·공 안에서 피조물과 역사가 생동하고 변화하고 변혁하면서 그의 미래시간에로 진보하게 하는 은혜로운 차원이다. 하나님의 자체 내적 시·공의 관계질서는 영원하나, 피조물과 역사에 주어지는 시공은 한정적이고 유한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있는 계기는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역사적 삶과 존재란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어둠에서 빛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필리핀 감리교회의 시작과 전개>, 디오니시오 D.알레한드로 지음, 이원식 이상훈 옮김, 신앙과지성사

1.
한국에서 보다도 필리핀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사나이 이원식 선교사다. 신학교를 마치고 잠시 다녀오려던 필리핀 여행길이었는데 내 생각엔 아주 필리핀에서 삶을 끝장낼 것 같은바, 이젠 완전히 필리피노가 되었다. 이원식이 나를 친형처럼 대해 주니 그가 하는 선교의 족적을 존중하며 하라면 하라는 대로 쫓아다닌 것이 한 20여 차례 이상을 방문한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할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서울남연회 총무를 지낸 이상훈 목사다. 이상훈은 이원식의 그림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20여 차례 이상 필리핀 여행을 함께 하면서 마닐라의 한국식당을 하루 전세 내서 마닐라 시내에서 방황하는 한국인 노숙자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고 생필품을 한 자루씩 선물하는 일을 몇 차례 했었다. 그 모임에 초대된 마닐라의 노숙자들은 형편상 귀국을 할 수 없어서 주로 카지노가 있는 호텔 주변을 맴돌면서 얻어먹기도 하고 쪽잠도 자는 사람들인데, 아무런 조건 달지 않고 와서 밥이나 실컷 먹고 가라고 하니 약 200명 정도의 손님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그 행사 중에 이원식 선교사가 말했다. 필리핀 감리교 본부에 갔다가 땡처리하는 책 중에 <From Darkness to Light>란 책이 한 2~30부 있길래 사 왔는데 필리핀 감리교회의 역사를 쉽게 잘 정리했다는 것이다. 책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해지는 두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그럼 두 분이 영어 실력과 따갈로그 실력이 어지간하고, 이상훈 목사도 필리핀에서 10년 이상 살았던 경험이 있으니 정성들여 번역을 하시라고!

2.
그 후 한 1년쯤 지냈을까 두 사람이 연희동 신앙과지성사로 찾아왔다. 매운탕을 훌훌 들이켜 먹으며 하는 말씀이 내가 번역을 하라고 해서 번역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다. 바쁜데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화답하면서도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친한 사이에 빠꾸 놀 수도 없고, 또 요즘같이 책도 지겹게도 팔리지 않는 데 이를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밀려왔다. 결과적으로는 필리핀에서 오래 따갈로그를 하며 국어 실력이 약화 된 이원식 선교사의 원고는 신앙과지성사가 꼼꼼히 다듬고, 판매 부분은 이상훈 총무가 남연회 8년 임기 마친 기념으로 제작비를 후원하기로 하여 잠시 걱정거리는 은혜스럽게 해소되었다.

3.
두 이 씨가 뚝딱뚝딱 해 놓은 책에 광을 내기 위하여 만만한 이덕주 박사님께 추천사를 부탁하였다. 그러고 보니 추천사 포함 세 이씨의 작품으로 이 책이 탄생하였다. 우리의 관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계신 이덕주 교수님은 이 책의 성격과 두 필자가 왜 이 책을 번역하려했는지 예리하게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한국감리교회가 필리핀에 파송한 1세대 선교사 이원식 목사가 자신의 ‘필리핀 선교 35년’을 정리하면서 선교현장에서 함께 했던 친구 이상훈 목사와 함께 알레한드로 감독의 교회사 책을 번역하였다. 보통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정리할 때 자신의 사역이나 업적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성격의 책을 내는 데 이원식 목사는 필리핀 기독교회사의 고전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중략)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교회 1세대 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두운’ 면도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독단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식민주의 선교’의 어두운 방식을 버리고 현지 교회와 손잡고 협력하는 ‘동반자 선교’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4.
이원식·이상훈 역자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 책은 1898년부터 1970년까지 필리핀 연합감리교회의 각종 사건과 회의 보고, 감독 소견 등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책의 구성이 단순한 것은 가급적 많은 사실을 세세하게 기록하려 했던 저자의 의도이다. 1905년 카츠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통치하에 놓였던 역사적 운명 때문에 한국과 필리핀 개신교 역사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운명의 선교 역사였지만, 서로 다른 종교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성장해 왔다. 한국의 해외 선교의 역사에서 필리핀 선교는 못자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한국과 필리핀의 선교 역사 그리고 전망 등을 연구하는데 작은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5.
힘든 교열 작업을 하면서 아무리 믿는 구석이 있어도 그렇지 내가 맏형이니까 형네 출판사로 넘어갔으니 원고는 알아서 하시라는 두 역자의 배짱 때문에 땀을 좀 흘리며 마감하고 제작에 착수하려는데, 마침 내방 탁자에 놓인 이 책의 마지막 교정지를 들춰보며 임연철 박사께서 뭐냐고 물으셨다. 사정을 다 듣고 난 임 박사는 그렇다면 자신이 미국 드루대학교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필리핀 관련 사진들이 많으니 그것들을 이 책 사이사이에 넣으라는 것이 아닌가! 임연철 박사는 동아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국립극장장을 지낸 언론계의 베테랑 기자 출신인데 고향인 충청도 논산에서 사애리시 선교사에게 전도 당한 할머니의 생전의 말씀을 따라 사애리시를 연구하다가 전기 작자로 거듭난 분이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우리 감리교 선교사들의 전기를 계속 출간하고 있는데 우연히도 가세하셔서 이 책이 사진과 함께 빛나는 책이 되게 기여해 주었다. 저 세상에 이미 가 계신 저자 알레한드로가 자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필리핀 감리교회로 뛰쳐나올 일이 벌어졌다. 책이 가치 있게 편집되었고, 아무튼 이 책은 필리핀 감리교회에 대한 귀한 선물이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의 산물로 태어난 결과물이란 점에서 발행인으로 특별한 애정이 가는 책이 되었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한국 교회 이야기

