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기적

 

 

(<함께 사는 기적, 프랑스 떼제와 신한열 수사 이야기>, 신한렬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7년)

1.
나도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기적이란 생각을 가끔 한다. 며칠 전 나와 가장 가까운 마나님이 출근길 운전하는 내게 심한 잔소리를 했다. 따로 다니는 게 참 편한데, 몸이 아프신고로 모셔다 드리는 출근길 한 시간이 참 길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 이외의 사람에게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참 많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모두 떨어져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자식이든 친구든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 진실하게 들릴 때도 많다. 사랑으로 함께 하는 신앙공동체를 갈망한다며 수없이 기도하건만 교회 생활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함께 사는 기적을 일궈내는 현장이 있다. 휴가를 얻는다면 꼭 한 번쯤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참 예쁘고 아름다운 수도 공동체인데,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떼제다. 유럽의 고풍스럽고 역사성 있는 교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가고 있는 시점에서도 이곳은 세계 각처의 젊은이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한여름에는 텐트 칠 자리도 없을 만큼 하루 3천 명 넘는 인원이 오간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수도공동체인 이곳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찾아오는 것일까? 숙소도 여행을 위한 제반 조건도 그리 좋지 않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명상하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 책과 만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신앙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2.
나는 떼제를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20여 년 전 감리교연수원 프로그램으로 당시 이면주 목사님이 감리교 중견 목회자 십여 분과 젊은 세대로 나와, 엄일천, 정해선, 김성복, 고인이 된 김영범을 합류시켰다. 떼제는 최소 일주일은 머물 것을 권하지만 우리 일행은 한 닷새쯤 머문 것 같다. 지금은 대개 고인이 되신 목사님들과 젊은 우리는 그곳의 신선한 분위기와 자유로운 규범(하루 세 번 공동예배 외에는 프로그램도 없고 강요하는 것도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생활해야 한다)을 좋게 보는 듯하면서도 한국의 심령부흥회 등 한국적 기도원의 분위기에 젖은 나이 드신 목사님들은 적응에 힘들어하셨다.

그런데다 당시 한완상 장로님이 통일부총리가 되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려고 하는 때라 그곳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대부분 이념논쟁에 시간을 소모하면서, 떼제가 추구하는 정신과 사뭇 반대되는 대화가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 수사로 서강대 학생운동의 리더로 민주화 과정에서 죽어간 박종철과 친한 친구이며 그의 죽음에 회의를 느낀 이 책의 저자 신한열 수사(이한열 열사와 이름이 같아 기억하기 좋았으나 아픈 이름이다)를 그곳에서 만났다. 지금은 60이 다된 나이이나 당시 앳된 얼굴로, 유일한 한국인 수사였다. 신 수사는 우리 일행의 양극화된 분위기를 잘 이해하면서 믿는 이들이 어떻게 땅의 소금과 화해의 누룩이 될 수 있는지를 안내했다. 또 떼제가 있어 소비와 경쟁, 분열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3.
나의 두 번째 방문은 존경하는 조화순 목사님을 모시고 갔다. 벌써 한 10년쯤 지난 일이다. 친구 이필완 목사가 동행하면서 조 목사님 시중을 나누어 들었다. 조 목사님 역시 이튿날까지 탐탁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루 세 번 예배에 설교도 없고 성경 읽고 침묵하고 단순한 노래들을 기타반주에 맞춰 반복하는 것이 싱겁고, 젊은이들이 몰려들지만 구름 같은 것이고 현장성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하셨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에 가 있던 신 수사의 배려로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을 수사들의 집에 초대하여 극진한 잔치로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알로이스 원장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조 목사님을 소개하고, 치하하니 조 목사님의 태도가 바뀌셨다. 또 떼제의 중심으로 예배처소인 ‘화해의 교회’에서 낮 예배가 끝난 후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조 목사님께 무릎을 꿇더니 안수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조 목사님도 흥분하셨고 신 수사가 계셨으면 일도 아니련만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통역을 감당했으니, 진땀이 나던 추억이다.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통역사 노릇이었다.

기분이 업된 조 목사님은 나더러 언제 그렇게 영어를 했냐 칭찬하시기에 내친김에 이웃어간에 있어 참 아름다운 소도시 끌로네로 모시고 갔다. 조 목사님과 잊을 수 없는 좋은 여행을 했다. 일주일 그곳에 머문 후 우리 일행은 독일로 향하여 존경하는 이영빈 목사님 댁을 방문했다. 김순환 사모님과 이 목사님 세 분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만났고 헤어졌다. 3일을 함께 지낸 후 이 어른들은 우리 언제 또 만나냐? 하시며 작별하셨는데 이것이 이영빈 목사님과 조화순 목사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
신한열 수사의 『함께 사는 기적』,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뜻 깊게 느낀 것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이 실현된 현장이 떼제라는 점이다. 떼제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중 유대인과 독일, 프랑스 전쟁포로들을 보호하면서 로제 수사가 시작하고 세워나간 모든 종교를 초월한 예수 사랑의 집이다. 거기에 그분의 섭리가 계셔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망과 고뇌에 빠졌던 신한열이 로제와 만난 것은 역사 속에서 함께 사는 기적의 섭리라고 생각하여 큰 울림을 갖는다.

로제는 신한열을 신뢰하여 떼제가 소유할 수 없는(공동체든 개인이든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형제 중 누군가가 바친 큰 유산을 어떻게 쓰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신한열은 우리 북한 동포를 위해 쓰자고 제안했고 로제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떼제의 북한 사랑의 손길이 펼쳐져서 두유 공장을 세우고 해마다 많은 양의 쌀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로제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한열은 유럽에서 대규모 젊은이 모임을 열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 홍콩과 중국 등 젊은이들과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5.
예수 사랑과 가난의 정신을 배경 삼아 로제 수사가 걸어온 떼제의 여정은 귀중한 것이고, 신한열이 종신서약하고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사랑과 회의와 희망의 이야기가 이 책을 탄생시켰다. 떼제 수사로서 책을 낸다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지만, 나의 꾸준한 제안을 수용해 준 감사의 산물이다.

이 책을 보면 참 감명 깊은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어느 단체나 새로운 또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법. 떼제 역시 신선한 사랑과 화해를 위한 많은 일을 하였으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새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신한열은 다시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또 다시 한국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일구려고 준비 중이다. 이 책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안내하고 있는 귀한 책이다.

최병천 장로(공덕교회,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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