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신학

어린이신학

<어린이신학>, 이신건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7

2020년 대한민국을 경악케 했던 사건 중의 하나가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 ‘정인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당시 8개월의 여자아이를 입양모 장하영과 입양부 안성은이 장기간 심하게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또한 설 연휴 직전인 2월 10일에는 경북 구미의 빌라에서 2살배기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친모는 아이를 빌라에 남겨둔 채 이사를 가버려 결국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됐다. 발견 당시 아이의 사체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10살 조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이모 내외가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조카가 욕조에 빠졌다고 119에 신고한 이들은 실제로는 역할 분담까지 해가며 물고문 수준으로 조카를 학대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러한 아동 학대 사건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60년부터 대한민국의 아동 학대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위 사건 이외에도 2010년 이후의 아동 학대 사건만 살펴봐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어머니 살해 사건 (2011년),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 사건 (2011년~ 2013년),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살인 사건 (2013년), 울산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 (2014년), 인천 송도국제도시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2015년), 인천 학대 여아 탈출 사건 (2015년), 부천 초등학생 토막살인 사건 (2012년~ 2015년),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 사건 (2015년~ 2016년),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 (2013년~ 2016년), 청주 아동학대 암매장 사건 (2011년~ 2016년), 고준희 양 살인 사건 (2017년)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다양해지고 그 수법도 악랄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동 학대 사건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예를 들면 정인이 사건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돼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향한 학대와 범죄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정인이 사건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들이 소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순진무구하고 또한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무참하게 학대받고 살해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오래전(1997년)에 발간되었지만 신앙과지성사가 증보판으로 다시 출판된 이신건 저 『어린이 신학』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 신학』은 서울신학대학교 은퇴 교수 이신건 교수가 1997년 처음으로 발간한 책이다. 이 교수는 10년 가까이 해직 교수로서 살아가는 기간에 이 책을 저술한다. 어린이 신학은 어떤 책인가? 어린이 신학이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거의 없는 교회학교의 현실에서 한 번쯤 공동으로 읽고 성찰해야 하는 책이다.

약하고 무능한 하나님과 신학적 대안!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의 투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무한히 전능한 존재로 만들고 신앙해 왔다. 가부장적, 제국주의적인 문명 속에 형성된 구약성서에도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적잖게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낮추신 하나님이요, 스스로 높아지려는 권세가들과 지배자들을 철저히 전복하시는 혁명의 하나님이다. 무엇보다 “오직 어린이 같은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회에서 무시와 학대를 받아온 가장 연약한 인간인 어린이를 어른의 중심에 세우시고 어른보다 더 높이신 예수님의 행동, 그리고 스스로 어린이처럼 무력하고 무능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은 바로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적인 폭력구조(힘센 자와 남성의 폭력)의 극복을 위한 대안

어린이 신학(어린이 하나님의 형상)이 어린이 학대에서 보이는 이중적인 폭력구조(힘센 자와 남성의 폭력)의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신학적 전제가 가능할까? 세상 사람들도 이제는 지배와 착취, 차별과 학대를 점점 더 미워하며,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실현해 나가고 있다. 하물며 연약하고 온유한 모습을 통해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세상을 전복한 예수님, 약자를 끌어안고 그들의 편을 든 예수님을 믿는 교회는 얼마나 더욱 그리해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과거에 폭력적인 남성과 어른, 지배적인 권력자가 신봉한 폭력과 지배의 하나님을 과감히 버리고, 이제는 섬김과 사귐의 하나님을 선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린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절실한 하나님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 신학과 코로나 국면의 교회

예수님처럼 교회는 세상, 특히 세상에서 가장 멸시와 학대, 고통을 받는 자들의 편에 다가가서 그들을 섬기는 온유한 교회, 어린이와 같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아직도 교회의 이익과 낡은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하는 교회, 세상을 섬기기보다는 스스로 세상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한 교회는 세상의 소망과 빛이 될 수 없으며, 변화의 누룩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부패의 세균이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일종의 채찍이라면, 동시에 교회를 내리치는 경종과 회개의 채찍이기도 하다. 건물 숭배, 인물 숭배,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 실천과 따름과 나눔이 없는 교회로 하여금 묶은 관행을 끊어내고 완전히 새롭게 탈출(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다. 어린이 신학책을 통하여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을 재발견할 때, 비로소 새로운 깨달음과 실천도 가능해질 것이다.

놀이하는 예수

어린이 신학은 어린이 예수라는 개념을 통하여 놀이하는 삶을 그 특징 중의 하나로 제안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엄숙한 신앙을 강조해 왔다. 신앙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요즘과 같이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놀이하는 어린이 예수’에 대한 소개는 매우 획기적이다. 어린이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까움과 현존을 증언하고 실천한 예수님은 엄숙한 동물 제사와 거래로 얼룩진 타락한 성전 예배 대신에 일상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운 잔치와 열린 사귐, 즐거운 놀이를 강조한다. 어린이 신학은 오직 어린이와 같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숨김과 위선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춤과 노래, 노래로 맛보고 즐길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를 위해서도 놀이의 신학은 시급히 재발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어린이 신학과 성령론

어린이다운 성령 경험은 마치 온유한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조용하게, 온유하게 강림하는 성령 경험을 강조한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폭력적인 현실의 전복을 힘차게 노래했으며, 성전에 들어간 예수님은 성령 강림을 통한 현실의 변혁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린 아기를 계속 탄생시키시는 주된 이유는 어른이 만든 부패하고 굳은 세상을 다시 갈아엎기 위해서이다.

이신건의 『어린이 신학』은 침체된 한국교회에 어린이 같은 활력과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해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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