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독교사상 2013년 4월호
눈에 띄는 좋은 책

교회사 속에서 만난 영적 스승들과의 행복한 만남
Ⅰ. 들어가면서
과학과 문명의 발전 속도가 지구의 공전 속도를 능가하는 이 시대에 ‘영성’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어쩌면 이 시대 현란함의 그림자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우리 인간에게는 과학과 문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지식인은 좬지성에서 영성으로좭란 책도 써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문제는 ‘영성이란 단어의 홍수’ 현상이다. 여기저기에서 모두 영성이란 단어를 갖다 붙인다. 물론 모든 곳과 모든 것에서 왜 영성을 말할 수 없겠는가? 하지만 영성이란 단어의 분명한 이해나 깊이도 없이 유행 때문에 사용하는 경우를 적잖이 보게 된다.
이런 시류(時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교 내에서 사용하는 ‘영성’이란 단어의 모호성은 ‘영성은 곧 신비주의’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면서 그 소중한 단어가 적절치 않게 사용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무엇이 진정으로 바른 영성인지 그 분별이 어느 시대보다 절실한 때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 최근 서점에 나왔다.
Ⅱ. 책에 대해서
이 책은 영성의 출발이 되는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십자가의 영성(이그나티우스, 폴리캅, 히폴리투스), 거룩한 교부들(안토니, 아우구스티누스, 마카리우스)의 영성세계, 암흑기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쨌든 교회사의 중요한 보물인 중세 영성의 고귀한 형태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마르틴 루터, 요한 칼뱅) 곧 개신교의 영적 부모들의 영성을 보여준다. 물론 동방교회의 실루안과 현대 영성가(사두 선다 싱)도 함께 소개한다.
저자인 이후정 교수는 교회사를 전공했으나 객관적인 사실들만 나열하는 단순한 이론적 방법론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사막교부인 안토니의 악취 진동하는 거처까지 포함 – 마다 방문하여 전해 내려오는 사건들을 현장에서 재구성해내는 ‘발로 뛰는 사학자’이며 영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교회사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 영성사가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제단에 나가서 무릎을 꿇는 영성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성의 홍수와 혼돈의 시대에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성실한 입문서를 써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적임자일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용은 2002년 봄부터 1년 동안 이미 기독교방송(CBS)에서 <영성의 삶>이란 방송을 통해서 그 내용과 가치가 ‘검증’(?) 된 바 있다.
그는 교회사라고 하는 무대, 그리고 그 역사의 지평에서 구체적인 영성의, 꼭 필요한 부분을 친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설명해낸다. 이것은 저자도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21쪽) 영성이란 지금 우리에게서 처음 문제되거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전통과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서에 기초해서 그리스도교 영성이 출발했지만 그 영성의 숭고한 표현들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꽃피고 열매 맺었기 때문이다.
Ⅲ. 틀 살피기
이 책은 우선 영성의 거장들이 등장하기 전의 시대적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고 그에 대한 생애를 다룬다. 그리고 그의 저서나 핵심 사상을 소개하며 그가 일평생 혹은 어느 중요한 시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순교의 영성가인 폴리캅(Polycarp)을 전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우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오리겐(Origen)을 잠시 소개하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오늘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오늘날 우리는 참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하는데,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세상의 신들을 부인한다고 해서 무신론자라고 불리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32쪽)
지금은 그리스도교가 적잖은 세(勢)를 가지지만 당시엔 오히려 소수였고 더 나아가 ‘무신론자’로 불리던 시절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폴리캅은 로마 황제 시저(Caesar)가 주(主)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고 화형대의 불 속에서 사형집행인의 칼날을 받으며 순교의 길을 걷는다. 저자는 이 부분까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서술하고 사도 바울의 “내가 매일 죽노라.”는 말씀을 접목시킨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죽음을 매일 묵상하고 기억하는 것의 전통이 바로 이 초대교회의 순교의 영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전한다. 그는 또한 오늘 이 시절, 이 땅에서의 순교의 영성을 고민하며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초대교회의 순수한 영성을 본받는 것인지를.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답을 교회사 속의 영성가들에게서 찾아내고 있다.
Ⅳ. 내용 살짝 엿보기
우리 자매 죽음이
살아 있는 누구도 못 벗어날
시간 속의 죽음이
주여, 당신을 찬미하옵니다.
죽을 죄 속에 죽는 자에게 화로다.