한국 교회 이야기

이덕주 지음, 신앙과지성사, 2009

1.
내겐 참 고마운 책이고 신앙과지성사에게는 불쏘시개 같은 책이다. 초판의 판권이 2009년으로 발행연도가 표기되었으니 그때쯤 나는 매우 지치고 피곤해 있었다. 외주 출판물에 의존해서 간신히 버텨오던 출판 사역을 더 이상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지루했다. 1987년에 주변 문서선교운동에 초석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출발하여 당시로서도 20년이 훌쩍 넘었으나 그 시점에서 출판 사역을 접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몇 개월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감신으로 이덕주 교수님을 찾아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이 교수님은 전성기였다. 숱한 책을 출판하고 여기저기 강연에 분주하여 이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던 감신 뒤편의 오래된 빨간 벽돌의 옛 건물 ‘관회수교’ 3층 구석방은 늦은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힘이 없니?”
“형, 할 말이 있어왔어. 아무래도 출판을 그만두어야 할까 봐!”
불쑥 던진 내 말에 이 교수님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구석 어딘가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복사 용지들을 한데 모아 제본한 허술한 책 뭉치였다. 손때가 듬뿍 묻은 듯한 책 뭉치 앞에는 흐린 큰 글씨로 “한국 감리교회 역사”라고 쓰여 있었다. “병천아, 이 원고를 잘 궁리해서 좋은 책을 한번 해봐, 내가 강의 자료로 삼은 것인데 꽤 소중한 자료니까 잘 될 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여기서 그친다면 말이 되니?”

