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성탄절에 더욱 그리운

박순경 목사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박순경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4년

1.
벌써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삶이 힘겹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희망을 떠올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흐름을 통틀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시간은 참 묘하고, 빠르고, 느리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속절없이 또 한 해를 보내는 지금 12월에, 아쉽게도 귀한 삶을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한 분, 박순경 선생님이 줄기차게 생각난다. 어른다운 어른이 사뭇 그리운 까닭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꼭 동화 같은 시간의 연속임에도 이젠 좀 제대로 살라고 호통쳐 주실 어른이 꼭 필요한 ‘시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백 세를 살아보니 뭐 이러고저러고 간지러운 얘기하는 어른이 아니라, 백 세가 되었어도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게 사셨던 어른이 정말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기독청년운동을 통해 이나마 세상 결, 역사 결을 짐작하게 된 ‘시간’을 소유한 나에게 박순경 선생님은 멀리서 뵈어도 다가갈 수 없었던 어려운 선생님이셨다. 감청 대회를 통해 몇 번 강연을 들었고 가끔 마주할 때마다 차렷 자세로 인사만 드리기도 어려운 선생님이신데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2014년 초로 기억난다. 역시 차렷 자세로 “선생님이 웬일로 저에게 …” 뭐 그렇게 어려운 대화의 물꼬를 텄던 기억이 난다. “최 장로, 내가 마지막으로 세 권의 책을 내려고 해, 그 첫 권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인데 원고지로 3천 매가 넘는 것인데, 이걸 최 장로가 책으로 내줘야겠어!”

2.
거절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고민도 깊어졌다. 그 어려운 책을 소화시키기도 어렵고, 한 열 달이 지나도록 긴장하고, 또 살펴야 하는 어려운 책이다. 그 제작과정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항상 지시하시는 것에 따라 교정지를 싸 들고 사당동 근처의 피자집으로 갔을 때다. 만원 지하철 퇴근길에 시달리며 땀 흘리며 늦지 않으려고 뛰어갔던 2014년 여름날로 기억된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큼직한 피자를 몇 쪽 먹으려고 군침을 흘리는데, 선생님께서 만류하시는 것이 아닌가! “최 장로, 피자는 건강에 그리 좋지 않아요. 그러니 한쪽만 먹으라우! 그리고 콜라는 나빠 냉수에다 천천히 씹어 먹으라우!” 아쉬워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피자 한 쪽 먹고 선생님의 김 애기를 들었다. 그 이후에는 몇 차례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교정지를 드리곤 했는데 책이 거의 완성되는 꼴이 갖춰지는 때라서 기분이 좋으신지 통 큰 명령을 내리셨다. “최 장로 맥주 한 잔 주라우! 중국요리를 느끼하게 어떻게 그냥 먹겠니?”
이 책이 나오고 산타에게 선물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던 박 선생님은 목표하신 2권, 3권을 더 내시지 못했다. 겨울 눈길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가시다가 그만 낙상하셔서 큰 고생을 하셨다. 이토록 어렵게 보이는 책이 2014년 11월에 간행되고 아마 그달에 가르치셨던 이화여대에서 성대하게 출판기념회를 치른 후였다. 보조기를 끌고 다니시며 댁내에서만 움직이시는 선생님을 송병구 목사와 함께 두어 차례 뵈었다. 그때마다 “최 장로, 나 2권 거의 집필 완료 단계이고, 3권은 내가 김애영이랑 같이 쓸 거야. 그 책까지 최 장로가 다 내줘야 해!” 그렇게 호기 있게 말씀하셨는데 세상에 나온 책은 결국 이 책 하나다. 2권은 선생님 댁 서랍에 고이 놓여 있고, 3권은 딸같은 김애영 교수 의중에 달렸다.

