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박흥규 목사 고희기념문집, 신앙과지성사, 2008)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생각나는 분이다. 30여 년을 농촌교회에서 목회하며 60의 나이에 자원은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대관령으로 나무를 심으며 수목신앙의 꿈을 키우시던 박흥규 목사님은 꽃피는 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이다. 벌써 박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이 된다.

박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무렵이고 나에게는 감청시절이니 무척 오래되었다. 당시 나는 감청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생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그래서 사회과학 출판사였던 형성사에서 편집일을 보고 있었다. ‘감청회보’를 일간신문 크기로 격월로 발행했던 경험을 살려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책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때 박 목사님은 40대 초반으로 김포 월곳교회를 담임했다. 공덕교회, 은강교회, 약수형제교회, 아현교회, 아현중앙교회가 감청운동의 베이스캠프였고 나는 공덕교회에서 청년부 후배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으로 박 목사님을 찾아갔다. 학내 학생운동이 봉쇄되어 교단청년운동으로 청년 정신의 명맥을 이어가던 때다. 공덕교회 청년 30여 명을 데리고 열흘간 농촌봉사를 할 터이니 장소제공과 울타리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어서나 노인이 되어서나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고 표정부터도 쌀쌀했던 박 목사님은 청년들이 시골에 내려와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대상이었던 문제들도 잘 해결해 주셨지만, 저녁 늦은 토론시간에 오셔서는 청년들에게 핀잔에 가까운 말씀을 하곤 하셨다. “니들, 여기 왜 왔나?” “무슨 공부들 하냐?” “농촌교회의 현실을 말해 보라.” 등등의 말씀을 겉으로는 퉁명스러웠지만 속으로는 큰 사랑을 품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근사근하지 않던 박 목사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나와 박 목사님은 긴 시간을 (한 20여 년) 만나지 못하다가 송병구 목사가 독일 복흠교회에서 목회할 때 독일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10여 명이 보름간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박 목사님이 제일 어른이셨고 17년 차이가 나지만 다음이 나라서, 그와 룸메이트가 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했던 일행들도 모두 박 목사님과 거리 두기를 하곤 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칠 때면 “야, 너 요새 무슨 책 보냐?” “공부 안 하고도 입질 잘하느냐?” “돈 벌려고 목회하냐?” 등등 까칠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는데, 나는 오지게도 보름을 한방 쓰면서 박 목사님의 까칠한 질문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박 목사님이 정말 책을 사랑하고 공부를 많이 하셨다는 점이었다. 서양철학사에서부터 중세와 기독교 그리고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박식한 면모를 지닌 분임을, 책벌레이심을 알게 되었다.

독일여행을 다녀온 후 박 목사님과 매우 가까워졌다. 인간적인 사귐이 있고 난 후부터 박 목사님은 동생 같은 나를 매우 존중해 주었고, 이 시대에 외롭게 출판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러면서 박 목사님은 나와 책을 통로로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대관령 숲속에서 주경야독했던 책들의 감회를 내게 전했다. 그래서 박 목사님 덕분에 나에게도 책에 대한 안목이 넓어졌고 나름 기획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이 책은 책벌레였던 박 목사님이 고희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한 책으로 현재 우리 출판사에 달랑 한 권 남아있다.

“모든 것은 변화되고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머리글 제목으로 박 목사님은 자연과 영생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번 경험했던 일들은 내 안에 존재하며, 영원한 과정에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에서 대관령 산 생활을 기록한 일기와 관심사였던 수목신앙(樹木信仰)에 대하여 제1부를 정리했고, 제2부는 가까이 지내던 동료와 후배 16인이 인간 박흥규에 대하여 쓴 글을 모았다. 이 책 권두 대담의 진행과 정리를 내가 맡아서 박흥규 목사님의 살아온 과정을 서술해 드린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대관령 숲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던 사람 박흥규 목사, 그의 빈자리가 내겐 너무 크고 넓다. 여린 가슴으로 대범한 척하셨으며, 남들이 슬슬 피하는 가시 같은 이야기로 후배들을 자극하려 했던 순전한 그분의 속내가 오히려 애처롭고도 가슴 아려온다. 이 책을 어루만지며 그가 살던 농막이 있는 대관령 옛길을 얼른 다녀와야 할 터인데… .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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