2.
이덕주 교수님의 격려의 선물로 받은 원고를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고 토론했다, 당시 연세대 언더우드기념관에서 조교를 했던 홍승표 박사는 이 원고에 어울리는 귀한 사진들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딱딱한 교회사가 아닌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책 제목을 요구했다. 그리고 원고와 사진이 함께 잘 조화를 이루도록 편집과 제작에 신경을 썼다. 하여 본사의 기둥인 ‘쉽게 쓴’ 시리즈의 첫권이 된 셈이다.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 된 참 고마운 책이다. 감리교회에 관련된 원고가 많았지만, 제목을 한국교회 이야기로 보편화했다. 범위를 한국교회 전체로 넓히면서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에피소드 60개로 참신하게 엮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사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교회사 책이 탄생된 저녁, 큰일이 벌어졌다. 이 책 2,000부 초판을 받아놓고 책더미 위에 베니어합판을 올려놓고 퇴근했으니 망정이지, 사무실 위층에 수도가 터져서 아침에 출근해보니 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어떻게 만든 책인데 자칫하면 다 젖어 없어질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 초장부터 큰 액땜을 하더니 이 책은 지금까지 만부가 넘게 나갔고 이제 아홉 번째 판을 다시 찍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필두로 ‘신앙과지성사’가 출판의 맥을 잡은 것이고 쉽게 쓴 시리즈로 여러 좋은 책이 뒤를 이었고 출판의 격을 높여 주었다. 어려운 형편에 용기를 준 효자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3.
표지 앞면에 이런 글귀가 있는데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교회사를 민족사와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주시고, 그것을 풀어가면서 신앙의 상징과 성숙을 이루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교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때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다. 그런 지혜가 있어야 민족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가 ‘민족구원’이라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복음과 교회 그리고 민족의 역사’라는 다소 거창한 머리글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교회사 책 중에서 가장 출중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추용남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이정배 교수가 전화를 했다. 암 투병 중인 후배인데 힘겨운 처지에서 비탄조의 글이 아니라 패기 있고 성찰적인 글들로 원고가 좋으니 출판하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의 안목에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문제는 빠른 제작에 착수할 수 없는 여건이다. 개 교회사와 몇 개의 단행본, 그리고 장장 1500쪽이 넘는 내한선교사 사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지성사 내부 사정이 밀려있는 원고들 때문에 새 원고를 빨리 책으로 만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추용남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바쁜 일정을 설명하고 책 출판을 좀 미루자고 했더니 “장로님 말씀은 잘 듣고 이해합니다만, 제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급행으로 책을 내는 수밖에. 이렇게 3주 만에 나오게 된 이 책은 책 제목부터 참 비장하다. 우리들에게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책의 제목은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3주의 시간 동안 나의 뇌리를 오래도록 지배했다. 출판계획도 없었는데 불쑥 튀어나온 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삶과 죽음은 이코르라고 하는 정답을 심오하게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2.
이 책에는 한평생을 목회자로 온전하게 헌신하며 살았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암과 투병하면서도 진솔한 신앙의 시간을 엮어가는 추용남 목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별히 목회자란 누구이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지은이는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도 목회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목회자의 소신과 진실한 신앙 양심으로 목회했고 어느 곳에도 어긋나면 타협하지 않고 돌아서 꿋꿋한 길을 양보 없이 걸어왔다. 위암 4기의 고통 속에서도 죽음과 생명이 하나 되는 영생을 몸으로 보여주는 한 목회자의 투병 과정을 기록으로 남김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을 밝혀줄 작은 촛불을 켜들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게 하는 책을 펴냈다. 그의 암 투병기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설교와 좋은 글들을 함께 수록함으로 삶과 사랑과 죽음을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살아 숨 쉬는 신앙 이야기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3.
2022년 7월 25일이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내가 속한 공덕교회에서 열렸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추용남 목사의 삶에 뜨거운 격려를 하는 시간이었다. 소신 목회를 하시다 은퇴하신 김고광 목사님, 허원배 목사님, 이정배 박사님, 이은선 교수님 등등 좋은 말씀들이 건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추용남 목사를 격려했다. 나도 책 소개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추 목사님 힘내세요!, 위암 4기 그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런 책을 당당하게 쓴 목사님 같은 분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책을 내신 목사님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부터 새 삶을 산다고 생각하시고 뚜벅뚜벅 나가세요!”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비가 세차게 내린다. 세차게 비는 내리는데, 속초 앞바다를 외롭고 쓸쓸하게 걷고 있을 추 목사님이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 추용남의 건투를 빌면서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서 정겹게 파도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부부) 사진으로 꾸며진 이 책의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숱한 고생을 하면서 목회한 몸인데 오래도록 죽음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 이효삼·송병구 지음, 신앙과지성사, 1991

1.

이런 때도 있었나? 이 책 앞날개에 수록된 이효삼 송병구 두 저자의 모습이 정말 소년 같다. 삼촌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이효삼 목사의 넥타이 맨 모습만 이제 막 순사가 된 경찰 같고, 송 목사는 대학원생 같은 앳된 얼굴인데 이제 다 환갑을 넘겼으니 참 오래된 책이긴 하다. “이효삼은 57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문과와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가평 산유리교회 담임목사이다, 송병구는 61년 영월 출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김포 문수산성교회 담임목사이다,” 이렇게 쓰여진 소개 글을 나는 몇 번이고 읽었다.

30년이 훌쩍 넘은 시절과 시간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 다 첫 교회 임지를 맡자마자 이효삼은 한옥 예배당을, 송병구는 천장화 그림이 인상적인 농촌공동체교회를 건축했다. 그 어린 나이에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 문제아 두 젊은 목사님을 내가 불러냈다. 이 책을 신앙과지성사의 첫 책으로 발행하려는 깊은 뜻을 품고 두 아우님들을 북한산계곡에 백숙을 파는 집으로 안내했다. 나 역시 30대 중반이니 당시 주머니 사정으론 백숙을 배 불리 먹기는 어지간한 깡이 필요할 때였다. 우리 셋은 청순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책에 대한 기획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진지하고도 열정 넘치는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들은 어둠이 짙었을 때 막이 내렸다. 그렇게 북한산계곡 백숙 잔치 덕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신앙과지성사의 제1호 단행본이라는 감개무량한 책이 되었다.