3.
이 책이 나오고 감회 어린 식탁에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살아오신 이야기를 몇 차례 때론 차분하게, 때론 분노 속에서 토로하셨지만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 이야기다. 6.25 전쟁이 막 터지기 전에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다니실 때 선생님을 흠모(?)했던 학생이 있었단다. 급히 동숭동 교정에서 만났단다. “나, 학도병으로 가게 됐어. 우리 꼭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자!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그 후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짧은 이야기를 길게 하시며 우울해하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 혹시 6.25가 안 일어났으면 그분과 나중에 결혼하실 …” 조용히  웃으시고 말으셨지만 선생님에게는 참 비정한 역사의 시간이었겠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통일신학에 매진하셨나?
이 책은 박순경 선생님과 나의 사귐의 ‘시간’을 제공해 준 책이다. 책이 나오고 간간이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9년 겨울, 마지막 긴 통화가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제2권의 출간을 꼭 해야 하는데 기력이 없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70이 넘은 나이에 구속되었던 동경에서의 강연을 언급하시면서 긴 시간을 서운해하시기도 하고 분노하시기도 하면서 말씀하신 것이 가끔 생각나면서 나부터 죄송하기 그지없다. “야, 최 장로! 그래, 이 연약한 여자 하나 잡혀가게 하고 된거 뭐 있나! 종로 5가? 에큐메니컬 운동? 야, 다 집어치우라고 하라우! 남정네들이 되어가지고 에라이….”
우리 민족의 만악의 뿌리는 ‘분단’이다. 그런데 이 분단의 문제를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아 ‘통일신학’을 표방하고 연구하신 박 선생님의 공적은 큰 산과 같다. 나는 작은 일이지만 이리저리 애를 써서 감신대 도서관 입구에 박 선생님의 사진을 동판에 담아 액자처럼 걸어두게 하였다.(박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땐 가끔 가서 보시라!) 그리고 감신대의 평화통일연구소(소장 최태관 박사)에서 첫 작업으로 박순경 교수님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을 때 이 책을 100권 기증하여 나누었다.
끝으로 참 어렵고도 무거운 이 책의 이해를 위해 박 선생님의 글을 요약정리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치려 한다. 2022년이 저무는 시간 12월의 새벽에 박순경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쓴다. 제2권, 제3권 계속 출간되어 북녘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와 동포들에게 꼭 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는 지금, 박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4.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지만 미래시간 자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에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없다.
우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라는 우리의 어려운 주제 설명이 필요하다. 제Ⅰ권 은 구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자·구원자, 하나님 아버지에 해당하며, 제Ⅱ권은 신약성서에 기초한 창조와 구원의 중보·화해자 예수 그리스도, 아들 하나님과 시간·역사를 논할 것이다. 제Ⅲ권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통일성을 이루는, 창조와 역사의 구원자 성령 어머니 하나님과 교회·민족·세계의 구원 문제를 논할 것인데, 제Ⅲ권은 나의 제자 한신대 김애영 교수의 몫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제Ⅱ권까지 완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90세를 넘긴 내 나이에 너무도 벅차다. 그러나 감행할 생각이다.
삼위일체론 자체는 제Ⅱ권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공 간과 직결되어 있으나, 편의상 시간·역사 개념으로서 공간을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도 역사는 보다 더 시간 질서가 우선하므로 시간 개념이 더 부각된 것이다. 요점은 도대체 시·공간이 무엇인가? 우리는 시·공을 창조자·구원자 하나님과 피조물 세계와 역사와의 관계질서들(Relationsordnungen) 혹은 신학 전통에서 논의되는 창조질서(Schopfungsordnung)에 해당하는, 그의 의로운 법질서의 근원적 차원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시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제 내적 영원한 관계질서의 차원이며, 그에게서부터 피조물 우주와 역사에 주어지고, 시·공 안에서 피조물과 역사가 생동하고 변화하고 변혁하면서 그의 미래시간에로 진보하게 하는 은혜로운 차원이다. 하나님의 자체 내적 시·공의 관계질서는 영원하나, 피조물과 역사에 주어지는 시공은 한정적이고 유한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시·공의 유한성과 한정성 없이는 미래로 변혁하고 진보할 수 있는 계기는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역사적 삶과 존재란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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