당신의 거룩한 뜻을 좇아 쉬는 자들은 복되도다.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니.(165쪽)
위에 소개한 글은 프란체스코가 죽음을 앞두고 그의 형제들에게 불러달라고 부탁한 <형제 태양의 찬가> 중의 마지막 절인 죽음에 대한 노래이다. 영성의 대가라고 하는 이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삶과 다름이 없었다. 죽음조차도 그는 형제애와 자매애로 포용하면서 사랑의 극치를 실현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성은 삶만 아니라 죽음의 자리까지도 포함한다. 계속해서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은 ‘영성’은 결코 교회 안에만, 주일에만, 살아 있고 건강할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성적 삶의 모습은 반복되는 예배의 자리(40쪽), 성찬, 그리고 세례의식(42, 43쪽)을 준비하며 자신의 신앙과 인격을 신앙으로 훈련하고 지도받음을 통해서 시작됨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이 견지하고 있는 ‘균형감’은 여기서 빛난다. 영성을 단지 ‘이상하고 신비한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출발점을 예배와 교회의 전통의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저자는 초대교회가 행한 두 가지 전통의 부활을 오늘날 교회에 적극 추천한다. 하나는 등불예배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식사(아가페)이다. 등불예배는 토요일 저녁에 교인들이 등불을 가져와서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며 빛이신 그리스도를 송축하고 기억하던 예배이다. 아가페는 단순한 애찬이 아니라 예배의 연속이었고,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떡을 떼었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본받는 절제의 식탁이었다. 빛이 너무 휘황찬란해서 밤에도 하늘의 별빛을 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영성에 귀한 자극이 될 것이다. 또한 세상적인 잡담과 먹는 데만 치중하는 식사가 아니라 절제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감사로 가득 찬 식사는 ‘주의 사랑으로 연합된 친교’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우리의 영성을 더욱 풍요롭고 풍성케 할 이러한 제언들로 풍성하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을 비난한다.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94-95쪽)
그분은 우리의 옷입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우리를 감싸주시고 붙드시며, 결코 우리가 그냥 가도록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175쪽)
먼저 소개한 글은 목자라는 뜻의 이름인 사막교부 포에멘(Poeman)이 진정한 고요와 침묵에 대해서 한 말이다. 요란하고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침묵이고 영성의 실천임을 잘 보여준다. 단지 말이 없는 침묵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된 사랑의 말, 평화의 말을 하는 것이 깊은 언어의 영성임을 전한다. 이것은 일상에서 영성의 실천이 그 시작은 침묵과 고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글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다루어진 여성 영성가인 노리치의 성 줄리안의 하나님 고백이다. 그는 우리가 마치 옷에 싸이듯이 하나님에게 포근히 싸여 있는 존재임을 전하고 있다. 그의 영성은 본문에서 여성성과 신비의 관계가 하늘의 계시와 연결되어 아름답게 드러난다.
인도에서 태어난 힌두교 출신의 사두 선다 싱을 다루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를 서구 중심적인 그리스도교를 서방의 옷이 아닌 동양의 풍토에서 받아들이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따라나서는 구도자로 소개한다.
이토록 다양한 영성가들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무궁무진한 보물들을 가지고 이 책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의 중요한 고전인 『고백록』, 『그리스도를 본받아』, 『천로역정』의 내용이 저술가들의 영성과 함께 다루어지는 부분은 ‘압권’이다.
Ⅴ. 통찰과 유익함
이 책을 통해 얻을수 있는 영적인 통찰과 유익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영성의 길을 걸으려면 영적 모델이 필요한 데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모델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다.
영적 여행의 지혜로운 안내자들로부터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부정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영성의 길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고귀한 자기성취나 어떤 가치의 실현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이 서로 만나고 합하여 사랑의 목표를 향해 진보해 나갈 수 있는 여정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인 십자가 영성에 대해서 묵상하도록 돕는다.
과거에는 박해가 시험이 되었으나, 이제는 세상의 가치와 물질의 풍요가 유혹이 되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영광의 신학, 번영의 신학이 범람하는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고난과 자발적 가난의 영적 전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연합과 일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영성은 그 기본과 중심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임을 확인시켜 준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계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기복적인 기도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그 모범을 보여준다.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안식하면서, 그 선하심이 우리의 필요의 가장 낮은 깊은 곳들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178쪽)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 위로와 기쁨, 쉼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단어들에 대한 통찰을 선물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목마름, 가난과 단순함, 고요와 침묵, 그리스도의 벗, 쉼, 부정과 포기 등
Ⅵ. 제언
이 책에서도 이미 밝히고 있는 것처럼(187쪽) 노리치의 줄리안뿐 아니라 다른 여성 영성가들도 다뤄졌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여성이라서 다룬다는 의미뿐 아니라 교회사에서 발굴하고 재조명해야 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여성 영성가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의 제언은 이 책의 출생이 방송용 원고였던 것처럼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우선 문체가 쉽고 간결하며 명징하여서 세대를 초월한 영성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또한 함께 제공된 사진이나 삽화 등이 풍부하여서 미디어적인 자료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쉽게 쓴’ 시리즈라 그럴 수도 있으나 그 영성가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진 독자들을 위해서 참고도서가 조금이라도 소개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Ⅶ. 나오면서
결국, 영성의 모양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는 있겠으나 그 중심을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을 바라보는 것,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형상을 좇아 자신의 삶을 훈련하는 것” 그 테두리 안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리라는 저자의 설명에 동의한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영성의 모습은 새로운 시대적 환경과 선교의 필요성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창조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릇에 담기는 물은 같으나(하나이나) 그릇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단지 ‘현상’에만 집중하느라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행복과 기쁨을 누렸다. 소란하고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 책을 펼치면 어느 순간 영성의 대가와 함께 하나님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정원 곳곳에 자리한 다양한 나무와 꽃들을 옮겨다니며 얼마나 즐거웠던지. 나의 이해도가 내용의 심오함과 그 깊이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저자는 어느새 나타나 친절하게도 자세한 안내와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이 책을 손에 잡아보면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지 싶다.
끝으로, ‘쉽게 쓴’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출간해내는 신앙과지성사의 최병천 사장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조성환/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과 미국 웨슬리신학대학교(Wesley Theological Seminary)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서울 수색의 혜성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