2.
저자와 나 모두 감청 출신이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넘어서며 감청은 살아 움직이는 그루터기였다. 좋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교회다운 교회, 하나 되는 교회, 그리고 민족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꾼이 감청을 통해 생성되었다. 감청, 기청, 장청도 마찬가지로 교회갱신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애썼던 많은 청년들의 산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감청이 문서정리와 출판 사역에 공로를 세웠다. 내가 편집장을 했던 〈감청회보〉는 일간신문 크기의 격월간 발행으로 기독 청년뿐만 아니라 일반 운동권에서도 갖추지 못한 모양새를 신문으로 폼나게 발행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이야기지만) 그랬더니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감리교 인천산선에서 실무자로 일한바 있는 김근태 의원이 나를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갔더니 왈 “병천아, 네가 왜 이렇게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좁은 감리교에서 버덩이냐? 네가 이 솜씨를 더 넓게 한번 발휘해 봐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자랑이 아니라 당시 감청의 출판 사역 감각은 다른 운동권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년과 성서 이해>가 바로 그를 입증한다. 감청이 교단 이름을 빌려 발행했던 <청년과 성서 이해>는 수만 부가 나갔다. 성서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안목을 여는 데 초점을 둔 청년을 위한 청년이 쓴 성서연구인 이 책은 원고료 한 푼 받지 않고서도 며칠 밤을 새워 토론하며 만들었다. 정말 역작이고 멋있다. 돌아가신 김찬국 선생님이 감수하시며 극찬했고 장기천 감독님도 참 기뻐하셨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이유가 있다. 이런 경험을 곧바로 살려서 출판된 것이 이 책 <하나된 세상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3.
우리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보배로운 성서학자 민영진 박사님이 극찬하며 추천사를 써 주신 이 책은 네 마당, 12과로 구성되었다. 첫째 마당 사람들, 둘째 마당 갈등, 셋째 마당 만남, 넷째 마당 하나됨이다. 돌출된 단어만 보아도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각과 마다 성경공부(이해)와 나눔(사귐)과 다짐을 조화롭게 연계시켰다.

책을 펼치다가 이 책 첫째 마당에 있는 사귐의 노래 ‘직녀에게’를 보고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체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은 분이 부르며 눈물 흘렸을까? 책은 누렇게 발하고 겨우 3천 원이라는 책값이 세월을 말해 주건만, 여기 수록된 내용은 지금도 필요한 분단 현실을 조명함이 가슴 아프다.

이 민족에게 분단은 최대의 불행이다. 작은 출판사를 문 열고 책을 낼 여력도 없었는데 주머니 털어 백숙을 먹었던 그 날의 희망이 오늘 신앙과지성사를 통하여 값진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하심을 감사한다. 이효삼·송병구 첫 책의 저자들과 다시금 북한산계곡에서 백숙을 먹고 싶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효삼 목사는 지금 열심히 멕시코 사막지대에서 빈민선교에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건투를 빈다. 송병구 목사는 한국 최고의 십자가 전문 연구가로 명성을 떨치며 유익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책이 다시금 재판 발행되는 날, 이효삼도 달려와 함께 셋이서 ‘직녀에게’를 또다시 부를 날은 허락될 것인지….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민중시대의 복음

<민중시대의 복음>, 장기천 지음, 신앙과지성사, 1989

1.
벌써 33년이 지난 일이다. 장기천 감독님께서 이제 막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던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른의 눈으로 살펴보면 어려운 행태가 엿보이셨는지, 감독님은 가끔 나를 호출하셔서 당시 나로서는 접할 수 없는 좋은 음식들을 사주셨다. 달려가 뵈니 이제 막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끝마친 후라 홀가분하게 시간 보내시면서 원고를 정리했다며 원고 뭉치를 내게 밀어주셨다. 감독회장으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목회서신 형식으로 쓰신 글과 여러 신문과 잡지사에서 청탁받아 쓰신 글이 대부분이었다. 원고를 건네받고 몇 차례 살펴본 후 나는 책의 제목을 <민중시대의 복음>이라고 정하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흡족해하셨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감독님 돌아가신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67세가 되었다. 출판된 지 33년이 지난 이 책을 부여잡고 홀로 사무실에서 그리운 장 감독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쓰는데, 평소 동생처럼 지내는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가 전화를 했다. “이 책이 5월에 출간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감독님도 5월에 돌아가셨다면서, 5.18. 5.16 등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5월의 시간들을 그렇게 가슴 아파하시더니 진작 본인도 5월에 떠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서 목사에게 전하는 말끝이 흐려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책 소제목 중에 “우리에게 5월은?”이란 글이 있는데, 5월을 염려하며 5월에 떠나가신 감독님을 생각하며 소개해 본다.

“5월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많은 인명을 살상당한 광주시민들을 사회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던 사람들이 지체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아픔을 나누지 못한 자신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 감리교도 여러분! 한국의 감리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겨레를 위한 예언자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이 겨레의 죄와 허물을 속량하는 제사장이 되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임을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나는 오늘에 들어도 유효한 감독님의 글을 마주 대하니 감개무량했다. 감독님이나 목사님이라기보다 선생님으로 여기며 지내온 것이 명예롭다. 그래서인지 장 감독님의 예언자적 소명과 외침이 가득 담긴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가슴 벅차다.

