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위르겐 몰트만, 이신건 옮김, 신앙과지성사, 2020년

지난 여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양평에서 은퇴 후 노년의 후반전을 의미 깊게 사는 이신건 박사의 집을 찾았다. 거실 탁자 위에 독일어 원서 한권이 놓여 있었다. 까막눈인 나는 물을 수 밖에. 그랬더니, <살아있는 영혼의 죽음과 깨어남>이란 제목의 몰트만 선생님의 마지막 저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남은 현대신학자의 마지막 책이라?

순간 상당한 의미로 다가 왔다. 이 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곧장 번역해 달라, 올 연말에 예쁜 책으로 출판해 스터디 셀러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원조 옥천냉면 할머니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일행을 대접했다.

원고가 10월에 도착했다. 나는 책 제목을 과감하게 붙였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로! 그러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팁을 신앙과지성사가 톡톡히 주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막상 기독인과 비기독인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그러나 이 책 제목처럼 나는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 참 좋은 답이 될 터이다.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편집 작업에 몰두했다. 삶과 죽음은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사귐이란 뒷 표지 헤드 타이틀을 찾아내곤 새벽녘에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처형 직전 감방동료들에게 남긴 말, 죽음은 마지막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시작이란 감동적인 문구도 추가했다. 내가 하고도 내가 스스로 감회에 젖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문학적 표현까지 더했다. “죽음의 순간에는 아마도 새로운 공간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를 부르는 생명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아 평안히 이별하여라. 그리고 건강하여라” 라는 말까지 찾아냈다.

이 책은  표지 글만 읽어도 죽음에 대한 크리스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책이 나오기가 무섭게 굴지의 언론 세군데서 동시 서평을 해주며 근래 보기 드문 책이 나왔다고 극찬했다. 책은 3주 만에 초판이 다 떨어졌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역자 이신건 박사는 말한다. 오늘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시는 분들과 실제로 죽음의 벼랑에 내몰리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도리어 미안하다고. 그러나 몇 년 전 부인을 먼저 보내고 95세의 노년에 죽음과 생명과 영생에 관해 깊이 묵상하며 쓰신 선생님의 글을 옮기며 마음이 많이 아려왔다고 고백했다.

어제는 참 가기 싫은 곳을 다녀왔다. 평소 이 시대 마지막 등불 같은 출판인이라며 나를 격려해 주던 친구 루터교의 주대범 장로의 빈소였다. 정의감 넘치고 인정 많고 음악가이고 목수였던 다재다능했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져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 소풍 길을 마감했다. 소식을 접한 한 주간 동안 참 우울하고 슬펐다. 한 두어 달 쯤 되었나? 주 장로는 내게 전화해서 아쉬운 부탁을 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교우를 부탁하며 재능 있는 친구인데 생활이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일 좀 시켜 달란다.

주 장로의 하소연을 들으며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주 장로의 넓은 품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빈소를 나와 한 시간 쯤을 터덜터덜 걸었다. 주 장로는 많은 사랑을 남기고 영생의 길을 먼저 갔다. 걷는 내내 그가 예수살기 모임에서 피아노치며 노래 부르던 모습만이 아른거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친구 주 장로를 먼저 보내며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만든 이 책이 더욱 더 깊게 마음속에 다가온다.

최병천 장로 (공덕교회,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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