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추용남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1.
이정배 교수가 전화를 했다. 암 투병 중인 후배인데 힘겨운 처지에서 비탄조의 글이 아니라 패기 있고 성찰적인 글들로 원고가 좋으니 출판하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의 안목에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문제는 빠른 제작에 착수할 수 없는 여건이다. 개 교회사와 몇 개의 단행본, 그리고 장장 1500쪽이 넘는 내한선교사 사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지성사 내부 사정이 밀려있는 원고들 때문에 새 원고를 빨리 책으로 만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추용남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바쁜 일정을 설명하고 책 출판을 좀 미루자고 했더니 “장로님 말씀은 잘 듣고 이해합니다만, 제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급행으로 책을 내는 수밖에. 이렇게 3주 만에 나오게 된 이 책은 책 제목부터 참 비장하다. 우리들에게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책의 제목은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3주의 시간 동안 나의 뇌리를 오래도록 지배했다. 출판계획도 없었는데 불쑥 튀어나온 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삶과 죽음은 이코르라고 하는 정답을 심오하게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2.
이 책에는 한평생을 목회자로 온전하게 헌신하며 살았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암과 투병하면서도 진솔한 신앙의 시간을 엮어가는 추용남 목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별히 목회자란 누구이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지은이는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도 목회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목회자의 소신과 진실한 신앙 양심으로 목회했고 어느 곳에도 어긋나면 타협하지 않고 돌아서 꿋꿋한 길을 양보 없이 걸어왔다. 위암 4기의 고통 속에서도 죽음과 생명이 하나 되는 영생을 몸으로 보여주는 한 목회자의 투병 과정을 기록으로 남김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을 밝혀줄 작은 촛불을 켜들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게 하는 책을 펴냈다. 그의 암 투병기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설교와 좋은 글들을 함께 수록함으로 삶과 사랑과 죽음을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살아 숨 쉬는 신앙 이야기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3.
2022년 7월 25일이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내가 속한 공덕교회에서 열렸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추용남 목사의 삶에 뜨거운 격려를 하는 시간이었다. 소신 목회를 하시다 은퇴하신 김고광 목사님, 허원배 목사님, 이정배 박사님, 이은선 교수님 등등 좋은 말씀들이 건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추용남 목사를 격려했다. 나도 책 소개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추 목사님 힘내세요!, 위암 4기 그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런 책을 당당하게 쓴 목사님 같은 분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책을 내신 목사님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부터 새 삶을 산다고 생각하시고 뚜벅뚜벅 나가세요!”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비가 세차게 내린다. 세차게 비는 내리는데, 속초 앞바다를 외롭고 쓸쓸하게 걷고 있을 추 목사님이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 추용남의 건투를 빌면서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서 정겹게 파도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부부) 사진으로 꾸며진 이 책의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숱한 고생을 하면서 목회한 몸인데 오래도록 죽음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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