2.
어영부영 지내왔는데 손꼽아보니 장 감독님이 이 원고 뭉치를 내게 내밀었던 때가 57세였다. 56세에 감독회장직을 마치셨으니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년이나 적었다. 그럼에도 장 감독님에겐 늘 목사님으로서의 품격이 몸에 배이셔서 뵐 때마다 긴장하면서 감독님을 만났다. 오래된 책이지만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시대정신과 복음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균형감각 있게 잘 정리해 줄 것이다. 이 책 머리글에 실린 원고의 구성을 설명하면 책의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겠다. 감독님을 함께 추모하는 뜻에서 머리글을 일부 소개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한국교회 일치운동과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에 대한 평소의 소견을 담은 것이기에 ‘복음과 역사의식’이라 정했다. 제2부는 한국 감리교회의 감독으로서 새 교회로의 변화와 진보를 요청하는 목회 서신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복음과 새 교회운동’으로 정했다. 제3부는 동대문교회의 목회자로서 해가 바뀔 때마다, 중요한 교회 계절을 맞을 때마다 신도들과 동시대인으서, 혹은 그들의 이웃으로서, 바르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글들을 모았으므로 ‘진리와 희망을 찾아서로 정했다. … 나는 예수를 믿고 그를 전하는 한, 민중선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직 민중을 위해 사셨던 예수의 말씀, 그의 사랑, 그의 희망에 관해 날마다 명상하며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3.
나는 장 감독님을 1980년 초에 ’감청회보‘ 편집장을 하면서 청년지도위원장으로 특별한 직책(?)을 맡으셨을 때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교회갱신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창하던 ‘감청’은 교단 지도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나이가 드니 그때 그분들도 참 좋은 인성을 가진 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분들이 귀찮게 여겼던 청년지도의 업무를 당시 평동교회 장기천 목사님에게 부탁하였다. 장 목사님은 겉으로는 우리를 많이 나무라셨지만 속으론 너무 과분하게 사랑해 주셨다. 특별히 당시에는 어려운 일간신문 크기로 매월 ‘감청회보’를 발행하자,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본인이 서른 초반에 교단지 ‘기독교세계’의 편집자로 고생하신 경험이 나와 일치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평신도로서의 길을 가면서 기독청년운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 대다수 감청 멤버들은 목회자의 길을 갔다. 그즈음에 ’신앙과지성사‘란 이름을 낙점해 주시면서 장 감독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천아, 문서선교 중요한데 너는 그쪽에 재주가 있으니 그 일을 하면서 평신도 지도자로 가거라!”

말씀뿐만 아니라 장 감독님은 음으로 양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실 밀알기획·신앙과지성사가 오늘까지 내려오는 데는 초창기 장 감독님의 관심과 사랑이 큰 힘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앙과지성사의 이름으로 두 번째로 1989년 5월 15일 출판된 이 책을 소개하는 지금 한국 감리교회가 낳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한 예언자요, 특별히 청년을 사랑했던 사랑의 사도인 장기천 감독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울러 오늘의 현실과 상황은 장 감독님과 같은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계획을 세워 이 책을 재출간하는 작업을 모색해 보아야겠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브루더호프 이야기>, 박성훈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치병은 무엇일까? 그것은 탐욕사회의 근원이 된 교육열병이다. 모두가 내 자식만은 편하고 대우받고 부유하게 살게 하고 싶어서 야단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 스펙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동시대를 위해서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어디에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을 써서라도 두드러지는 인재로 만들려고 난리다. 그러니 참 부끄럽지 않은가?

이 나라 총리를 장관을 하려는 사람들이 다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해괴망측한 일들을 나열하기도 싫고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 볼모가 되어 눈이 시뻘건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요청하고 싶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뭐 그리 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참 치욕적인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큰 자리를 얻어보려는 사람들이 꼭 가보아야 할 현장이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되어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공동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 오늘 아침 불끈 솟았다.

2.
기독교가 오늘처럼 수난을 당한 때도 또 있었을까? 참 교회와 교인들이 매력이 없어 보인다. 웅장한 외형의 교회도 많고, 떵떵거리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왜 작금의 시간 속에서 교회는 이 시대의 주변부에서만 맴돌고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매력이 없기 때문이고, 예수의 향기가 풍기지 않기 때문이리라.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가라는 예수님은 어찌 보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이상한 예수님을 사람들은 그리워하고 따르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모형을 실험하면서 더 이상한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는 현장, 브루더호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똑똑한 질서에 편승하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책이다.

지은이 박성훈 선생은 2007년부터 뉴욕 허드슨 강가 단풍나무 숲이 우거진 멋진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이 책은 그의 공동체 삶의 이야기이다. 세상 판단의 기준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 병들고 약한 사람들이 더 대우를 받고 더 사랑받는 곳이기에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참 이상한 나라고, 그 이상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역설적인 책 제목이 참 좋다.

저자 박성훈은 말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함께 사랑하며 사는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라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화 같은 동네 이야기인 이 책은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잘 인도해 줄 것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컬러 사진들이 대거 수록되어, 잃어버린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기행을 손색없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3.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의 신학자 에버하르트 아놀드에 의해 설립되었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3개 공동체에서 2,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영월 인근에서 다섯 가정이 올해 막 공동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꽤 오래 공동생활에 참여하였던 한겨레신문의 조현 기자는 브루더호프의 삶은 매일매일 축제 같지만, 축제의 목가적 삶만으로는 ‘이상한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서로 늘 함께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즐기는 공동체적 삶에 있다.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한 약자를 가장 우선으로 정성껏 돌보고, 어린이의 마음을 ‘하나님 생각’으로 여기며 재난·분쟁 지역에 형제들을 파견하여 세상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과 끈을 이어 기도하고 돕는 것에서 그 이상한 나라가 꿈꾸는 삶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곳을 다녀온 김난예 교수는 “이 책은 경쟁과 자본주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존중과 돌봄과 환대의 기쁨과 함께 하는 삶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자녀 교육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이 책은 허드슨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예쁜 컬러 사진으로 흠뻑 담겨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져 있는 참 좋은 인생의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기에 이 책을 펴낸 출판인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교수가 새로 쓴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유성준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신앙공동체라는 곳을 처음 가본지. 당시 감리교연수원장이던 김준영 목사님이 나에게 강권하셨다.

젊은이들은 꼭 가 보아야 한다고, 영국 스코틀랜드 최북단 복음이 처음 상륙한 아이오나 섬의 공동체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계 청년들이 가장 즐겨 찾는 떼제 공동체와 스위스의 에큐메니컬 선교의 심장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갈 것이니 여행 준비를 하랍신다. (경비도 쪼금 깎아 준다고 하시면서.)

얼마전 서랍을 열고 묵은 안경들을 가로저으니 거기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 바로 위 여행길에서 찍었던 사진으로 이미 70% 정도가 고인이 되셨다. 김준영 목사님은 물론 늘 청년을 염려하셨던 황규록 목사님, 가는 곳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좌중을 웃겼던 신동일 목사님 등등, 어느덧 이분들이 다 떠나가셨지만, 유럽의 공동체들은 아직도 그 모습을 면면히 유지하고 있겠지.

영국 아이오나 섬은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이란 유명한 곡이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서 그곳은 꼭 가 봐야 한다기에 심상치 않은 영국 뱃사람들에게 나는 짧은 영어로 파도가 심한데 배가 떠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노 프로블럼”이란다. 16명 일행이 모두 탔다. 5분쯤 지나자 배는 위아래로 솟구치고 한 사람씩 배의 난간을 잡기 시작하더니 웩! 웩!을 공통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한 20분쯤 지나 아이오나 앞바다의 핑갈의 동굴에 왔다고 하는데 코쟁이들만 휘파람 불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뱃머리를 부여잡고 남은 것들을 토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우스꽝스럽게 떠올랐다.

영국 뱃사람들을 신뢰했기에 파도 가운데서도 그 배를 탔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설겆이에 청소에 기타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아이오나 공동체’에서의 일주일은 신뢰를 확인하고 신뢰를 소중히 여기며 지냈다. 크고 작은 고정관념들은 신뢰를 근거로 사라졌다. 공동체 아침 기도회 때 그 먼나라에서 우리의 복음성가인 “하늘 나는 새를 보라”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프로그램 중 시종 근엄했던 리더가 뱃고동 치는 카페에서 다소곳이 호프를 한 잔 하시고 있지 않은가? 30년 전 당시로선 깜짝 놀랄 일이었다. 에그그, 재미있는 일은 더 많은데 이야기가 곁길로 가니, 예서 얼른 『세이비어교회 이야기』로 달아나야겠다.

 

2.

역시 ‘신뢰’였다. 세이비어교회가 미국의 작은 공동체로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세이비어교회를 한국에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그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유성준 교수다. 유 교수는 1994년부터 세이비어교회의 ‘서번트리더십학교’에서 10년간 훈련과정을 이수하고 목회에 적용하였다. 세이비어교회의 핵심목회 철학인 서번트 목회를 2015년에 그가 설립한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미래 목회의 꼼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유성준 교수의 신앙과 목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워싱턴의 세이비어교회는 1947년 고든 코스비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교회는 철저한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한 150여 명의 교인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45가지의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모범적인 제자공동체의 모델이다.

세이비어교회의 목회 철학은 영적인 삶을 통하여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긴다. 예수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용기와 희생적 삶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이러한 정신이 원동력이 되어 최초의 카페교회인 ‘토기장이집’이 생겼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사역, 취업 사역, 치유 및 재활사역, 가정 사역 등 7개 분야에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 사역을 진행하며 연간 2천만 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는 모든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행함’ 이전에 ‘존재’를 중시하여 무엇보다 관상적인 삶을 강조하는 공동체다. 유명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이 교회에서 사역하며 은혜를 받아 주옥같은 간증으로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었고, 설립자 고든 코스비 목사는 돌아가셨으나 세이비어 사람들에게 영원한 신앙의 멘토로 오늘도 살아 역사하고 있는 신뢰의 산증인이다. 세이비어교회 역시 이처럼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고든 코스비가 보여주었던 신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거라나? 소위 우리나라 대선 후보라던 안모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새벽에 윤모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우리 시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일까? 신뢰가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아니면 말고고, 치밀한 계획 속에 실언해도 그냥저냥 넘어간다. 먹고사는 것은 어지간히 되었다지만 한국 사회 최대의 비극은 신뢰의 상실이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만 잘살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도 어엿한 지도자로 등장하고 대권도 잡는다. 이런 풍조 속에 존속하는 모든 집단도, 교회도, 말해 무상하리요다. 세이비어교회를 남기며 이런 말을 신뢰있게 던졌던 고든 코스비 목사님이 하늘에서 한국 땅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사랑과 책임있는 공동체에 중점을 둔, 작지만 고도로 헌신하고 훈련된 사람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고든 코스비

 

4.

은퇴했으나 유성준 박사는 은퇴 이후가 더 바쁜 사람이다. 지금도 부인(이예주 사모, 이후정 총장 누나)을 공짜로 사용하며 인터뷰도 시키고 손님맞이 답사도 시킨다. 재주가 참 좋다. 내 주변에 가장 샘나는 잉꼬부부가 70의 나이에도 앵무새처럼 활동하고 있다. 내일모레(4월 15일)면 또 미국을 간단다. 다녀온 지 석 달도 안 되었는데 또 간단다. 무엇 때문에? 공동체를 탐방하고 헤비타트 운동의 기수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서번트리더십에 대한 대담도 한단다. 그 열정에 기가 질린다. 처음 10만 부 팔렸다는 세이비어교회 책을 나한테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땐 나랑 친하지 않아서 안 주었단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이 혐오의 물건으로 취급되는 시기에 이제 와서 왜 나를 찾아와 이 책을 내달라고 했을까?

한가하면 살 맛을 잃는 유성준 박사 부부에게 그 정열에 찬사를 보낸다. 미래교회 꼼꼼한 대안이란 부제를 내가 부친 죄(?)로 나는 계속 유박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왜 눈떠야 할까

왜 눈떠야 할까

– 신앙을 축제로 이끄는 열여섯 마당
김신일·민영진·이만열 외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5.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세계의 문제들에 복음과 성서의 정신을 근거로 고민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의 단계를 넘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지금보다도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신앙과지성사의 “왜 눈떠야 할까”라는 기획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시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해야 하는 단계에 이미 도달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교회의 변화와 요구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1부의 각 주제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보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현대 세계의 실제적인 이슈들로 편성했다. 환경(장윤재), 사회(백소영), 교육(김신일), 여성(유성희), 복지(홍주민), 국제관계(박구병), 건축(정시춘), 음악(박종원), 미술(임재훈) 등의 주제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꼭 생각해 봐야 할 주요 내용들이지만 그동안 교회 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한 주제들이다. 2부의 각 주제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꼭 숙고해 봐야 할 주요 내용들로 편성했다. 영성(김기석), 성서(민영진), 역사(이만열), 신학(이신건), 인문학(홍인식), 종교(이정배), 삶과 죽음(김옥라) 등의 주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에 어려움을 느껴온 내용들이다. 이외에도 그리스도인이 생각해 봐야 할 여러 주제들이 있겠지만, 이상의 16개 주제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옥고로 첫 결실을 맺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작업이다.

이 책은 비록 다양한 주제와 문체의 글로 편집되었음에도 하나의 일치된 관점과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진리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적극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리스도교 신앙은 더욱 풍성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인적인 독서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청년부나 평신도 독서모임 등에서 함께 읽고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신앙공동체의 성숙과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 김연호 지음, 밀알라이프(신앙과지성사), 2021)

 


소신껏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특히 산업사회 이후 교회가 제도와 틀을 갖추고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 시작하면서 목회자로서 목사답게 소신껏 살아가는 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 반갑지 않은 역기능이다.

나의 청년 시절만 해도(1970-80년까지) 교회 게시판에는 ‘성미표’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었다. 이름 위에 도장들이 꾹 찍혀 있었다. 연말이 되어 이름 위에 도장이 길게 찍힌 것은 쌀을 사 먹을 형편이 양호한 교우 가정이고, 시작이나 중간쯤에 도장이 끝난 것은 형편이 어려워 쌀 사 먹기가 궁색한 가정들이었다. 형편은 어찌 되었든 교인들은 구입한 쌀에서 제일 먼저 첫 공기를 수북이 떠서 교회에 바쳤고, 바쳐진 그 쌀들이 목회자들의 ‘빵’이 되었다. 고2 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된 나는 여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시간의 신비만큼이나 교회의 성미표를 유심히 살피곤 했던 기억이 있다.

새삼스럽게 지금 옛 생각을 하다 보니 길었던 짧았던 꾹꾹 눌려진 인주밥의 성미표는 눈물 젖은 교우들의 빵이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첫 공기를 정성껏 봉지에 담으며 “우리 식구들 모두 이걸(빵을)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목사님도 이 빵을 드시면서 우리를 잘 이끌게 해 주세요.”하고 빌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김연호 목사님 이야기를 나누며 산과 강을 바라보며 인생과 믿음을 생각했다. 그분의 아들인 김성호 목사님을 만나러 이광섭 목사와 함께 춘천행 기차에서다. 주님의 은혜로 빵 걱정을 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이광섭 목사가 기차 안에서 들려주었던 고 김연호 목사님의 ‘눈물 젖은 빵’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으로 무척 소신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날의 춘천행 기차는 유난히 더 덜컹거렸다. 이광섭 목사가 전해준 김연호 목사님의 이야기가 춘천행 청춘열차를 그날따라 더 덜컹거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형, 김 목사님이 인천 계산교회 담임할 때 6.25가 터졌고, 인천 어느 부둣가에 큰 배가 제주도로 목회자들을 태우고 가려고 기다리는데, 김 목사님은 교인 200명을 이끌고 그리로 갔데요. 난리가 났다지, 이 배는 목회자 외에는 탈 수가 없다!! 김 목사님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았고, 아니, 목사들만 사람이냐 싸우면서 모두 다 배에 교인들을 올라타게 했데요. 할 수 없이 선장은 제주 애월까지 갔고, 김 목사님은 황무지 제주 땅을 교인들과 협동농장을 하면서 함께 살았데요. 아침 일찍 나오고 밤늦게 들어 갔는데 글쎄 어느 하루는 쥐를 잡기 위해 쥐약탄 밥을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김 목사님 큰아들이 집을 지키다가 글쎄 그 밥을 먹고 … ” 차라리 안 들었던 게 나았던 이야기를 광섭 목사는 먼 여행길에서 왜 내게 그 말을 전했는지, 그러나 듣고 보니 김연호 목사님의 책 이름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라는 다소 신파조의 책 이름이 새롭게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1920년생인 김 목사님은 평양 요한신학교에 다니면서 20대 초반부터 빈민굴에 가서 아이들과 침식을 같이하며 공부를 가르쳤다. 대동강가를 함께 뛰며 게으르고 무기력한 정신을 개혁하려고 매일 밤 12시에 자고 4시에 기침하여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단다. 그 집단이 자연스럽게 신망애교회가 되었고 김 목사님은 거지 대장 전도사로 우뚝 섰단다.

이 책은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 사연들이 가득하여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다.

‘눈물 젖은 빵?’ 의미부여에 도사 격인 이덕주 교수는 추천사에서 풍요와 쾌락의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 세대가 그 의미를 알까? 먹방이 대세인 요즘 ‘눈물 젖은 빵’이라 하면 빵을 맛있게 먹는 새로운 레시피쯤으로 생각할 것 같단다. 이 교수는 ‘눈물 젖은 빵’은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해방의 감격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분단으로 인한 전쟁과 폐허, 빈곤과 독재 시대를 살면서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일궈낸 분들의 삶과 교훈이 농축된 표현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왜 겸허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말해 주는 책을 내 손으로 펴낼 수 있음이 감사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서너 시간이면 한 권을 다 읽는 책을 독자들이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겠다.

 


처음 이 책 이야기를 ‘소신’으로 시작한데는 그 이유가 있다. 저자 김연호 목사님이 소신껏 사신 목회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빈민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으로, 6.25 때는 신도들과 함께 사는 협동농장으로, 춘천을 중심으로 한 성시화 운동으로, 김구 선생님과의 만남과 김대중 선생님 구명운동까지, 남들이 피해 가는 길만을 찾아가며 불의와 맞서 싸운 용기와 신념이 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참으로 궁금한 분이다. 그리고 교단의 평화를 위해 상처가 있는 교회마다 찾아 나선 화해자의 역할도 소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감동적인 여러 일들을 해내셨다. 교회 안에서는 성령의 사람, 교회 밖에서는 화평의 사도, 그런 소신 있는 목회자를 보유한 감리교단인데 어쩌자고….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